살아내다.
밤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더 무거웠다.
수연은 미리 준비해 둔 가방을 들고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문을 열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손잡이에 손을 얹는 순간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그 남자의 숨소리가 없는 깊은 새벽 수연은 발끝으로 걸으며 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택시는 잡히지 않아 버스를 탔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가서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멀리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돌아가지 않는다. 절대.”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어느덧 도착한 기차역.
그곳 대합실에 앉아 하얗게 뜬 전광판을 수연은 멍하니 바라봤다.
첫차가 오기까지 세 시간.
벤치에 몸을 웅크린 채 지독히도 느린 시곗바늘을 견뎌냈다. 발밑으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어 발끝이 얼어붙었지만 마음속의 긴장감이 그 추위를 덮었다.
무작정 도착한 도시는 낯설고 한산했다.
역을 나서자 회색빛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고 바람은 더 차가웠다.
짐이 많지도 않은데 어깨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발걸음 걸음마다 ‘이제 나는 혼자다’라는 사실이 전신을 감쌌다.
종종 보이는 부동산 창문에는 ‘월세 원룸’ 광고지가 빼곡했다. 수연은 가장 저렴하고 가장 작은 방을 골랐다.
창문 하나 싱크대와 1구 가스레인지가 전부인 방. 그래도 문을 닫으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는 이 조그만 공간이 수연에게는 처음으로 ‘안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짐을 풀며 가만히 방 한가운데 앉았다.
무채색 벽지가 싸늘하게 빛났다.
가구도 커튼도 따뜻한 기운도 없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좋았다.
누군가 문을 두드릴까 두려워 숨을 죽였던 밤들이 이제는 끝났으니까.
밤이 되자 낯선 천장에 시선이 머물렀다.
막막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일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은 어디서 구하지. 이대로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곧 이곳에서는 울어도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이상하게도 위로가 됐다.
수연은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막 끓여낸 뜨거운 라면 국물을 한 숟갈 들이켰다. 그 온기가 목을 타고 내려가자 아주 조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입안에서 흘러나온 그 말은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리던 사람처럼 수연의 가슴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그렇게 어느 도시 작은 방은 수연의 첫 숨을 품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다시 살아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