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사치였다.
노래방 일을 시작했을 때 솔직히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삶은 늘 벼랑 끝이었고 수연은 그 끝에 서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스무 살의 수연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 본 사람처럼 감정을 접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노래방은 낮보다 밤이 익숙한 곳이었고
낮과는 다른 법칙이 존재했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주고받는 농담은 진심이 아니었고 웃음은 장식이었다.
수연은 어느새 그 안에서 제법 잘 살아남았다.
기분 좋은 척 괜찮은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수연아 손님 들어왔어. 룸 3번.”
누가 불러도 어디로 들어가도 수연은 늘 같은 표정을 했다. 적당히 웃고 적당히 이야기하고 적당히 선을 지켰다.
술잔을 채우고 노래를 부르는 남자들 사이에서 수연은 투명한 존재였다. 원하는 것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감췄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하루의 피로를 잊고 싶어 하는 회사원 아내 몰래 시간을 보내는 중년 남자 그리고 나 같은 여자들에게 진심을 말하는 척하며 자기감정을 기대려는 사람들.
처음 수연은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이들이 낯설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물을 따라주고 괜찮냐고 묻는 일이 낯설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그들이 원하는 건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였다.
따뜻한 말을 해주는 ‘역할’ '들어주는 ‘목소리’ 웃어주는 ‘얼굴’ 일뿐.
그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고 무너지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으니까.
수연은 그 밤들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차곡차곡 접어두었다. 그렇게 해야만 버틸 수 있었다.
하루를 마치고 새벽녘 집에 들어오면 문을 닫고 나서야 수연은 진짜 얼굴을 꺼냈다.
씻지도 않은 채 눕는 날이 많았고 냉장고에 든 물 한 컵으로 끼니를 대신할 때도 있었다.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 밤이 많았다. 눈물조차 사치 같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어떻게든 살자’는 의지가 있었다. 이러다 죽겠지 싶다가도 다음 날 다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는 수연은 자신을 보면서 참 끈질기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땐 왜 그런 선택을 했어?”
하지만 살아본 사람은 안다.
그 순간에는 그 선택밖에 없었다는 걸.
도망도 선택이고 포기도 선택이고 외면도 생존이었다는 걸.
그렇게 수연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익숙한 어둠이 자신을 집어삼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