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피어나는 자신감

나에게 보내는 편지

by 은나무


미용실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나자

수연은 더 이상 신입이 아니었다.

샴푸나 드라이, 간단한 펌 보조는 이제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손에 익었다.

원장님은 가끔 수연에게 말했다.

“이제 슬슬 수연 씨만의 손님 만들어야지.

커트 실습 들어가 보자.”


그 말은 수연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드디어 나도….’

하지만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머리카락은 한 번 잘못 자르면 돌이킬 수 없었다. 손님이 실망한 얼굴로 거울을 보게 된다면 그 순간의 무게를 자신이 견딜 수 있을까?


그래서 수연은 퇴근 후에도 미용실에 남았다. 마네킹 위그를 놓고 가위질을 반복했다.

처음엔 가위가 무겁게 느껴졌지만 점점 손목에 힘이 들어갔고 머릿결을 타고 흐르는 가위의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손끝에 집중하는 동안 하루의 피곤함도 과거의 상처도 잊혔다.


첫 실전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단골 고객이 원장님 대신 수연에게 커트를 맡기고 싶다고 한 것이다.

“수연 씨가 해줘요. 요즘 진짜 잘하는 거 같더라.”

(원장님께서 부탁하신 모양이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손님의 머릿결을 가볍게 쓸어내리고 머릿속으로 수십 번 그렸던 라인을 따라 가위를 움직였다.

느리지만 정성껏 커트를 마쳤다.

손님이 거울 속 자신의 머리를 보고 활짝 웃었다.

“와, 완전 마음에 들어요. 다음에도 꼭 수연 씨한테 받을게요.”


그 순간 너무 감사했다. 믿고 맡겨주신 주신 고객님께.. 기회를 만들어주신 원장님께도...

수연은 숨이 막힐 만큼 기뻤다.

마치 세상이 ‘너 잘하고 있어’ 하고 응원해 주는 듯했다.


그날 이후 수연의 이름을 찾는 손님이 조금씩 천천히 늘어갔다. 머리를 다듬으러 온 손님이 친구를 소개해 주고 그 친구가 또 다른 손님을 데려왔다. 점점 그녀의 하루가 바빠졌지만 그 바쁨이 너무 좋았다.


퇴근길.

원룸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늘 가벼웠다.

가끔은 집에 들어와서도 거울 앞에 서서 가위질 연습을 했다. 벽에 붙여놓은 작은 메모지엔

‘내년 안에 디자이너 승격’이라고 굵게 적혀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 창문 밖의 불빛을 보며 생각했다.

예전에는 아무런 계획도 꿈도 없었는데…

이제는 내일이 기다려진다.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변화를 믿기 시작했으니까.




어느 날 출근한 미용실 안에는 평소보다 더 환한 공기가 감돌았다. 원장님께서 아침 회의 때 수연을 불렀다.

“오늘부로 수연 씨 정식 디자이너야. 축하해.”

그 짧은 한마디에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축하한다며 박수를 쳐 주었지만 수연은 그저 웃기만 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오랫동안 잠겨 있던 감정들이 차오르고 있었다.


노래방에서 긴 밤을 버티던 날들 불안에 떨며 가방 하나 들고 도망치던 밤 첫날 미용실에 들어올 때 느꼈던 낯섦과 두려움….

그 모든 장면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날은 이상하게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첫 손님에게 시술을 마치고 거울 속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마다,

‘이게 진짜 내 일’이라는 사실이 새삼 믿기지 않았다.


퇴근 후 사장님이 건넨 월급봉투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봉투 안에는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작은 원룸에 돌아와 문을 잠그고 책상 앞에 앉아 봉투를 열었다.

손끝이 떨렸다.


처음 일할 때보다 몇 배는 많은 돈이었다.

한 푼 한 푼 아껴 써야 했던 지난날이 떠오르며 눈가가 시큰해졌다.


그날 밤.

수연은 오랜만에 펜을 잡았다.

흰 종이 위에 천천히 글씨를 적었다.


“수연아, 너 참 많이도 잘 버텼다."

밤마다 창문 밖 불빛을 보며 울던 너 무서워서 도망치던 너 세상에서 제일 작아졌던 너.
그 모든 시간을 지나 너는 여기까지 왔어.

이제는 웃어도 돼.
네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변화를 믿고 네 삶도 그렇게 만들어 가면 돼.
앞으로도 수연아, 넌 잘할 거야.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졌다.

그러고 나서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예전엔 막막해서 보이지 않던 내일이 이제는 또렷하게 수연의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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