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였던 남자가 빈티지가 되기까지

에필로그

by 은나무


아내는 처음 나를 봤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진짜 별로다.”

그 말은 연애 초반에 들었고, 그때 내 자존심은 그릇째 깨졌다.




우린 나이트 부킹에서 만났다.

당시 나는 애 딸린 돌싱, 회사일에 치여 주말에만 숨 쉬듯 살아가는 남자였다.

가끔 친구와 나이트를 가서 일탈을 꿈꿨지만, 그날은 ‘평생의 덫’을 만난 날이었다.

작고 귀여운 외모의 그녀.

그런데 대뜸 이렇게 말했다.

“남자 만나러 왔어요.”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에 나는 한 방에 빠졌다.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몇 번 만나면서 ‘아, 이 여자다’ 싶었다.




그러다 연애 중에, 아내가 툭 던졌다.

“사실 오빠 첫인상 진짜 별로였어.”

그 말은 내 근거 없는 자신감에 직격탄을 날렸다.

나는 평생 ‘나 정도면 괜찮지’라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아내 앞에서 그 생각은 버려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아내에게 조금씩

‘괜찮은 사람’으로 변해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내가 나를 ‘쓸 만하게 개조’했다.




결혼 후 나는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강한 시민’이 됐다.

처음엔 아내의 잔소리 때문에 억지로 했지만,

지금은 잔소리 안 하면 허전하다.


아내 덕에 나는 요리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심지어 애들도 나를 잘 따른다.

예전엔 상상도 못 한 일들이다.

주변 친구들이 “너 왜 이렇게 변했냐?”라고 물으면,

나는 웃으면서 말한다.

“빈티지가 되려면 세월도, 손질도 필요하거든.”




물론 여전히 우리 부부는 티격태격한다.

아내의 추진력은 여전하고, 나는 여전히 안정 지향이다.

가끔은 의견 충돌로 집안에 냉전이 돌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를 놓지 않는 건,

결국 우리가 서로의 ‘맞춤형 한정판’이기 때문일 거다.




아내의 첫인상 평가가 ‘별로’에서 시작됐지만,

세월이 흐르며 나는 ‘오래 볼수록 괜찮은 남자’가 됐다.

그리고 언젠가 아내가 이렇게 말해주길 바란다.

“당신, 이제 내 인생에서 가장 잘 산 선택이야.”

그날이 오면… 나도 아내한테 말해줄 거다.

“당신 덕에, 나 진짜 잘 익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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