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커피

by 은나무


수요일 새벽 네 시 반.

도시가 아직 잠든 시각, 나는 드라이어와 가위, 스프레이가 들어 있는 트렁크를 차에 실었다. 새벽 예약은 흔했지만, 그날만큼은 운전대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도착한 한남동 스튜디오는 이미 불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스태프들이 분주히 장비를 옮기고, 커다란 촬영 장비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나는 지정된 대기실로 들어갔다.


“실장님, 이쪽이에요.”

매니저가 인사를 건네며 문을 열자, 강도현이 안쪽 소파에 앉아 있었다. 후드 집업 차림에 머리를 감은 듯 촉촉한 상태였다.


“이 시간에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그가 일어나며 미소 지었다.

나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일이니까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의자에 앉힌 뒤, 나는 수건으로 머리 수분을 정리하고 드라이어를 켰다.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그는 거울 너머로 눈을 감고 있었다. 촬영 전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피곤함인지 알 수 없었다.


“컨디션 괜찮으세요?”

“네. 사실 새벽 촬영은 익숙해요. 근데… 오늘은 이상하게 덜 힘드네요.”

“덜 힘드세요?”

그는 거울을 통해 나를 흘끗 보며 짧게 웃었다.

“아마 실장님이 계셔서 그런가 봐요.”


순간, 손끝이 굳어졌다. 나는 애써 농담처럼 받아쳤다.

“그럼 매번 새벽마다 불러야겠네요.”

“그러면 저야 좋죠.”

대화는 거기서 멈췄다. 드라이어 소리가 둘 사이의 공백을 메웠다. 하지만 그 공백조차 묘하게 따뜻했다.




분이 채 되지 않아 스타일링은 끝났다.

“완료됐습니다. 오늘은 앞머리 흐름만 잡아드렸으니 촬영 후에도 자연스러울 거예요.”

그가 거울 앞에 서서 머리칼을 가볍게 넘겼다.

“역시. 딱 제가 원한 느낌이네요.”


매니저가 와서 촬영장으로 이동하자고 했을 때,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 쪽을 향해 말했다.

“실장님, 커피는 어떻게 드세요?”


“커피요?”

“네. 아직 촬영 준비가 조금 남아서요. 스태프들이 테이크아웃 시키는데, 같이 드시죠. 새벽에 오셨으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냥 물이면 충분해요.”

그러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에스프레소 하나, 라테 하나. 둘 중에 하나 고르시면 돼요. 나머지는 제가 책임질게요.”


나는 결국 라테를 택했다. 컵을 받아 들자 따뜻한 김이 손끝을 감쌌다.

“고맙습니다.”

“저야말로요. 실장님 덕분에 오늘 촬영,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촬영이 시작되자 나는 구석에 앉아 모니터를 지켜봤다. 카메라 속 그의 표정은 이미 ‘배우 강도현’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내 앞에서 라테를 건네던 순간이 자꾸 겹쳐졌다.


컵에 남은 커피를 홀짝이며 속으로 다짐했다.

일은 일. 경계는 분명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의 공기와 라테의 온기는 오래도록 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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