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위를 잡다.

by 은나무


나는 지금 남성컷 전문점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곳은 “나이스 가이”라는 남성컷 전문 체인점이다.


여기는 바버숍과는 좀 다르다.

빠르고 단순한 서비스를 내세운 저가형 남성전문 미용실이다.


사실, 예전에는 이런 곳을 무시했다.

“거기? 기술 없는 초짜들이 남자머리 좀 익히러 가는 데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커트 값도 만 원 남짓.

지역마다 1~2천 원 차이는 있었지만,

내가 하던 ‘진짜 미용’이랑은 다르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곳에서 나는 일하고 있다.

우리 집 송 씨 남자들에겐 “그런데는 절대 가지 마라” 했던 곳인데,

이제는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출근한다.




10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았다.

다시 일터로 돌아오려니 겁이 났다.


예전엔 자존심 넘치던 기술자였지만

10년의 공백은 실력을 녹슬게 했다.

손끝도 굳고, 자신감도 바닥이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남성컷 전문점이었다.

입구는 낮고, 일도 단순할 거라 생각했다.


처음엔 바버숍을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전업주부로 살았어도,

만 원짜리 커트집 디자이너는 아니지.’


그런데 내 나이 마흔둘.

40대 이상을 불러주는 바버숍은 없었다.

게다가 바버숍에 취업하려면 이용사 자격증을 또 따로 따야 했다....

나이 때문에 자존심은 상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차라리 저가형 남성컷 전문점에서,

내 실력으로 더 돋보이면 되지 않나?’

그런 자만심을 안고 나이스가이미용실에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은 간단했다.

본사 직원 머리를 직접 잘라보라는 것.


10년 동안 베란다에 처박혀 있던 가위와 이발기.

기름칠 몇 번에 다시 살아났다.


긴장했던 내 손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20분쯤 지났을까. 머리를 마무리했다.


‘역시, 내 손재주는 살아 있구나.

10년이나 쉬었는데도 안 까먹었어.’


스스로 기특했다.

당연히 합격이겠지 싶었고,

예상대로 “출근하세요”라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왔다.




나를 잘 아는 동생이 가끔 이렇게 묻는다.

“언니, 근자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나는 대답한다.

“나는 늘 근거 있는 당당함을 장착한 기술자라고!”


그렇게 근자감을 안고

“나이스 가이”로 당당하게 입성했다.




그런데 출근 첫날, 충격이 밀려왔다.


예약제로 한 명 한 명 시술하던 나의 방식은

여기선 통하지 않았다.


이곳은 디자이너 한 명당 10분에 1명.

주말에는 40~50명씩 커트해야 했다.

말 그대로 ‘커트 공장’.


이발기 소리, 가위 소리, TV 소리까지 뒤엉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예술이라 믿었던 가위질은

여기선 ‘시간만 잡아먹는 기술’이었다.


오히려 고객을 지루하게 만드는,

초보보다 더 서툰 디자이너 같았다.


‘와… 내가 정말 잘못 알고 있었구나.’

머리끝부터 등줄기까지 식은땀이 났다.


첫날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온몸이 쑤시지 않는 데가 없었다.


‘쉽게 적응하겠지’ 했던 자만심은 산산이 깨졌다.


그래,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

내가 뭘 그리 잘난 척을 했던 걸까.


다음 날,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출근했다.

손은 굳어 따라주지 않았고,

급한 마음에 가위에 손을 베이는 일도 많았다.


그래도 버텼다.

하루하루 버티며 조금씩 익숙해졌다.

20분 걸리던 커트는 15분, 그리고 10분으로 줄었다.


점장님은 내 시간을 유심히 체크하고 계셨다.

어느 날 말씀하셨다.


“은정선생님, 남성컷은 10분을 넘기면 안 돼요.

염색 바르는 시간도 너무 길어요.

여기는 미용실처럼 느긋하게 일하면 안 돼요.

빠르고, 정확하고, 깔끔하게.”


10년 넘게 미용해 온 내게 자존심 상하는 말이었지만,

더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


점장님은 나를 처음 보고

‘이 사람은 반나절 일당만 주고 돌려보내야겠다’

생각하셨다는 거다.


촌스러워 보이고,

심지어 미용사처럼 안 보였다고까지 했다.


내 잘난 근자감은 숨을 곳을 잃었다.


하지만 그때 점장님 남편이 말렸다고 했다.

“이 선생, 그냥 보내지 말고 조금 더 같이 일해봐요.

일당이 아까우면 내가 일당 드릴게요. 사람은 괜찮아 보이니 며칠 더 지켜봅시다."


그 덕분에 나는 계속 일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도 모른 채,

‘내가 아직 인정받는구나’ 하며 착각하고 있었다.


정말 웃긴 이야기 아닌가.




그 뒤로 더 열심히 했다.

유튜브로 강의 찾아보고,

길 가는 남자 머리도 유심히 봤다.

새로운 스타일은 꼭 눈에 담았다.


고객 머리에 하나씩 적용해 보며

점차 내 기술로 만들어갔다.


그리고 알게 됐다.

이 일이 내 체질에 잘 맞는다는 걸.


미용실처럼 감정노동을 심하게 하지 않아도 됐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었다.


그냥 묵묵히 머리를 자르고,

결과물로 평가받으면 되는 일.


단순했지만 재미있었다.




어느덧 1년 반.(지금은 2년이 조금 넘었네요..^^)

이제는 7~10분이면 남성컷 한 명을 끝낸다.

대충 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고객이 원하는 걸 빨리 캐치하고,

손끝으로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더 이상 초짜가 아니다.

‘생활의 달인’에 나갈 법한 커트 달인,

그게 지금의 나다.


지금 내가 일하는 곳은

그냥 만 원짜리 커트집이 아니다.


우리 동네 미용실 여섯 곳 중에서

가장 손님이 많은 집이 됐다.


여성 고객도 찾아온다.

간단한 커트, 염색 시술을 원해서다.

멀리 40분 거리에서 오는 단골도 있다.


꼬마 손님부터 80대 어르신까지.

이제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더 이상


‘만 원짜리 커트 파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만원으로 행복을 선물하는 디자이너.


그게 지금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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