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숲의 첫 페이지를 열며
나는 오래도록 아픔과 상처로 마음속 깊이 치유되지 못한 이야기들이 채워져 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잘 들어주면서도
정작 내 마음은 쉽게 꺼내지 못하는 사람.
말 한마디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어느 날 글로 꺼내면서 조금씩 형태를 갖기 시작했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글 앞에서는 비로소 내가 나를 만나고 있구나.
그 이후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글 속에 담아두기 시작했고
그 문장들이 나를 살리고 나를 다시 세우고
나를 은나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자라게 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이제 1년 2개월.
처음엔 두려움이 더 컸다.
‘내 이야기를 누가 읽어줄까?’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을까?’
그런 마음으로 올린 아주 작은 한 편의 글이
누군가에게 닿았고 댓글이 생기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때 나는 알았다.
글은 혼자 쓰지만 혼자 도착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나는 계속 썼다.
삶의 조각을 꺼내고
나의 상처와 회복을 지나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 관계에 대한 마음을 조용히 적어왔다.
그러던 올해
처음으로 시도한 하나의 긴 여정을 끝냈다.
별밤 작가들과 함께한 공동 브런치북 연재.
그 시간은 내게 또 다른 성장의 계절이었고
나 혼자가 아닌 ‘함께 쓰는 힘’을 처음으로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 뒤
나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제는 정말 우리의 숲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서로의 글이 모이고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천천히라도 함께 자라나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글숲 시즌1이다.
이번 시즌의 주제는 ‘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써 왔다.
누군가를 위로하려는 글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글
혹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글.
하지만 이번 글숲은 그 반대다.
이곳에서 만큼은
나에게 닿기 위한 글
내 안쪽을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한 글을 쓴다.
왜냐하면 글은 결국
나라는 뿌리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쓰는 일이 익숙한 사람도
쓰는 일이 아직 낯선 사람도
용기가 모자라 이곳까지 와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숲은 비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빠르게 자라고
누군가는 천천히 자라지만
각자의 속도가 곧 각자의 아름다움입니다.
우리는 3주 동안
조용히 나를 쓰고
서로의 글을 읽고
서로의 마음에 작은 빛을 건네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하고
그걸로 숲은 자랍니다.
은나무라는 이름으로 쓰는 저의 글은
여전히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당신이 종종 들러
제 이야기를 읽어주고
공감해 주고
기다려준 덕분에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페이지를 열며
다시 한번 조용히 고개를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