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만남
## 1. 나이트
“여보 우리 나이트 갈까?”
“좋지 근데 언제? 애들 쉴 때 주말에 가면 좋으려나?”
우린 남편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깔깔깔 웃음부터 터져 나왔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우리상황은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기회만 된다면 우린 진짜나이트로 놀러 갈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당신도? 나도! 하는 마음으로 말대신 웃음부터 터져 나왔다.
2010년 6월 초여름.
성남에서 안산으로 이사를 간지 몇 달이 지났다.
잠시 일을 쉬며 지내고 있던 6월의 어느 날.
성남에서 2년간 같이 일했던 미용실 원장님께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반갑게 받았다.
당연히 안부 전화겠지 짐작하며 받았던 전화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여보세요? 원장님 안녕하세요?”
“은정 씨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지? 오늘 약속 있어? “
“아니요 그냥 집에서 쉬고 있어요”
“그래? 그럼 오늘 성남에서 나랑 좀 만나줄 수 있어?”
“그럼요 성남으로 갈 수 있죠.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남편이랑 싸웠어. 근데 집에 가기가 싫어서 놀다 가려고 나랑 나이트 안 갈래? "
“하하하하하 나 나 나이트요??? 네 좋아요 "
우린 그렇게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원장님의 전화를 받고 굉장히 놀란 이유는
첫째. 나를 교회로 전도한 분이 원장님이다.
그런 분이 밤에 유흥업소를 가자하니 놀랄 수밖에...
둘째. 나와는 나이차이가 16살이 난다.(그런데 16살 차이가 무색할 만큼 우리는 생각과 대화가 정말 잘 통했다. 함께 일할 때 정말 재미있었다.)
셋째. 나이트를 가는 목적부터 명확했다.( 나이트를 가는 이유는 부킹이었다.)
나야 그땐 신앙심이 깊었던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좋아했다. 또 솔로였고 특별히 마음에 찔릴일은 없었지만 원장님은 나를 전도할 만큼 신앙이 깊은 줄 알고 있었고 남편이 있는데 이유가 부킹이라니……
아무리 남편이랑 싸웠다고 해도 그렇지.
우리가 16살이라는 나이차이를 넘어서 세대차이를 극복한 사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원장님과 2년을 함께 하면서 카페 한번 가본 적이 없는데 나이트라니 참 생경하고 놀라웠다.
아무튼 나는 오랜만에 한껏 치장을 하고 성남으로 향했다.
원장님과 오랜만에 만났고 둘은 일단 카페에 갔다.
보통은 술 한잔을 하고 얼추 기분이 좋아지고 나서 나이트에 놀러 가지만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원장님이 갑자기 나이트를 가려는 이유를 듣고 있었다.
원장님의 사연은 이랬다.
원장님은 남편이 몰래 돈문제를 일으켰고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굉장히 배신감과 화가 났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랑 다툼을 했고 남편이 너무 미워 집에는가기 싫고 뭔가 복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원장님도 믿음생활을 하기 전에는 한가닥 놀아보시던 분이라 그냥 오늘 하루는 모든 걸 내려놓고 내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해해 줄 수 없을 거 같고 그때 생각난 사람이 은정 씨라고 했다. 나는 내가 생각났다 하니 고맙기도 했고 양심에 찔리기도 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말았다.
원장님은 양심상 그래도 남편이 있으니 늦게 까지 놀 수는 없고 귀가시간을 새벽 2시로 정했다. (새벽 2 시도 매우 늦은 시간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말이다)
부킹 한 남자들이 정말 이상한 사람들 아니고 어지간하게 생긴 사람들이라면 (우리의 외모는 왜 비교하지 않은 걸까? ) 그냥 같이 놀다가 헤어지자는 우리만의 약속을 했다.
나는 상관없으니 원장님이 맘에 들면 나에게 사인을 주시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분위기 맞춰 하루 같이 시간을 보내주겠다고 계획을 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뒤나이트 오픈 시간에 맞춰 젊은 이들이 찾지 않는 원장님 나이대에 맞게 중년의 관광나이트를 찾아갔다.
들어간 지 한 10 분이나 됐을까? 분위기를 살펴보니 정말 나이 지긋하신 분들부터 젊어야 원장님 나이대 보다 조금 더 살짝 많은? 분위기였다.
오픈시간 맞춰 간탓에 나이트 안은 사람이 별로 없고 썰렁했다. 나는 오늘 원장님 속상한 기분을 풀어 주러 온 것이니 괜찮다 생각하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름이 뭐였더라? 그놈의 웨이터 이름만 기억했어도 우리 부부가 부부싸움 할 때마다 몇 번이나 찾아가서 멱살을 부여잡고도 남았을 그 웨이터가 원장님과 나를 이끌고 어느 테이블을 향해 전투적으로 걸어갔다.
보통은 데려다가 대충 앉히는데 그날따라 그 웨이터는 나는 이쪽 원장님은 저쪽 지정해서 앉히는 거다.
내 옆에 남자는 별로 신경 쓸 일 없었다. 그저 원장님 취향만 신경 쓰면 되었는데, 그래도 내쪽보다는 맞은편 남자 스타일이 썩 괜찮아 보여서 아쉬움도 살짝 있었다.
역시나 원장님도 싫지 않은 눈치였고 우리는 눈으로 사인을 주고받은 뒤 이 사람들과 오늘하루 같이 놀아야겠다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
내 옆에 남자는 참 뻔한 멘트를 하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니 나이트에 어떻게 와. 놀러 왔지 여자끼리 남자끼리 왔으면 목적이 비슷한 거 아닌가? 뭔 그런 당연한 질문을 지루하게 물어봐. 스타일은 왜 이래 신발은 여름에 웬 워커를 신었어. 나이트 온다고 꾸미고 온 건가? 아 구리다.'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나는 대답했다.
매우 귀찮고 성가신 표정과 목소리로
" 남자 만나서 놀려고요"
남자는 감탄하는 목소리로 환하게 대답했다.
"와 이런 대답 처음 들어봐요~!"
"네? 뭐를요"
'아 귀찮아 자꾸 쓸데없는 소릴 하고 있네 ‘ 속으로 연신 말 시키지 마라 하고 뽀루퉁 앉아 있었다.
"보통 친구랑 놀러 왔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말하지 대놓고 남자 꼬시러 왔다고 하는 대답은 잘 안 하잖아요.
그래서 맘에 드는 남자 만났어요? 못 찾았으면 힘들게 부킹 다니지 말고 저희랑 같이 놀아요"
나는 원장님과 먼저 눈으로 사인을 주고받았기에 이미 마음을 정했다.
"네 좋아요"
맞은편 원장님과 남자는 나이트 안에 꽝꽝 울리는 음악소리 때문에 잘 들리진 않아도 자주 웃으며 재밌게 대화중인 거처럼 보였다. 그 남자도 옷 입은 스타일이며 대화 내용이 내 옆에 앉은 남자랑 친구사이라기엔 좀 많이 달라 보였다.
나는 그쪽에 껴서 같이 웃고 떠들고 싶었다.
근데 내 옆에 남자는 자기가 누구 닮은 거처럼 보이냐는 정말 식상한 질문을 또 하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해서 잘 안 보이는데 한 가지 분명한 건
넙데데한 얼굴이 참 대단히 사각형으로 보였다.
그 말은 차마 할 수 없어서 대답하기도 귀찮고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무슨 자신감일까 갑자기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불빛을 자기 얼굴에 비춘다.
컴컴해서 안 보이는 거라며 자 불빛을 비춰 줄 테니 이제 자기 얼굴을 자세히 보란다.... 하.... 이 남자 진짜 내 스타일 아니다.... 자세히 보아도 그냥 사각형의 넙데데 한 얼굴만 보일 뿐 특별한 건 없는데 말이다.
어차피 내 스타일 따질 일 없는 만남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람 질리게 할 줄이야...
급기야 핸드폰에 사진첩을 뒤적거리며 자기 사진을 보여준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니 자신의 사진으로 본인의 얼굴을 확인하라고...
나는 매우 귀찮았다.
"네네네 " 건성건성 대답했다.
재미없는 농담을 혼자만 깔깔깔 웃으며 이야기했다.
"너무 재미없는데요?"
그 사람이 민망하든 말든 나는 대놓고 재미없으니 그만 얘기하면 안 되냐고 했다.
"내일 되면 생각날 것이고 어제 그 남자 꽤 재밌는 남자였네 하실 거예요"
이 사람은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참 매력 없는 사람이다.
나를 질려 나자빠지게 하는 사건이 하나 더 있었는데
마침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어 졌을 때다.
그래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 했더니
와 진짜 왕느끼함이 철철 넘치는 개콘의 왕비호의 이름이 떠올랐다.
“은정 씨가 너무 예뻐서 화장실 가는 길에 웨이터가 다른데 데려갈지 몰라요. 제가 화장실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우엑 미치겠다. 나는 그렇게 많은 나이트를 다녀봤어도이런 남자 처음 본다. 어디서 주워듣고 공부하고 온 건가? 아니 그냥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준비되어 있다고?
지루한 말솜씨에 이런 식상한 멘트에 비호감 매너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오늘 원장님을 위해서 대단히 희생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그 남자의 매우 느끼한 비호감 매너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두 팔 벌려 만든 가드와 꽃게처럼 옆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모양새로 보호하는척 화장실까지 안내했고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가 나를 다시 테이블까지 데려다주었다.
와 세상 민망함과 쪽팔림은 나의 몫이었다. 이곳이 중년의 관광 나이트여서 정말 다행이었다. 젊은이들이 보면 도대체 저 남녀 뭐 하는 거야 하고 많이도 비웃음 당했을 거 같다.
지금도 그때의 우리 만남을 기억하며
“ 당신 그때 도대체 왜 그랬어??
진짜 비호감에 별로였어~“
“그거 전부 나이트 모임 카페에서 올린 글 보고 배워 간 거야~ 여자 꼬실 때 써먹는 개그, 멘트, 행동들 다 자세히 알려주거든 은정이 너 꼬실라고 배워간 거지~! “
그때 그 비호감 가득했던 재미없는 대화만 해대던 그 왕비호 같은 남자가 지금 나와 13년의 결혼생활을 하며매일이 시트콤처럼 나를 웃게 하는 남편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배꼽이 빠질 정도로 재밌고 개그코드가 찰떡 같이 잘 맞는 내 남편이 될 줄은 그날 나는 상상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