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어쩌다 처음 만난 남자랑 모텔까지...
우리는 나이트에 온 목적을 달성했으니 의견을 취합해 이곳을 나가기로 했다.
우리 넷은 가까운 술집으로 향했다. 나의 고난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이제 겨우 저녁 8시.
새벽 2시가 되려면 이 왕비호 매너남과 6시간이나 함께해야 할 시간이 더 남았다.
어쩌랴 난 이미 원장님과 약속을 했으니....
밝은 곳으로 나와서 보니 생각보다 넙데데한 얼굴 말고는 인상이 선해 보였다.
그렇지만 인상이 선해 보여바짜 나이트에 여자 꼬시러 온 놈이 그렇고 그런 놈이지 생각했고 나도 그럴라고 왔지만 나는 다른 사람인양 선을 그었다.
시끄러운 곳을 벗어나니 우리는 자연스레 넷이 어우러져 재밌게 술자리를 이어갔다.
두 남자는 서로 짜고 왔는지 우리에게 서로를 추켜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맞은편 남자는 내 옆에 남자에게 몸이 좋다며 헬스를 10년을 한 몸이라고 강조했다.
'뭐야? 뭐라고? 운동을 10년한 몸이 이렇다고? 어깨가 흘러내리는데? 머리가 커서 그런가? 어깨가 너무 좁아 보이는구먼.. 겨우 팔에 알통정도 보이네....'
속으로 이 사람들 왜 이렇게 허풍이 심해 내가 무슨 바본 줄 아나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참 눈치코치 없는 이 남자 자기의 알통을 보여주며 만져 보라는 둥 가슴을 들이밀었다.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민망한 젖꼭지만 도드라져 보이기만 할 뿐 가슴 근육은 도대체 어딨는지 내 눈이 이상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10년 헬스 노하우와 헬스 철학을 설명하느라 난리가 났다.(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은 진짜로 헬스를 10년 동안 꾸준히도 했던 게 사실이다...)
덕분에 나는 지루하고 지루한 속사포 같은 얘기에 아까나이트에서부터 이어온 끝나지 않은 재미없는 이야기에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아 원장님과 약속이고 뭐고 진짜로 당장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필 이 상황에 문제의 화장실 타임이 왔다.
이곳 호프집엔 사람들이 많았다.
아 쪽팔리다.
또 시작이다.
양팔의 가드와 꽃게걸음........
무슨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이번엔 한 손은 귀에 대고 한 팔만 뻗은 채 도리도리 주위를 살피는 모양새까지...
나 지금 연예인인가?
우리 지금 보디가드 놀이 하는 건가?
하.....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인가....
이상한 남자 만나서 화장실 한번 요란하게 가는구나
여기선 왜 그래 나이트가 아니잖아 부킹에 끌고 갈 웨이터도 없다고!!!
이 남자의 이런 요란한 이유는 한번 매너는 끝까지 란다.
참 가지가지 여러 가지로 비호감의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이 남자의 비호감 스토리는 아직 남았다.
우리는 3차로 노래방을 갔다.
여느 노래방 분위기처럼 한창 재밌게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매 이 남자의 매력 발산 시간이 또 찾아왔다.
오늘 도대체 몇 가지를 준비하고 온 건지 이제는 이 노력이 가상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갑자기 남자는 신해철의 무한궤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응원가 마냥 일어나서 우리의 호응을 유도하며 부르기 시작했는데 어머 충격 그 자체다.
못 볼걸 봤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남자들의 그 행동..
허공에 기타를 치고 있다........
머 하는 짓이냐고....
투명기타를 왜 치는 건데....
왜 그리 볼품없는 짓을 하는 건데....
그동안 열심히 부단히 도 발산해 오던 모든 비호감의 종지부를 찍는 절정의 제스처.
투명기타... 그럴라고 워커를 신은 건가 이 시간을 위해서... 기타리스트처럼 보일라고?
(나중에 알았다. 남편은 정말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이었다. 교회에서 밴드도 했었고, 취미로 밴드활동도 했을 만큼 기타를 잘 쳤다.... 그 사실을 알리 없는 나는 뭔 똥폼이냐 개무시하고 있었지만...)
신세계다.
아니 이 모든 걸 나이트 카페에서 배워온 거야?
아니지? 아니지? 이건 남편 당신이 보탠 거지? 그런 거지? 이런 걸 여자 꼬시라고 전수해 주는 카페는 절대로 있을 수 없어. 이건 당신이 만들어 낸 게 분명해. 다행이야 내가 마지막 당신의 여자라서...
더는 이 이상한 비호감 매너와 매력발산 타임을 아무도 못 보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하하하하
그런데 나는 지금 왜 이 비호감의 극치 초절정 매력에 빠져 들어 이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
(치.매)에 매료되어 당신에게 홀린 거냐고~~ 이제 남편의 모든 행동과 말들이 나는 너무 재밌어졌다.
도대체 머야~~
그토록 비웃던 그 허접한 스토리에 나는 어쩌다 빠져 든 거야~~ 정말 당신이란 남자는 나를 위해 태어난 남자 인가 싶을 정도로 나는 그에게 최적화되어 가고 있었다.
암튼 다시 그때로 돌아가보자.
노래방에서 실컷 놀고 그 남자의 허세 섞인 투명기타를 감상하고 있을 때쯤 원장님이 자리를 비운 지 한참이 되었는데 돌아오지 않는 거다. 나는 전화를 걸어보았다.
시간을 보니 2시가 되어 가고 있었고 귀가 시간이 되어서 상대 남자에게 슬쩍 얘기하고 집으로 귀가하셨다는 거다. 뭐지 나는 어쩌라는 거지?
나는 원래 2시쯤 같이 헤어지면 원장님 댁에서 잘 생각으로 온 건데 갑자기 난감해졌다. 나는 고민 끝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첫차가 다닐 시간까지 시간을 끌어야겠다 생각했다.
노래방에서 나와 상대친구는 파트너가 없으니 자기도 집에 간다고 가버리고 나와 이 남자 둘만 남았다.
나는 첫차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자에게 포장마차에 가서 한잔 더 하실래요 하고 말했다.
남자는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이때 남편은 빨리 나를 술 취하게 해서 어떻게 해볼까 흑심을 품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남편의 헛된 생각일 뿐.... 내가 그리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닌 줄 남편은 그땐 몰랐다.
둘은 포장마차에 갔고 나는 그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짠~! 짠~! 원샷!!
남편은 금세 술이 취해져 갔다. 내 계획은 이게 아닌데 말이다. 이 남자 술이 너무 약했다.
두어 시간만 술 한잔 하면서 같이 놀다가 버스 타고 집에 가려고 했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이 남자 점점 눈이 풀리고 고개가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이봐요~ 송찬호 오빠!!" (그는 나보다 4살 많았다.)
"정신 차려요 벌써 취했어요? 나를 지켜준다는 사람 어디 갔어요~"
아 진짜 이 사람은 끝까지 허세만 부리지 정말 남자다움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네...
뭐야 벌써 취해서 이렇게 헤롱대면 어떻게...
난감해졌다. 시간은 많이 남았고 이 남자는 여기서 쓰러져 잘 판이고 나는 빨리 결정해야 했다.
여기에 버려두고 택시라도 타고 집에 가야 하나? 아까 그 친구 전화번호도 모르고 원장님도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술값을 계산하고 근처 모텔에 데려가 이 사람을 던져 놓고 버스시간이 되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서운 세상이지만 왠지 이 사람은 그런 걱정은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참 순수하고 바보 같은 허세와 허풍을 본터라나도 경계심이 풀린 듯했다.
"찬호오빠 정신 좀 차려봐요 여기서 자면 어떻게 일어나 봐요~"
다행히 술집들이 즐비한 번화가였기에 근처에 모텔들도 많았다.
나는 비틀 거리는 그 남자를 겨우겨우 부축해서 모텔로 들어갔다. 나이트에서 만난 비호감남자랑 모텔까지 가다니... 정말 나는 오늘 머 하러 성남까지 와서 이난리란 말인가...
남자는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널부러 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도 5시쯤이면 첫차가 다닐 테니 조금만 있다가 나가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는데 아뿔싸 나도 그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졸고 말았다. 두어 시간이 지나고 새벽 6시. 눈을 뜬 나는 얼른 일어나 슬쩍 나가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도 잠귀가 밝아 조금만 인기척만 나도 벌떡 일어나는 남편은 그때도 내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벌떡 눈을 떴고 여기가 어디 인지 자기랑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남편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자기가 나랑 있었는데 그냥 잠만 잤냐는 거다. 자기 남자 맞냐는 거다.
아니 이 남자 뭐야??!!
지금 눈뜨자마자 이게 중요해?
어제는 그렇게 나를 지켜 준다며 꽃게처럼 옆으로 걸어서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며 보디가드
놀이하던 사람 어디 갔어?
꼴에 남자라고 참 진짜 가지가지 여러 가지 한다. 생각하며 나는 얼른 자리를 떠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원장님 전화가 왔고 원장님 핑계를 대고 서둘러 모텔을 나왔다.
그냥 가는 나를 붙잡는 남편에게 전화번호를 남겨 주며 연락하라고 예의상 인사를 하고 전화 오면 안 받으면 되지 하고 도망치듯 모텔을 나왔다.
그냥 허둥지둥 나가는 나를 보며 남편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모텔비가 그 당시 10만 원이었는데 단 3시간에 10만 원을 잠깐 조는데 썼단 말인가? 손도 못 잡아 보고?
'이런 병신아~'
자기는 첫 부킹에 성공해서 온갖 준비한 모든 재롱잔치를 쏟아붓고 오늘은 뭔가 나를 꼬시는 데 성공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포장마차를 가기 전까진 말이다.
아직도 얘기한다. 그때 포장마차만 아니었어도.... 하고 말이다. 나는 당신이 그때 포장마차에서 만취해서 쓰러져 잤기 때문에 우리가 결혼할 수 있던 거라고 했다.
그날 우리가 무슨 일이 있었더라면 아마 나는 당신을 그저 그런 놈으로 보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을 거라고... 각자 다른 생각 다른 기억을 품은 그날.
우리의 첫 만남 황당한 첫 동침은 우리 부부의 운명 같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