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알고 보니 (치.매)였어 이 남자
어라?
거참 신기한 일이네.
어제 그 이상한 남자가 자꾸 생각이 난다.
전화기가 자꾸 신경 쓰인다.
그 남자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내일 되면 생각날 것이고 어제 그 남자 꽤 재밌는 남자였네 하실 거예요"
진짜 자꾸 생각이 난다.
자기 얼굴을 자세히 보라며 핸드폰 불빛을 본인 얼굴에 비추던 일, 누구 닮았냐는 허세 쩌는 재미없는 얘기…. 세상 민망하게 만들었던 화장실 가는 길 보디가드 놀이….
진짜 하루 지나고 나니 자꾸 생각이 나고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지?라고 생각한 웃음이지만
어찌 됐건 그 남자 말이 맞긴 한 거다.
어제 그 사람이 들이대는 속도로 봐서는 오늘 전화가 올 거 같은데 도통 소식이 없다.
나는 받지 않을 생각으로 전화번호를 줬는데 왜 기다리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사람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 그 남자는 당장이라도 전화할 기세였는데 하루가 지나도 잠잠하다.
내가 번호를 잘못 줬나?
내 번호를 저장 못했나?
아 머야 이은정! 왜 기다려~
됐어! 이상한 사람이랑 엮일 뻔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
하루종일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워커에 투명기타를 치던 모습, 한 손을 귀에 대고 다른 팔로 가드를 세워 고개를 도리도리 해가며 화장실까지 데려다주던 일, 포장마차에서 소주 몇 잔 연거푸 마시고 금세 취해 꾸벅꾸벅 졸던그 장면들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났다.
나 그 사람 전화 기다리고 있네.
맞네 나는 지금 그 넙데데한 그 남자.
10년 동안 헬스로 알통을 만든 그 남자 기다리고 있는 게 맞아.
내가 도대체 왜 그러는지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봤다.
아니 내가 왜 이유까지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결론은 이랬다.
살면서 내 생전 그런 남자는 처음 봤다.
심지어 자기는 멋있어 보이려는 행동들이 참 우스꽝스러운지 모르고 나름의 허세와 허풍을 겸비한 자아도취
에 취해 자신감 뿜어 대는 그 꼴이 내게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겨줬다.
그리고 나이트에서 만나는 놈들이 다 그렇지 뭐~
하는 선입견을 지워준 알고 보면 순진하진 않지만 순수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근데 뭐 어쩌냐 나는 연락처도 모르고 궁금해도 찾을 수 없는 남자는 연락이 없으니 잊어야지…
이래서 내 남편의 매력이 치. 매였던 건가?
알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던 거였어?
시종일관 별로라고 내 스타일 아니라고 하는 동안 어느새 스며든 거였어??
나 이런 여자였니?? 이런 스타일 좋아했나 봐~
어머어머 웬일이니.
나는 그날 하루종일 연락 없는 남편을 생각하며 주접을 떨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그동안 평범한 삶도 아니었고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한 날이 많았는데 그날 내 남편은 내가 살면서 만났던 세상 가장 순수하고 해맑고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하루사이 그렇게도 푹 빠졌나 보다. 그 노매 치명적인 치매에 풍덩하고 말이다.
이튿날도 역시 연락이 없다.
분명히 번호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
그렇게 그토록 비호감의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내가 나조차 우스워질 때쯤 나흘이 지났을 때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울렸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텐데 기다리던 전화가 있던 터라
나는 침착하게 매우 호들갑스럽지 않게 심호흡을 한 뒤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은정 씨? 나예요 찬호 송찬호 기억하죠?”
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비호감 철철 흐르던
알고 보면 치명적 매력의 그 남자.
“아~ 네 ~ 알죠~”
기다린 척하지 말고 침착해.
도도해야 해.
최대한 한껏 도도하란 말이야.
도도하긴 개뿔 푼수 떼기 같은 태생이 어디 가겠냐~
나는 참지 못하고 폭풍같이 떠들어 댔다.
왜 이제야 전화를 했냐
그날은 집에 잘 갔냐
내 번호 까먹은 줄 알았다
뭐 하고 있냐
밥은 먹었냐
아니 미친 거 아니냐고 밥은 먹었냐고 왜 물어봐~
그냥 왜 이제야 전화를 했어요 엄청 기다렸어요라고 하지 뭘 그리 다다다 말이 많냐 너무 없어 보여 은정아
‘남자 만나서 놀려고요’
‘재미없는데 그만 말하면 안 돼요? ’
라고 그리 관심 없는 척하던 나 어디 간 거야~
아무튼 내 반응에 또 이럴 땐 눈치가 빠른 이 남자.
갑자기 어깨에 대단히 뽕이 들어간다.
“은정 씨 내 전화 많이 기다렸나 봐요~
내가 좀 바빴어요~ 회사에 신경 쓸 일이 좀 많았어요.
거 봐요 내 생각날 거라고 했잖아요! “
하하하 틈을 주면 안 되는데 이미 뭐 틈이란 틈은 다 줘버렸다. 멍청이 튕길 줄도 알아야지 이건 뭐 속이 다 보이는 투명인간 같은 인간아.
아무튼 남편은 나흘 만에 연락이 왔고 ( 이 사람 일부러 4일 만에 연락했데요 글쎄 그것도 나름의 작전이었다는데 알고 보니 순진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순진한 건 저였어요….)
우리의 시트콤 같은 이야기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