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린 도시, 수많은 빌딩이 네온사인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2025년 뉴욕의 밤은 늘 그렇듯 활기로 가득 찼지만, 그날 밤 그들이 있었던 극장 안과 밖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관객들로 가득 찰 것이라 예상했던 극장의 좌석은 많이 비어 있었고, 긴 줄을 기대했던 입구는 한산했다. 다섯명의 미래인은 극장 밖에서 무거운 침묵 속에 서 있었다. 초조함이 감도는 공기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쳤지만,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진우는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실망감을 억누르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이제 첫 상영이니까, 좀 더 기다리면 관객들이 천천히 모이겠지. 어벤져스 시리즈가 아니니까 당연한 결과 아니겠어?”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이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했다고 믿었지만, 현실은 그들의 기대를 산산이 부수고 있었다.
레이첼은 입술을 깨물며 극장 안을 바라봤다. 과학자로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고려했다 생각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수학적 계산으로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는 예측했고 그 예측이 틀린 것이다. 그녀는 다큐멘터리가 경고를 넘어 사람들에게 변화를 촉구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그 믿음은 벌써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현재의 사람들이 영화를 봐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시간이 더 필요할 거예요. 우리가 처음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기대했던 건 아니잖아요. 아직 기회는 있어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그녀는 더 큰 목소리로 동료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현실은 더욱 가혹했다. 첫 상영 이후 언론의 반응은 냉담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무관심이 다수였고, 지나치게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많았다. “기후 변화의 피해를 이렇게까지 자극적으로 그릴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비평은 다큐멘터리가 사실적이지 못하다는 평판을 강화했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재탕할 뿐”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저 클리셰의 범벅인 잘난 척하는 계몽주의 영화”라고 쓴 평론가도 있었다. 아스트리드는 분노했고, 그룹은 좌절했다. 2025년의 사람들은 아직 지낼 만했고 행복했다. 그저 그 행복에 다른 행복을 더해줄 즐거운 이야기만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비판은 주인공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다큐멘터리가 지나치게 과장된 ‘경고장’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들이 기대했던 뜨거운 가슴이 아닌 차가운 머리로 사람들은 다큐멘터리를 한발 물러서 평가하고 있었다. 아스트리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럴 줄은 정말 몰랐어요. 우리는 진심이었는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걸까요?”
진우는 초조하게 자기 머리를 긁적이며 나지막이 불만을 터뜨렸다. “이건 다큐멘터리야. 허구가 아니라고. 우리는 현실을 보여주려 했을 뿐이야.” 하지만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그들이 받아든 정직한 성적표인 것이다.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분명 무언가를 놓쳤던 것이리라.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2025년을 지나쳐 2050년을 살고 있었기에 2050년의 세상이 그저 너무 당연했던 것일까?
아스트리드는 극장 입구를 서성이며 리사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녀는 리사의 이야기가 반드시 사람들에게 닿아야 한다는 믿음을 되새겼지만, 현실의 냉혹함은 그녀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녀는 리사가 보여준 용기가 헛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곳에서는 그 모든 것이 한낱 동정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아니 그들의 영화는 그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만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대체 무엇일까?’
하야토는 극장 밖에서 벽에 기대어 있었다. 리사의 미소가 그리웠다. 그녀가 이곳의 상황을 모른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그가 그녀의 상황을 모른다는 사실에 막막했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아니 아직 살아 있을까?’
그날 밤, 다섯 명은 서로를 바라보며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둔 두려움을 느꼈다. 아무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누군가는 자신들이 선택한 길이 맞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리사의 이야기는 정말로 사람들에게 닿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는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무엇을 놓친 것일까? 무언가 중요한 것이 상실된 것일까?
다음 날, 그들은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간에 다시 모였다.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레이첼이었다. 그녀는 원래의 그녀로 금세 돌아가 있었다. 레이첼은 단순히 극장에서의 상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각자가 감정과 이성을 섞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은 일단 영화의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더욱 충격적인 티저 영상을 만들어 배포하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우선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가나 논란은 그다음의 문제일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실제로 다가오는 미래에요. 그걸 사람들이 깨닫게 만들어야 해요. 조금 더 급진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알리아가 평소와 다른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진우가 그 말을 곧바로 이어받아 과거로 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말했다. 그들의 신분을 밝히는,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자는 의견을 냈다. 그는 시간을 더 지체하며 실패를 이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동료들 모두 진우의 심정과 의도를 이해했으나 분명한 반대의 의견을 전달했다. ‘너무 이르다.’
그는 아쉬움과 불만을 숨기지 않은 체 동료들의 반대를 예상한 듯 다음 제안을 곧바로 이어갔다. 실제로 조만간 벌어질 일을 영상을 통해 미리 공개하는 식으로 이목을 끌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을 다시 끌어올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레이첼은 즉각 반대했다. 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 즉 미래에 가지고 있는 과거의 정보를 이용하여 과거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그룹의 원칙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레이첼의 반대와 하야토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그룹은 그럴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결국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었다. 아스트리드가 온난화로 인해 곧 부서지고 쪼개질 운명에 있는 빙하의 영상을 편집해 앞으로 다가올 충격을 예고하는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그녀의 오래된 필름 속에 간직된 실제 장면을 활용했다. 티저 영상은 이 장면과 함께 다큐멘터리의 가장 강렬한 장면을 함께 모아 짧고 충격적인 형식으로 재구성되었다.
아스트리드는 그 영상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X까지 가능한 모든 매체에 빠르게 업로드하고 방송국에 배포했다. ‘2050년의 리사’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영상을 올리며 기후 변화의 피해자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들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일론 머스크가 “really?”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영상을 공유하며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이 모든 것이 당신의 딸, 당신의 친구 이야기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었지만, 점점 티저 영상이 인터넷으로 퍼져나가면서 조금씩 반응이 나타났다. 충격적인 장면과 함께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마치 예언처럼 느껴지면서 사람들이 점차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티저 영상에서 경고했던 유명한 빙하가 부서지고 바다로 사라지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대중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모든 매체가 그 장면을 폭발적으로 다루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들이 예언한 것이 현실이 된 순간, 사람들은 다큐멘터리가 그저 과장이 아니라며 놀라기 시작했다. 아스트리드의 빙하에 대한 집착과 기억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그룹의 원칙을 훼손했다. 아스트리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고 혼잣말을 했지만 오랫동안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룹은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바쁘게 움직였다. 진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유명 인플루언서들과의 협업을 추진하며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가 더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했다.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큐멘터리가 단순한 경고의 목소리가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가 경험할 미래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지난 빙하 영상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계속 강조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대중의 관심은 또다시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자극에 익숙하고 늘 새로운 자극과 사건이 생기는 시대에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와 그의 동료들 모두 이제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룹에게는, 미래인들에는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재난이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2025년을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우는 다시 무기력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레이첼은 다큐멘터리의 과학적 근거를 지속적으로 보강하기 위해 과거로 출발하기 전 만들었던 자료 외에도 기후 변화와 관련된 연구 자료와 데이터를 추가로 공개했다. 그녀는 다큐멘터리가 전하는 메시지가 단순한 공포심 조장이 아닌,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경고라는 점을 계속해서 알리고자 했다. 그녀의 접근은 여러 과학자의 공감과 동의로 이어졌고, 이는 대중들의 더 큰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신뢰가 영화를 보는 것으로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룹이 만드는 새로운 영상들은 그 자체로 그저 소비되고 있었다.
알리아는 환경 단체들과의 연계를 강화하며 다큐멘터리 관람 후 추가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했다. 그녀는 아무리 적은 수의 사람이라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모멘텀이 필요한 것이다. 알리아는 극장 밖에서 서명 운동과 캠페인을 계속 이어가며 사람들이 단순히 영화를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에 나설 기회를 제공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고, 그녀의 열정은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도 여전히 초조함이 감돌았다. 이 작은 변화가 큰 파도를 일으킬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그녀는 결과에 대한 판단과 예상은 일단 유보하자고 자신에게 여러 차례 말했다.
하야토는 다양한 단체들과 협력해 다큐멘터리가 더 많은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는 끈질기게 극장주들과 협상하며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와 동료들의 노력 덕분에 신통치 않은 흥행성적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는 점차 더 많은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미지근했다. 관객의 수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상영관의 수와 상영 횟수를 계속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룹은 더 이상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답답함을 계속 느꼈다.
다큐멘터리의 상영은 그렇게 조용히 이어졌지만, 주인공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변화의 순간이 오기를, 그들이 꿈꿨던 새로운 미래가 시작되는 계기가 생기기를 원했다. 그들은 그날을 위해 서로를 격려하며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갔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고, 사실 그거 말고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