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5일.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리네?"
"우리 귀국날이다."
"작년에 집에서 소리만 들리고 큰 불꽃 몇 개만 보여서 너무 아쉬웠어"
"올해는 뒷산에 올라가서 볼까? 거기서 한강 보이니까 불꽃도 보일 것 같아"
"그래 그러자. 너무 좋아."
"한국 불꽃은 8시부터 시작이니까 그 시간에는 맞춰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네"
그렇게 뒷산에 올라 불꽃축제를 즐기기로 서로 약속을 하고 토요일 한국에 돌아온 우리는 생각보다 도심이 한산했던 탓에 홍대입구에서 택시를 타고 빠르게 집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온 게 5시 30분. 집에 도착한 시간은 6시 30분 정도였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두 개의 캐리어에서 꺼낸 짐들을 정리하고 빨 것들을 정리해 세탁기를 돌렸다. 입고 온 옷들도 세탁기에 넣고 바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뒤 손톱을 깎았다. 전편에도 썼지만 나와 레오는 손톱 길이가 1mm 이상 넘어가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기에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할 일로 콕 집어둔 상태였다. 손톱을 깎고 나니 너무나도 상쾌했다. 환기도 시킬 겸 창문을 여니 어느새 차가워진 밤공기가 쑥 안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가을이구나.
그렇게 어느 정도 정비를 마치고 산에 올라갈 준비를 했다. 사실 소파에 앉아 베트남에서 사 온 망고젤리를 하나 까먹으면서 올라가지 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레오는 어느새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 8시까지는 5분 정도 남은 시간. 나도 서둘러 레깅스와 양말, 반바지, 긴팔라운드티셔츠 그리고 비니를 쓰고 준비를 마쳤다. 밖이 이미 어두웠기 때문에 레오는 헤드랜턴 상태를 확인 중이었다. 배낭에는 집에 들어오긴 전에 편의점에서 사 온 김밥 2줄과 삼각김밥 그리고 생수를 넣고, 담요와 경량패딩도 하나 챙겨 넣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레오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있었다.
"라면 먹고 가려고?"
"아니, 올라가서 먹으려고"
"아 그럼 따뜻한 물을 보온병에 담아 가야지"
"아, 그 생각을 못했네"
"이걸 어떻게 들고 가지?"
"서로 먹을 걸 바꿔서 들고 가자"
"좋아. 나는 김치라면!"
그렇게 우리는 한 손에는 등산스틱. 한 손에는 컵라면을 들고 집을 나섰다. 뒷산은 자주 오르내렸기 때문에 길은 훤히 알고 있었지만 들개가 3~4마리 있었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준비를 해야 했다. 몇 년 전에 눈이 많이 온 날 갑자기 산에 오르고 싶어 레오와 산에 갔다가 눈에서 빛을 뿜는 들개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어서 밤산행을 할 때는 좀 더 대비를 하려는 편이다. 특별한 건 없고 등산스틱을 챙기는 일이 유일한 방법이 기는 하다.
그렇게 등산로 입구에 다다르고 헤드랜턴을 켜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 부분에서 계단길과 흙길로 나눠지는데 평소에는 단연 흙길로 갔겠지만 이번에는 계단길을 선택했다. 레오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헤드랜턴이 생각보다 밝아서 길을 오르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들개들이 계단길로는 잘 다니지 않기에 좀 더 안전한 선택이었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바위길이 이어졌다. 모래알갱이 들 때문에 미끄러울 수 있어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시계는 이미 8시 5분이 넘어가고 있었고 라면은 퉁퉁 불었으리라.
우리가 관람하기로 점찍은 장소인 정자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 동네 주민 몇몇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이 있으니 한적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좀 더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정자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야경을 감상했다. 낮에만 보던 뷰를 밤에 올라와 보니 색달랐다. 온통 깜깜한데 아랫동네는 불빛이 작게 반짝이고 있었다. 멀리 남산방향에는 남산타워가 푸른빛을 내고 있었고 여의도 방향으로는 시간차를 두고 폭죽이 올라오고 있었다.
와~ 여기서 불꽃축제를 보다니. 현장에서 보는 것에 비하면 작게 반짝이는 불꽃이었지만 쇼를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불꽃을 감상하면서 퉁퉁 불은 김치라면과 김밥을 먹었다. 아침에 과일, 오믈렛, 커피 등으로 간단히 먹은 호텔 조식과 기내식으로 먹은 김치볶음밥이 다였기에 꽤나 출출했다. 퉁퉁 분 라면조차도 맛있었다. 특히나 산 위의 정자에서 불꽃을 보며 먹는 것이 맛이 없을 수는 없는 법.
큰 불꽃이 올라올 때마다 사람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화려하고 반짝이며 하늘을 수놓는 불꽃이 반짝이를 떨어뜨리듯 흩뿌려졌다. 사실 예전에는 불꽃축제를 보면 그저 예쁘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쇼가 끝나갈수록 커지는 스모그섬을 보며 이 축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0년에 시작해 올해로 벌써 20년 이상 지속되 온 한화그룹의 사회공헌사업이라지만 20년이면 많은 것들이 바뀌는 시간 아닌가? 환경에 대한 이슈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전통이라는 이유로 불꽃축제를 지속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실제로 불꽃축제 후 미세먼지 지수가 매우 나쁨으로 올라가고 화학물질 등으로 동식물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로 인해 불꽃축제를 규제하는 나라들도 생겨난다고 하니 환경적인 측면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불꽃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 일대에는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찾아온다고 한다. 내 생애 첫 번째 불꽃축제였던 2002년, 대학교 1학년 02학번이 되고 그해 봄에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렸던 불꽃축제에 데이트를 했던 추억이 있다. 안 간다던 동기 몇몇이 커플 데이트를 하다가 들켰(?)지만 서로 쉬쉬하며 눈감아 주었던 기억들. 불꽃축제가 낭만의 기억으로 한 켠에 남아있지만 이제는 이 쇼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2월 회사 출장 차 호주 시드니를 방문했다.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 오페라하우스 인근을 산책하다가 프러포즈하는 드론쇼를 보았다. 꽤나 로맨틱하고 멋있는 프러포즈였던 걸로 기억한다. 불꽃축제도 이런 드론을 이용한 축제로 변화하는 건 어떨까? 전통을 밀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통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어떻게 변화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자세도 필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