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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녁의 홍콩 택시를 타고서

통총 데이즈 (Thung Chung Days) 캐빈 크루 트레이니 일기

by 니나



홍콩식 명 퉁청 Thung Chung.

우리가 부르던 한국식 이름 통총.


습하고 축축하던 통총에서의 그날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동안 나는 캐빈 크루 트레이니(캐빈 크루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였다.


내가 머물던 시간은 겨우 40일이었지만, 내게 그곳은 이상하게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의 날들. 나의 통총 데이즈.



나와 다른 친구는 초조한 얼굴로 인스트럭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레이닝스쿨의 사무실이 있는 2층 복도에 올라온 건 이로써 벌써 세 번째였다. 하지만 이베큐에이션 시험이 모두 끝나고 세 번째로 올라온 기분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처음은 이베큐에이션 과목의 이론 진도가 중간쯤 나가던 즈음이었다. 꽤 여러 명이 함께 불렸었고 한 명씩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상담을 했다. 내가 만난 트레이닝 스쿨 사무실의 남자 직원은 이러한 상담이 무척 일상적인 업무인 것처럼 나의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지 왜 지적을 받았는지에 대해 사무적으로 물어봤다. 마음속으로는 터놓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지만 그때 나는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에 괴로움이 더해져 두렵기만 했다. 그래서 더 나쁜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덤덤한 대답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비행 지식인 데다 진도가 빨라서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면담은 마지막 이베큐에이션 시험을 코 앞에 둔 어느 날이었다. 이미 교실에서는 여러 차례의 지적을 받아 창피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주눅 아닌 주눅이 들어있었고 두 번째로 남으라고 하니 오늘은 왠지 어떤 조치가 취해질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몇몇의 친구들과 함께 2층 복도에 서 있었는데 얼마나 초조했는지 모르겠다. 예상외로 그날은 개별 면담이 있지 않았다. 이날 만난 여자 매니저는 앞으로 남은 이베큐에이션 시험이 마지막 테스트이므로 잘 해내기를 바란다고 했다. 못 미더운 얼굴이었지만...


그야말로 모자란 학생이 된 듯했다. 교실에서는 줄곧 친구들 앞에서 타깃이 되어 혼이 나고 수업이 마치면 이렇게 나머지 상담을 받아야 하는 부족한 트레이니가 되어있다는 사실에 몹시 우울했다. 우리 배치의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친절한 도움을 주었지만 내가 경험했던 항공사 트레이닝은 그야말로 한 팀이 되어서 동고동락하며 공부하지 않는다면 넘어서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바로 옆에서 같은 말이 통하고 한 팀이 되는 친구가 없어도 나름대로 애를 쓰며 이 지점까지 왔지만 이제 바로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숨이 턱 막히고 다리가 무거워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나중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비행 지식을 미리 공부해 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트레이닝 연습을 위해 자기 나라에서 구명조끼를 가져온 트레이니도 있었다고 말이다. 내게 그와 같은 절박함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이제 이판사판이니 엄청난 적극성으로 도움을 바랄 수 있는 어느 누구에게나 부디 내게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하는 자세도 없었다.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어느 정도까지만 도와달라고 했던 것도 나의 간절함과 적극성의 지표였던 것 같다.





항공사와의 운명을 결정짓는 마지막 이베큐에이션 시험을 치르기 위해 새벽부터 잔뜩 시달린 지친 몸과 마음으로 트레이닝 스쿨의 복도에 서서 이베큐에이션 인스트럭터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온 건 또 새로운 얼굴의 매니저였다. 그리고 나와 다른 친구를 사무실 근처의 어느 교실로 이끌었다. 연식이 오래된 시설의 잘 사용하지 않는 빈 공간에서 맡을 법한 답답하고 눅눅한 냄새가 났다.



그 매니저는 냉정하고 빠른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가 마지막 기회였던 두 번째 이베큐에이션 테스트를 마쳤고 이 테스트의 결과와 그동안의 평가를 종합하였을 때 나와 친구가 기준치에 모자라다고 판단했기에 우리들의 트레이닝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궁금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한 번도 올라오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세 번이나 트레이닝 스쿨 사무실에 올라와서 나는 어떤 요행을 기대했던 걸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는데도 불구하고 충격적인 소식을 듣자 정말로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니 그간 참아 왔던 왠지 부당하다고 느꼈던 마음이나 이해되지 않은 부분들을 말하고 싶었다. 여태껏 다른 시험에서 재시험을 본 적도 없고 트레이닝 가운데 지적을 받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질문 공세를 받았을 때 대답을 잘했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여자 매니저는 내가 향상했던 성과에 대해서는 이베큐에이션의 인스트럭터 역시 인정한다고 했다. 하지만 트레이닝의 평가는 모든 과정을 두고 이루어진다며 어떤 변명이나 핑계도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 그때 가장 조리 있게 말하고 싶었던 건 왜 소수의 한 두 명을 타깃으로 삼아 마치 공격하듯 매번 이들이 더욱 긴장하고 주눅 들게 만들었냐는 점이었다. 하지만 내 말은 속상한 마음처럼 엉망이었다. 매니저는 이 정도의 긴장도 견딜 수 없다면 실제 비상상황에서는 어떻게 침착할 수 있냐며 도리어 내게 물어보았다.


오히려 맨 처음 있었던 상담이 그나마 트레이니의 심정을 들어주려고 했던 것 같지 마지막 이베큐에이션 시험 이후의 상담은 이미 결정되어 버린 일이라는 게 분명했고 별다른 말이 없으면 이 자리를 서둘러 정리하려는 모습을 보자 나의 입은 점점 닫혀 갔다.




그리고 이제 여자 매니저는 나와 친구의 매뉴얼 책을 돌려 달라고 했다. 트레이닝이 시작된 이후로 마치 한 몸처럼 가지고 있었던 애증의 매뉴얼 북은 그렇게 허무하게 내 손을 떠났다. 모든 트레이닝 과정을 마치고 책을 후련하게 반납하면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둘러 뺏긴 기분이 들었다.




얼이 빠졌지만 어떤 속상한 응어리는 그대로 풀리지 않은 채 마지막 상담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그 교실에서 나와 복도 앞 엘리베이터에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2층의 엘리베이터는 언제나 그랬듯 더디게 올라왔다. 창문을 바라보니 어느덧 어두운 저녁이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루 종일 나보다 더 노심초사했던 엄마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트레이닝이 끝났다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괜찮다고, 수고 많았다는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간 참고 참아왔던 눈물이 마를 새 없이 흘러내렸다.




모두가 퇴근한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회사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탔다.

일곱 시가 훌쩍 넘은 저녁, 창밖 통총의 밤은 야속하게도 홍콩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구불거리는 통총의 차도 위를 여느 때처럼 재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택시 안에서 나의 눈물은 끊이지 않았다. 호텔에 도착하자 택시 기사 아저씨가 내게 안쓰러운 얼굴로 작은 티슈를 건네주었다.




호텔 방에 돌아오니 눈물은 계속 흘렀지만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 못해 잊고 있었던 허기가 그제야 올라왔다. 긴장이 풀렸던 것이다.


기운을 차려 마치 첫 끼니와도 같았던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잘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간 곳은 여느 때처럼 호텔 앞 식당이었다. 부은 눈 때문에 모자를 눌러쓴 채 밥을 먹으며 내 트레이닝이 종료되었다는 소식을 그간 큰 도움을 주었던 에머슨에게 알렸다.



곧바로 놀라움을 그대로 표현한 답장을 받았다.



“Whaaaaaaaaat.........?!”



그리고 그 저녁 에머슨을 만나러 갔다. 혼자 호텔 방에 있어도 슬프기만 하고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필요했다. 이베큐에이션 마지막 테스트의 다음날과 그다음 날까지도 똑같이 수업이 있었지만 에머슨은 따뜻한 위로를 해주었다.



아까 나와 다른 친구가 2층으로 불려 갔을 때, 우리 배치 친구들이 회사 라운지에서 다 함께 한참을 기다렸다고 했다. 심지어 발카는 걱정으로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나대로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동안 마음을 써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이 많이 풀려 내 호텔로 돌아갈 즈음 그가 장난스레 한 말은,



“... 그래도 샐러리(celery)를 받았잖아?”






삶에서 일어난 어떤 속상한 결과나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씁쓸하다. 눈앞에서 새로운 삶이라는 부푼 기대와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았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 일을 정말 하고 싶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느꼈는데 다시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괴로워도 받아들여야 했다.












트레이닝을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잡다한 물건 중에는 인덱스 견출지가 있었다.

수업에 아주 용이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종류별로, 색깔별로 참 여러 개를 챙겨 갔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토록 많은 견출지는 불필요했고 짝꿍 마크와 프레이븐에게 나눠주게 되었다. 절반을 잃어버린다 해도 거뜬했을 것이다. 마크 삼총사는 알록달록한 견출지 같은 건 거의 가져오지 않았다. 실력이 떨어질수록 부수적인 데 집중한다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마크에게 언제든 내 견출지를 쓰라고 말했는데 그렇다고 마크는 트레이닝 교본에 견출지를 더덕더덕 붙이며 공부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 애는 심플한 성격처럼 공책도 하나, 펜이 적게 담긴 자그마한 필통도 하나였다.




마지막 상담이 있고 공식적으로 트레이닝이 종료된 바로 다음날부터 트레이닝 스쿨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더 이상 분주하게 셔틀버스를 탈 필요도 없었다. 느지막이 회사에 가서 사원증과 회사에서 받은 캐리어를 반납하며 사직서에 서명을 하면 되었다.




그 이튿날의 저녁이었던 것 같다. 정들었던 호텔방의 짐 정리를 모두 마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이었다.



공교롭게도 내 배치의 친구들이 세이프티 트레이닝의 마지막 강좌를 마치는 날이었다. 이제 돌아오는 다음 주부터는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며 고대하던 서비스 트레이닝에 들어갈 준비를 하면 되었다. 어렵고 고된 세이프티 트레이닝을 마친 기념으로 배치 친구들이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했는데 그 장소는 마침 내가 자주 가던 호텔 앞 식당이었다. 그 자리에 가는 게 유쾌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제 뭐 어때.'라는 심정으로 정들었던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나갔다. 이날 저녁 식사에 배치의 모든 친구들이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식당 앞에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자리가 해산할 무렵 저 멀리 마크 삼총사가 보였다. 메신저에서 내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인사를 하러 왔다고 했다. 고마우면서도 함께 끝까지 트레이닝에 참여하지 못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 명씩 마지막으로 마크와 인사를 나눴다.




그때 마크가 내 눈앞에서 자신의 핸드폰 케이스를 열어 보였다. 그 안에 담겨 있던 건 내게 가져갔던 빨간색 인덱스. 마크는 이 견출지가 나를 기억하는 표시라며, 자기는 내가 없어도 계속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교실 자리를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마크의 순진한 마음에 고마움을 넘어 이상하게 마음이 아려 왔다. ‘어느 날 갑자기 짝꿍이 사라졌다 해도 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구나’ 하면서 말이다.






계절이라는 시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어느덧 내가 홍콩에서 트레이닝을 받으러 갔던 때가 되었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이때의 쓰라린 실패가 큰 약이 되었다는 것을 안다. 나의 부족한 점을 메꾸고 향상하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패의 경험은 되새길 때마다 말할 수 없이 속상하기만 했다.



하지만 내 스스로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이 실패가 영원한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던 것을 알았고 그렇게 준비하며 기다렸던 시간이 나를 깊어지게 했다.



게다가 내 삶에 결코 잊을 수 없는 홍콩의 늦봄과 초여름이라는 추억을 쌓지 않았는가.


그 안에 그 시간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덧 나는 그 사실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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