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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Y ~종잇장 같은 마음~

통총 데이즈 (Thung Chung Days) 캐빈 크루 트레이니 일기

by 니나 Mar 01. 2025

시작 전 뱀발:


통총 데이즈라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지난 홍콩에서의 날들을 하나씩 반추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나는 처음 홍콩 땅을 밟았던 봄날로 돌아가 줄곧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다. 



다이어리를 펴 ‘통총 데이즈’라는 제목 아래 통총에서의 이야기를 써내려 갔을 즈음은 아직 작년 여름, 홍콩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어서 이 괴롭고도 쓰라린 마음을 털어내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치유하고 싶었다. 그렇게 긴 여름과 가을을 맞았고 도무지 흐르지 않는 것만 같은 날들이 통총 데이즈와 함께 꿋꿋이 흘러갔다. 그 사이 나의 마음도 처음과는 자못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회차가 늘어나며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와 가까워질수록 그때의 시간을 되풀이하면서 생각하는 게 점점 버거워졌다. 이 이야기에서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이지만 마침내 이제는 잘 흘러갔다고 여기게 된 시간을 다시 꺼내 올려 맞닥뜨리는데 왠지 모를 의문이 들었다. 

‘다시 희망을 가지고 감내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어째서 나를 일부러 괴롭히고 있는 걸까...’ 하는.



그래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글이 의도치 않게 나를 힘들게 한다면 다시 활기찬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시간을 주기로 했다. 이 덕분에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고 다시 과거를 회상할 기운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통총 데이즈를 쓰면서 인식하지 못했던 몇 가지를 느끼기도 했다.  


난 이 글을 쓰면서 그때의 나를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또 내가 그전보다 성숙해졌다는 것과 내 인생에 어떤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추억하고 싶은 시간이 책장 속 한 권의 책처럼 남았다는 것이었다. 


직접 쓴 글을 다시 읽으며 아무것도 모른 채 통근 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던 설렘을 느꼈고 보고 싶은 얼굴들을 하나 둘 떠올리며 친구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을 언제든 되풀이할 수 있었다. 


가령 상상만 하던 항공사 건물의 길고 긴 로비를 걸어 다니던 순간, 얼핏 보기만 해도 연륜이 느껴지는 외국인 파일럿을 식당 안 바로 옆 테이블에서 심심치 않게 보던 날들, 마치 고등학생을 떠올리게 하는 마크 삼총사의 실없는 장난들과 N호텔로 뛰어갔던 점심 무렵 호텔 로비 앞에서 어른처럼 담배를 피우던 쉬락이나 프레이븐을 마주쳤을 때 그제야 본 듯했던 그 아이들의 진짜 모습, 말로만 듣던 비행기 모형 안에 들어가 실습하던 생경하고 설레던 기분과 늘 그림자 같았던 에머슨이 오렌지 빛 전등 아래 기타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던 어느 저녁 같은..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생각과 감상, 추억을 조각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쉬는 시간이었다. 커다란 경험과 귀한 교훈을 주었던 그날들은 이 글이 있는 한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고 또렷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는 게 통총 데이즈가 내게 주는 무엇보다 가장 큰 선물인 것 같다. 



특히나 읽어 주시고, 읽어 주셨던 분들께 정말로 큰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누군가 저의 글을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어려웠던 날들을 지나오는데 아주 큰 힘을 얻었습니다.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이 시간들을 끝까지 잘 빚어내고 싶어요.




홍콩식 명 퉁청 Thung Chung. 

우리가 부르던 한국식 이름 통총. 


습하고 축축하던 통총에서의 그날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동안 나는 캐빈 크루 트레이니(캐빈 크루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였다. 


내가 머물던 시간은 겨우 40일이었지만, 내게 그곳은 이상하게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의 날들. 나의 통총 데이즈.




나는 무용을 전공했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 무용을 배우기 위해서는 보통 무용 입시라는 호된 시절을 거쳐야만 한다. 그리고 실기 선생님들은 자기가 맡은 제자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무서운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왕성한 호르몬 영향 아래 놓여있는 사춘기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몸으로 표현하기로 결심한 (무용 전공자) 아이들은 더욱이 감성적이어서 지도자들은 그들을 휘어잡을 만큼 강해야 했다. 



나의 무용 선생님을 비롯해 대학에서 만난 레슨 선생님들은 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빠른 교정과 뚜렷한 성과를 내기 위해 자주 소리를 지르며 꾸짖었고 그때는 그렇게 혼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한마디로 나는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혼나는 데 있어서 어릴 시절부터 꽤 단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은 이제는 흘러가버린 오래전 시간이었다. 무용을 하는 친구들과 만나서 으레 이야기하게 되는 “그땐 그랬어.”의 시간. 




헌데, 우리 반 이베큐에이션 수업의 인스트럭터는 단박에 나의 오래전 무용 선생님들을 떠오르게 했다. 크고 무서운 목소리로 윽박지르는 고릿적 방식으로 수업을 이끌어갔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무섭게 지목하는 것은 당연하고 잘못 대답을 했을 경우에 어찌나 큰 소리로 혼을 내는지 수업 시간은 모두가 초긴장 상태였다. 



그녀가 헤드라이트 같은 눈빛을 장착한 뒤 커다란 목소리로 갑작스레 내 이름을 부르면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지적은 목표 달성을 위한 채찍이나 훈계라기보다는 점차 누군가를 제명시키는 정당화 과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이베큐에이션의 인스트럭터라는 권위와 권한으로,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각 배치에서 몇 명 정도는 탈락시킨다 해도 용인되는 일인 것 같았다. 따라서 그 몇 명 안의 좁은 인원에 들어간다는 건 직감으로 치명적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무서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이름을 부르고 또다시 부르면 자연스럽게 더 얼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는 지식이나 경험이라도 충분하다면 금방 대답을 할 텐데 나는 그렇지 않았고, 이때 조성된 정적은 인스트럭터에게 나에 대한 불확실함을 공고히 했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나는 어느 순간 그 명부에 들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누군가는 인스트럭터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눈물을 흘렸다고도 한다. 난 그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 결코 울지는 않았지만 맷집이 없다면 견디기 힘든 때가 많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두 시간 동안 모두에게 던진 예를 들어 스무 번의 질문 가운데 홀로 일곱, 여덟 번을 받는 다면 이는 꼭 내게 작정을 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억나는 것은 수업 시간의 압박 질문을 이겨 내기 위해 무척 애를 썼던 일이다.

무엇인가를 물어봤을 때 곧장 대답하기 위해서 처음 듣는 내용이라도 금방 이해하고 외워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당장 이해할 수 없어도 무작정 외우는 게 중요했다. 가만히 들어보면 틀린 답을 줄줄 말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틀린 답이라도 질문에 대답하는 것과 대답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달랐다. 어느새 내게 질문이 와도 곧바로 대답이 나오는 때가 왔다. 그때 느꼈던 보람은 다른 어느 보람보다 확연히 컸다.




이베큐에이션 과목의 이론 진도가 모두 끝나고 비행기 모형에 들어가서 첫 모의시험을 치르게 되었을 때다.



한 시나리오마다 하나의 시험이라고 할 수 있었고 시험 직전 인스트럭터가 그 시나리오에 호명하는 인원들은 이번 시험의 비행과 비상탈출을 이끌 캐빈 크루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나머지 친구들은 여객기 속 모의 승객이 되었다. 



모형에 들어가 처음 실습 시험을 치르던 날은 시험의 시작인 만큼 복잡하지 않은 비상상황 및 탈출 시나리오가 주어졌다. 하지만 난 이 복잡하지 않은 시나리오에서 심하게 긴장했고 결국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수업시간에서 쌓여 있던 압박감과 정신적인 피로, 여러 면에서 나를 흔드는 시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씩씩하게 이겨낼 담대함이 부족했다.




하나의 모의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그 시험을 리뷰하기 위해 교실로 다 함께 돌아왔다. 

누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 지에서 시작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크루들은 어떻게 무슨 행동을 하면서 대처했고 또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를 한 명씩 돌아가며 상세하게 회고했다. 



그날 내 모의시험이 끝나고 나는 마치 빗자루로 후들겨 맞은 듯 혼이 났다. 귀가 얼얼한 기분이었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더욱 괴로웠던 건 내 행동에 대해 모두가 듣는 가운데 가열하게 혼나고 또 그렇게 가만히 듣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인스트럭터가 하는 말은 그 방식이 심하게 매서울 뿐, 맞는 말이었고 변명이라는 건 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트레이니를 대하는 방식과 행동이 너무 사나워서 인스트럭터가 자비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창피할 만큼 혼나니 2차 충격이 더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 시험에서 왜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다. 





만약 첫 번째 시험에서 실패한다면, 다른 날에 마지막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때는 처음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시나리오를 받게 되고 두 번째 시험에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해졌다. 



비교적 쉬운 첫 시험을 실패했는데 좌절감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훨씬 까다로운 시험을 해내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마지막 기회라는 두 번째 시험에서 내가 어떤 시나리오에 참여하고 어떤 역할을 받을지는 오직 이베큐에이션 인스트럭터만이 알고 있으므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첫 시험에서 했던 실수만큼은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과 나올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 그때 나의 목표였다.




그렇게 입이 바짝바짝 마를 만큼 두려웠던 마지막 시험날이 되었다. 잠을 거의 못 자다시피 하면서 준비를 했다. 그날, 인스트럭터는 거짓말처럼 내게 모든 자리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자리를 부여했다. 각 시험마다 자기가 책임을 맡을 자리가 있었고 비행기 문 위치에 따른 이름으로 정해졌다. 그날 그녀가 내 자리를 호명할 때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태연하고 만만한 얼굴을 보였던 건 내 기분 탓이었을까.



조종실과 가장 가까운 문은 조종 승무원들(기장과 부기장)의 지시를 직접 받고, 다른 기내 승무원들에게 지시를 전달할 일이 많아서 다른 자리 보다 임무가 두 배로 복잡하고 많은 곳이었다. 대개 엑스 크루들이(인스트럭터들은 누가 엑스 크루고 뉴비인지 사전 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시험을 치르곤 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모의시험에서도 한 번도 있어본 적 없는 자리를 마지막 시험에서 받게 되자 너무 충격적이어서 시험을 치르러 모형 비행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벌써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살얼음판에 있는지는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이 자리를 부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인스트럭터가 참 밉고, 원망스러웠다. 이 사람은 나를 정말로 집에 보내고 싶은 거구나. 말로만 겁을 주는 게 아니었다는 걸 느꼈다. 




앞서 다른 에피소드에서 이야기했던 나의 자잘한 실수들은 바로 이 시간에 주로 벌어졌던 일이다.

조종석의 연락을 받는 것도 캡틴의 지시를 다른 크루들에게 알리는 것도 나는 많은 면에서 어설펐고 참으로 좌충우돌이었다. 지난 시험과 비슷한 임무만 맡았더라면 이번에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뭐가 뭔 지도 잘 모르는 자리에서 더 복잡하고 많은 임무까지 맡게 되니 나는 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마지막 시험에서 내가 무난하게 잘 해냈던 부분이 있어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부분으로 인해 나의 평가가 좋지 않겠구나 싶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시험을 보고 있는 와중에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재앙 같았던 시험을 마치고 교실에 돌아왔을 때, 인스트럭터는 다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리뷰를 시작했다.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였다.



“니나. 난 네게 할 말이 없어.”



속으로는 나 역시 똑같은 마음이었다. 


‘저도.. 할 말이 없어요. 이 시험을 위해 먹지도, 자지도 않고 준비했는데... 대체 왜 나에게 그 자리를 준 거죠?’




호된 평가가 이어지고 모든 리뷰를 마치고 이베큐에이션 시험이 끝나자 커리큘럼상 이전에 배웠던 과목에 대한 복습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질문을 몰아서 받았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마지막 시험에 대한 충격으로 계속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교탁에 서서 내가 그녀의 연쇄 질문에 대답을 못해 허망해하는 얼굴을 째려보며 노트에 힘주어 기록했다. 꼭 나를 보내기 위한 마무리 작업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살면서 이 정도로 어려움을 겪은 수업 시간은 거의 없었다. 딱 한 번, 공연 연습을 하다 비슷하게 혼난 적이 있었는데 여태껏 그 순간만큼은 생생히 기억한다. 거의 그 정도로 괴로웠다.




지옥 같았던 그날의 수업 시간이 끝날 시간이었다. 인스트럭터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우리 모두가 ‘marginally pass;미미하게 통과’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나와 또 다른 친구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우리는 교실에 남으라고 했다. 


친구들이 먼저 나가자 인스트럭터는 이제 우리가 트레이닝 스쿨 사무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를 사무실 층으로 데려갔는데, 먼저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복도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 인스트럭터의 얼굴은 그때가 마지막이다. 왜냐하면 그날이 트레이닝 스쿨에서의 나의 마지막 수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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