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총 데이즈 (Thung Chung Days) 캐빈 크루 트레이니 일기
홍콩식 명 퉁청 Thung Chung.
우리가 부르던 한국식 이름 통총.
습하고 축축하던 통총에서의 그날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동안 나는 캐빈 크루 트레이니(캐빈 크루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였다.
내가 머물던 시간은 겨우 40일이었지만, 내게 그곳은 이상하게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의 날들. 나의 통총 데이즈.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인덕션 참가 연습을 하듯, 비로소 내가 몸담게 되었던 배치에 재배정되기 전 약 한 시간가량 머물렀던 나의 ‘구’ 배치가 있었다.
그날은 ‘인덕션’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오리엔테이션의 첫날로서 그간 몸 달아 기다렸던 트레이닝이라는 절차를 시작하는 날이었기에 설레고 긴장되는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한국에서 한 비행기를 타고 왔던 사람들 중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의 한국인이 함께였고 나는 이때만 해도 이 인원마저 꽤나 소수라고 생각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화장을 하고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레 가져온 정장을 차려입고 일찍이 회사에 와서 인덕션이 시작되는 강의실을 확인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그날 내가 기껏 선택한 자리는 작은 강의실에서도 가장 뒤쪽이었다. 앞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크게 없었던 데다 다른 한국인 트레이니들과 같이 앉게 되었고 내 마음의 바로미터처럼 내가 자리 잡은 테이블은 그렇게 강의실 구석 끄트머리였다.
그런데 인덕션이 시작되기 직전, 단 몇 분을 남기고 한 인도인 남자 트레이니가 아슬아슬하게 강의실에 들어왔다. 다들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그 남자 인도인 트레이니는 빈자리를 찾다 구석진 나의 테이블로 서둘러 앉았다. 공들여 그루밍을 한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자그마한 얼굴에 곱상하게 생긴 이 인도인 친구의 이름은 아킬이었다. 아킬을 만난 건 두 번째였다.
우리가 첫인사를 나눴던 것은 내가 머물던 호텔 야외 수영장에 홀로 수영을 하러 갔을 때였다. 나는 그 여름날 호텔의 한가로운 수영장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때 다른 인도인 친구들과 함께 온 아킬을 만났는데 그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고 했다. 그날 내게 더 기억에 남은 건 아킬 말고 라울이라는 또 다른 인도인 친구 쪽이었다. 의젓한 큰오빠처럼 왠지 여유로운 모습에 노련한 승무원 분위기를 풍겼던 라울은 역시나 전직 캐빈 크루였는데 함께 온 다른 이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트레이닝에서 있을 디칭(물에서의 비상대피) 훈련을 위해 수영 연습 겸 물놀이 겸 아킬을 포함한 다른 친구들과 수영장에 찾아온 것이었다. 라울은 물안경 없이 수영을 하느라 눈이 그야말로 레드 아이처럼 빨갛게 변했는데 심지어 벌겋게 익어버린 얼굴로 저녁 뷔페에 식사하러 온 모습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저녁이 되어가는 늦은 오후, 호텔 수영장에서 알게 된 인도인 트레이니 친구들의 얼굴은 석양과 함께 금세 흐려졌고 이내 어두워지는 하늘처럼 한층 더 짙어져 갔다. 아킬에게는 함께 수영장에 있던 내내 어색한 평영을 하던 내가 수영을 꽤 잘하는 사람이라는 첫인상을 남긴 듯하다.
고대하던 인덕션 첫날은 회사 포털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와 그 외 신상 정보가 기입된 서류를 받는 것과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받은 서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는데 내가 희망한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포털 아이디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이름은 내가 회사 면접을 볼 때 하루 사용했던 영어 이름이었다. 면접 이후에 앞으로 회사에서 쓰고 싶은 영어 이름을 정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고, 이때 나는 이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정정했던 터였다. 면접 때 썼던 이름은 마치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아 실제 내 이름으로 바꾸기를 희망했고 이후에 이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런데도 면접 때의 그 영어이름으로 회사 아이디가 만들어져 있었다. 의아한 일이었다.
정정을 하고 싶어 인덕션을 진행하던 강사에게 물어보았는데 이는 당장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순간에는 원치 않는 이름으로 만들어져 있는 회사 아이디가 괜히 더 신경 쓰였다. 마치 시작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꿴 것 같았다.
다소 침울해진 채 내가 같이 앉은 테이블의 다른 트레이니들 아이디는 어떠한 지를 보니 다들 비교적 그들이 선택한 이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오직, 아킬만 빼고서. 아킬은 신상 정보의 이름 자체가 두 번 반복되어 ‘아킬아킬’이었다. 그 순간 얼마나 웃음이 터졌는지 모른다. 면접 때 딱 한 번 마치 가명처럼 쓰고도 박제된 듯한 나의 영어 이름 보다 이름이 두 번 반복되어 별명처럼 변해 있는 게 더 심해 보였다. 그렇게 영어 이름에 이슈가 있던 나와 누군가가 장난친 것처럼 이름이 두 번 써져 있는 아킬은 본인도 웃겼는지 우리는 킬킬거렸다. 그 웃음 가운데 서서히 긴장이 풀렸다. 이렇게 나는 아킬이라는 친구와 이름이라는 모종의 이슈를 공유했다. 그런데 잠시 후 뜬금없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 직원이 나와 다른 한국인 트레이니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두 시간도 안되어 난 그 배치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로 회사에서는 종종 아킬을 마주쳤다. 그때는 아킬이 인도에서 왔다는 것 밖에 몰랐다. 전직 승무원인지 신입 승무원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고 그는 호텔 수영장에서의 재밌던 추억으로 그리고 나처럼 이름이 꼬여버린 상태를 공유하고 있는 구 배치 친구였다. 당시 아킬은 주로 라울과 둘이 다녔는데 내 인덕션이 한 주 늦어졌기에 종종 인사를 나눌 때면 자연스레 그들의 트레이닝은 어떠한 지를 물어보게 되었다.
그날따라 아킬과 라울의 표정은 참 어두웠고 그들이 이베큐에이션 주에 들어갔을 즈음이었다.
“안녕 아킬, 라울. 너희 잘 지내고 있니?”
“아니 전혀... 너무 힘들어.”
“어머나.. 지금 응급처치도 힘들어 죽겠는데... 더 힘들어?”
“응... 그건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라울은 며칠이나 밤을 새운 사람처럼 푸석한 얼굴에 안 그래도 짙은 눈에 다크 서클이 더해져 있었고 수면 부족이 심각해 보였다. 그리고 옆에 있던 아킬도 어지간히 피곤한 모습이었다. 인덕션 첫날의 반짝거리던 사람은 어디에 갔나 싶을 정도로. 일주일 뒤에는 내가 똑같은 모습이 되었지만 말이다.
퇴근 시간 회사의 메인 통로에서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눴던 순간뿐 아니라 호텔 복도의 정수기에서 물을 뜨면서도 몇 번 라울과 마주치곤 했다. 또 내가 회사와 계약 종료를 했던 날도 그를 마주쳤는데 이때 라울이 말했다.
“니나, 왜.. 연락하지 않았어? 네가 이베큐에이션 주간이었을 때 우리는 다 끝났었잖아. 나나 키란(또 다른 친구의 이름이었다.)이나 다들 호텔에 있었어. 우리가 도와줄 수 있었는데...”
라울 말이 맞았다. 전화할 수 있었는데, 나는 같은 배치도 아닌 데다 내가 급하다고 무턱대고 연락하는 게 폐가 되거나 거절당할까 봐 아예 연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나는 이렇게 소심했다.
쓰라린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와 일상에 복귀하고 있던 어느 날, 아킬로부터 잘 지내냐는 연락을 받았다. 그에게는 미처 말할 겨를도 없이 한국에 돌아왔던 참이었다. 회사와 홍콩을 아예 떠나게 되었다는 말을 이전 배치였던 친구에게 할 정도로 내 마음이 편안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아킬의 위로는 다른 어떤 친구들의 것보다 내 마음에 와닿았다. 같은 배치에 있었던 시간은 찰나였는데 지나고 보니 가장 가까운 친구로 남은 사람은 다름 아닌 아킬이다. 요즘은 그 까닭이 마음의 주파수가 비슷해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도 남쪽의 벵갈루루에서 온 아킬은 자국 항공사의 퍼서(사무장)로 몇 년 동안 일하였는데 처음 항공사에 들어가기까지 꽤나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 때 좋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그 누구 보다 캐빈 크루가 되기를 꿈꿨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꿈을 그리고 좌절한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하였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놀라운 것은 간절하지 않은 채로 캐빈 크루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게 추억의 미국 드라마 <도슨의 청춘일기>를 알려준 사람도 바로 아킬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찾아서 볼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작년 가을 무렵, 아킬은 그 전설 같은 청춘 드라마를 추천해 주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중 하나이며 앞으로 영어 공부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2000년대 초반, 어느 평화롭고 한적한 미국 교외 마을의 빈티지한 분위기와 아날로그로 가득한 시절은 풍경 그 자체로 이미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어릴 적 미드를 보면서 상상했던 미국 고등학생들의 생활을 실제로 보는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배우들을 통해서 전달하는 대사들은 몇 번이나 곱씹어보게 만들 만큼 좋았다. 나는 아킬 덕분에 한동안 도슨의 청춘일기에 푹 빠져 있었다.
그 가운데 주인공 도슨이 또 다른 주인공 소꿉친구 조이와 나누던 인상적인 대화가 있었다.
극 중 도슨은 자타공인 영화 괴짜이다. 사실 아킬도 자칭 영화 Geek이다. 내가 미셸 윌리엄스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는 알 파치노를 가장 좋아한다. 영화와 비행기와 자동차와 기차를 같은 비율로 좋아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과 닮은, 자신을 투영하는 인물을 보는 것을 좋아하므로 아킬은 자기처럼 주인공이 영화광인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슨은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특히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도슨의 롤 모델이다.) 자기 방을 좋아하는 영화의 포스터나 소품으로 잔뜩 꾸며 놓고 매일같이 영화를 보며 심지어 친구들을 데려다 직접 영화를 촬영하고 제작, 감독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야심 찬 고등학생 도슨이 아마추어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주변의 반응은 기대했던 것만큼 좋지도 않다. 하지만 도슨에게 영화는 그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이자 창이 된다. 사랑의 상심과 좌절,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흔들리고 불안한 정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전부 그의 영화에 스며든다.
도슨: “난 그냥 영화를 만들면서 지난 일을 다 잊고 싶었어.”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어.”
조이: “그렇게 간단하면 좋겠네.”
도슨: “......”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솔직하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 거였어.”
직접 만든 영화가 호응을 얻기는커녕 혹평 일색을 받은 채 실망스러운 결과를 안고 낙담한 도슨이 조이에게 담담하게 전했던 말은 꼭 나의 이야기 같았다.
그동안 내가 실패한 이야기를 썼던 이유. 나 역시 단지 솔직하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아킬은 내게 조이 같은 친구가 되었다. 조이 같은 친구라 하면, 실패가 되었든 성공이 되었든 결과에 관계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지난 일에 대해서 웃으며 말할 수 있고 근황을 주고받으며 또 오늘을 응원해 줄 수 있는 존재이다. 오히려 같은 배치 친구들이었으면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다른 배치였기에 아킬에게는 더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가진 고유하고 특별한 개성과 사고방식 그리고 따뜻한 품성은 내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물리적으로 벗어나게 되었을 때 단 한 명이라도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참으로 근사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1년이 지난 지금, 아킬의 포털 이름은 잘 바뀌어 있을까?
홍콩 호텔의 야외 수영장이 그리워지는 여름이다. 이만한 교훈과 추억이면, 이제 된 것 같다.
내게 이제 통총은 넘어간 챕터가 되어도 될 것 같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