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제식훈련
중학시절 잊지 못할 것이 제식훈련이다.
입학하고 한두 달 되니 시범을 보여야 한다며 방과 후 매일 연습을 하였다.
한 반씩 열을 맞춰 죄향좌 우향우 뒤로 돌아 등을 시범을 보여야 했고 기수가 깃발을 들고
행진하면 학년전체가 발을 맞추어 따라가야 했다.
대대장이 "받들어 총"하면 사열관을 향해 경례도 해야 했다. 꼭 군인 같았다.
봄철이다 보니 나는 검게 얼굴이 타서 동네 아줌마들이 다 놀랐다. "아니, 재가...."
구령에 맞추어 걷다 보면 꼭 틀리는 애들이 있어 연습을 해질 때까지 한 적도 많다.
그렇다고 틀리는 애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같이 가야 하니까 잘할 수 있게 도왔다.
체육시간엔 공 던지기 대신 수류탄 던지기를 했다.
수류탄은 속에 납이 들고 겉은 고무로 싸여있어 무겁고 모양은 진짜 수류탄 같았다.
체력장 시험을 봐야 하는데 수류탄 던지기는 30m가 만점이었다. 만점을 받는 친구는 본 적이 없었다. 그중 내가 잘해서 28 ~29m를 던지곤 했다.
그럼 선생님은 나를 남으라고 하고 애들한테 시범을 보이라 했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하고 던져도 애들은 요령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
"못 던질 것 같은데 많이 나가네?"라는 말만 들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구급낭을 매야했다.
한 번은 구급낭 속에 붕대와 삼각건과 지혈대가 있었는데 이것으로 시험을 본 적이 있다.
교련 선생님이" 머리붕대감기"하면 짝의 머리에 부상병처럼 붕대를 감아야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짝을 지어 시험을 보는데 난 내 짝이 상체는 안 뚱뚱한데 엉덩이는 몹시 크고 허벅지도 몹시 굵은 아이였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보고 "엉덩이 삼각건 매기"를 하라 했다.
삼각건은 엉덩이 한 짝을 싸서 허벅지 쪽에 매는 것이다. 엉덩이를 싸기는 했는데 허벅지가 굵어 아무리 잡아당겨도 삼각건 길이가 짧아 묶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실패로 75점을 받았다.
내 짝은 "미안해! 미안해!"를 연속 말했지만 나는 화가 났다. 선생님 보고 해 보시라고 하고 싶었다.
차마 선생님께 대들 수 없는 시절이라 참았지만 아직도 억울하다. 선생님도 생각이 있으시면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불공평한 시험으로 어떻게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겠는가!
다 같은 것을 시키던지....
그래도 교련덕에 아들이 "엄마! 발을 삔 것 같아!"라 하면 압착붕대로 아들 발목을 팔자감기로 감아주곤 했다.
전쟁 나면 전쟁터에서 다친 남학생을 구하기 위해 배운 것인데 자식을 키우다 보니 다 유용하게 쓰였다.
도둑질만 말고 뭐든지 배워두면 쓸모가 있다는 엄마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시절 전쟁이 나면 다친 남학생들을 구해야 한다는 말은 무서웠다.
"너희가 지혈대 잘못 쓰면 남학생 다리 자른다. 잘 생각해서 써라!"
너무 무서운 교육시간이었다.
선생님도 여선생님이었지만 딱딱한 군인 같았다.
우리 시절 중고등학생은 6.25 때 학도병감이었다.
그때 우린 심심하면 전쟁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어린 우리도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