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본처와 첩
옛날에는 두 집 살림을 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심지어 한 여자하고만 살면 못난 남자라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바람도 피울 수 있는 것이라 바람을 피우면 능력이 있다 생각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엄마가 첩인 친구가 꽤 있었다. 물론 본인은 말하지 않지만 같은 동네 출신이 있으면 다 퍼진다.
그때는 그런 경우면 결혼상대로도 꺼렸다.
내가 일곱 살인 시절 우리 집에 살다 이사 간 아줌마가 있었다. 딸이 하나 있었는데 나보다 훨씬 어린아이여서 자주 그 아이를 봐주고 데리고 놀았다.
업어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엄마한테 혼났다.
"힘든데 왜 남의 아이는 업고 돌아다니냐!"라고.
그 애 아버지는 하루에 한 번 점심에 양복차림으로 들렀는데 그때마다 그 아줌마는 정성스레 따뜻한 점심을 준비했다.
어떤 날은 그 아빠가 좋아하는 돌솥에 굴밥을 지어 양념장을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난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럼 그 아빠는 "허허"웃으시며 맛있게 드시곤 가셨다.
아줌마는 젊었는데 그 아빠는 중년의 신사였다.
늘 회색 양복을 입고 오셨고 머리도 흰 게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무렵에 그 집에 어떤 대학생 오빠와 중년의 아줌마가 찾아왔다.
난 밖에 있었는데 갑자기 냄비가 밖으로 날아오고
솥이 내동댕이 쳐졌다. 요강도 깨졌다.
난 무서워서 얼른 집으로 들어갔고 엄마한테 그 말을 했다.
엄마는 "올게 왔네~."라고만 했다.
요새 같으면 상간녀소송을 할 텐데 그때는 무조건 부수는 게 최고였다.
심지어 머리도 다 뜯고 둘이서 막 때렸다.
그 일이 있고 아줌마는 멀리 이사를 갔다.
소식을 모르는 채 삼십 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같이 독립문 근처에 갔다 돌아오는데 배가 출출해 작은 칼국수집에 들어갔더니 거기서 아줌마가 칼국수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하고 만난 일이 신기하기도 하고 정말 어색하기도 했지만 음식 솜씨는 여전히 좋았다.
그때 그 아빠가 반한 것이 음식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아닌가? 젊음인가....
미모는 3 달가도 음식 잘하는 부인은 평생 간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것 같았다.
돌아오면서 참 다양한 인생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았는지 이해는 힘들다.
난 "사랑이 무슨 죄니?" 또는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싫어한다.
남의 가정을 깨는 사랑이라면 우는 이들이 있는데 어찌 떳떳하고 자신의 사랑만이 귀하겠는가!
그런 일로 받는 마음의 상처는 치료도 어렵다.
나는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안다!
상처 준 자가 받을 때도 온다는 말이다.
남의 눈에 눈물내면 자기 눈엔 피눈물 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