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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엔 너무 어려!

11화. 두 번째 화학요법

by 권에스더

첫 항암 후 3주에 한번 화학요법이 행해졌다.

혈액검사를 한 후에 혈구의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야 치료도 받을 수 있었다. 백혈구의 수가 너무 적으면 면역력 저하 때문에 치료를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약물을 투여하니 첫 번째보다는 남편이 수월하게 견뎠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약물투여가 끝나자마자 저녁식사 시간에 어머님이 가져오신 된장찌개에 비벼 반공기 밥을 먹었다. "된장이 이렇게 개운한지 몰랐다." 했다.

다른 환자들은 아직도 구토를 하는데 남편은 이겨냈다.


"주님을 믿는 자는 독을 마셔도 그것이 몸을 해하지 않는다."라는 성경을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다. "그러니 항암약에도 작용이 없게 해 주세요. 토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이루어진 것 같다는 생각에 힘이 났다.

이제 토하지 않고 먹기 시작하자 코에 넣었던 호수를 뺐고 퇴원도 바랄 수 있게 되었다.


퇴원을 하면 3주에 한 번씩 와서 1박 2일 입원을 해서 약물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지나 남편을 위한 한인 학생들의 기도모임도 끝이 났다. 정말 감사한 모임이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크나큰 사랑이었다.

타지에서 만나 우리가 죽든 누가 그리 신경을 쓰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우리나라였으면 남편을 위한 기도 모임이 열릴 수 없었으리란 생각을 했다.은 이의 문병은

있었겠지만...


열흘쯤 지나서 퇴원해도 된다는 의사의 허락이 나왔다.

7월 초 여름에 입원해서 9월 초 가을에 퇴원해 집으로 왔다,


"병원밖을 나서니 공기도 다르고 햇살이 비추이는 나뭇잎이 어찌 그리 아름답던지!" 병실을 나선 남편이 했던 말이다.


우린 평상시 많은 행복을 잊고 산다.

아니 자신이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겨 모르고 지낸다.

잃을 뻔해야 그것의 소중함을 안다.

아니 잃어봐야 내가 가졌던 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다.

평범한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때 난 깨달았다. 밥 한 끼 어려움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절실히 느꼈다.

우린 똑똑한 것 같은데 참 어리석다!


남편이 퇴원하자 시어머님은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엄마는 나를 도우며 3주 더 계시다가 서울로 가셨다.


이제 남편의 간호는 전적으로 내 몫이 되었다.

나 혼자 잘할 수 있을까 좀 걱정이 되었다.

크게 숨을 쉬어본다.

나만 믿고 자고 있는 남편이 보인다.

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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