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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면 그리움

19화. 날아간 호빵

by 권에스더

내가 대학생이고 언니는 직장 생활을 하던 어느 겨울날 둘이 같이 목욕탕에 갔다.

그 시절은 집에 목욕탕이 있어도 온수는 안 나오는 연탄보일러 집이었다. 가볍게 씻는 것은 물을 데워해도 가끔은 목욕탕이 필요한 시절이었다.


한번 목욕탕에 가면 여자들은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지쳐서 나오곤 했다.

그럼 마실 것도 마시고 빵도 먹곤 했는데 겨울이라 시원한 음료는 생각이 없고 속이 출출해 찜기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야채호빵을 하나씩 사서 먹자 하고 호빵을 샀다.


언니랑 걸어가면서 한입을 먹었는데 야채가 쉰 맛이 났다.

순간 언니를 보며 "쉬었지?"그랬더니 "그렇지!" 하는 것이었다.


다시 목욕탕 앞 가게로 돌아가 "아저씨! 상했으니 이 빵 바꿔주세요." "먹어서 못 바꿔준다." 했다.

"말이 돼요? 속을 안 먹고 어떻게 쉰 줄 알아요?"

"먹어서 난 팔 수 없게 되었으니 못 바꿔다!"


어이가 없었다. 이걸 다시 팔 생각을 한다는 것이.

언니는 "양심 좀 가지세요. 상한 것을 누구한테 다시 팔아요?" "아, 글쎄 못 바꿔줘!"하고 소리를 지르니 화가 난 언니는 자신의 호빵을 아저씨한테 던졌다. 그러더니 내가 들고 있던 빵도 뺏어 그 아저씨한테 던지며 "잘 먹고 잘살세요!!"하고 나왔다.


한 겨울이라 집에 오니 머리카락이 다 얼어있었다.

머리카락이 부러질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도덕이 없던 시절이다.

가게주인에게 다음이란 개념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냥 당장 번 돈 지키기만 급급했던 때다. 가난해서 그런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도덕성의 부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였으면 그냥 빵을 버렸을 것이다.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는 언니덕에 대들어보니 속은 시원했다.

고등학교 때 가게 아줌마에게 거스름돈 잘못 주었다고 말했다가 욕을 욕을 다 먹어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어린 게 어디서 거짓말을 해!"

그때는 잘못하지도 않고 찰지게 먹는 욕을 감당을 못했었다.

억울해서 못 잊는 기억이다.


이번엔 언니가 있으니 경우가 달랐다.

학교에선 배울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시절은 뭔가 모르게 무서운 사람이 많았다.

요즘은 너무 많이 상냥해져서 그것도 살짝 무섭다.

그냥 진솔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이랬던 내가 이제는 싸움에서 안 진다.

나이 탓인 것 같아 씁쓸하다.

곱고 수줍음을 아는 여자로 늙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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