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책임감
어린 시절 동네친구가 많았다.
또래가 많았지만 또래라고 다 친구는 아니었다.
쪼꼬매도 마음이 맞아야 친구가 되었다.
그중에 아빠가 침대공장을 하는 집이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위의 형과 한 살 어린 남동생이 있어 그 집에 자주 놀러 다녔다.
그 집 엄마는 오래전 그 집 가정부로 들어와서 일하던 사람이란 말을 들었다.
첫째 부인이 아이를 둘 낳고 돌아가시자 그 엄마가 들어와서 자식을 다섯이나 낳았다.
그 아이들이 내 친구였다.
가정부였다고 말하니 그런가 보다지 그 엄마는 피부도 희고 곱고 품위 있게 잘생긴 외모였다.
그 엄마는 품성도 좋았다. 아이들을 소리치고 야단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아빠가 무섭게 생기고 아주 인색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그 집에서 놀려고 가는데 리어카에 수박을 잔뜩 실은 장사가 그 아빠한테 수박을 삼각형으로 따서 맛을 보라고 주었다.
맛을 본 그 아빠가 "맛도 없네!"라며 집으로 들어가자 수박장사는 "이 수박 못 팔아요. 제발 사주세요!"라며 따라갔는데 그 집 아빠는 거절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따뜻하게 대해주어 그 집에서 밥도 여러 번 온 식구와 같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식구가 많아 큰 교자상을 펴고 먹었는데 그 엄마가 "밥 먹고 가라!"라고 하도 그러셔서 끼여 앉아 먹었다.
그 집에서 대리석을 문질러 닦아 무늬를 내는 것도 처음 봤고 토종꿀도 처음 먹어봤다.
집을 수리해 이층으로 만들었지만 동네가 점차 개발되면서 그 집은 외곽으로 이사를 갔다.
한 육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집 엄마가 우리 집에 들러 그간의 일들을 알려주었는데 그 집 아빠가 암에 걸려 돌아가셨다했다.
놀라서 듣고 있는데 "방광암이라 방광을 제거 후 소변봉투를 차고 다녔는데 그러면서도 본인이 죽고 나면 아내와 자식들이 고생할까 봐 그 걱정만 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자식 앞앞이 살만한 집을 지어주고 아들들은 가구점도 하나씩 장만을 해주고 엄마를 위한 집과 돈은 따로 주며 이것은 절대 이이들한테 주지 말고 혼자 써라고 하고 돌아가셨다" 했다.
이 말을 듣는 엄마는 "세상에 대단하시네요!"란 말만 하셨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내가 자신이 죽은 후 고생할까 봐 자식도 챙기고 부인이 지킬 마지막 재산도 준비해 주었던 것이다.
보통은 죽는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일반인데 자신보다 얼마나 부인을 걱정하는지 감동이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 내가 독일에서 돌아와 가구점을 엄마와 들린 적이 있는데 갑자기 "ㅇㅇ 어머님 아니세요?"라며 나오는 사람이 있어보니 어릴 적 놀던 그 친구였다.
우린 서로 못 알아보게 컸지만 엄마는 옛 모습이 있으니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그 아빠생각이 났다.
아들의 가구점은 우리나라 유명 브랜드 가구점
이었다.
산사람들 앞날을 준비해 주고 가셨다더니..,
참 대단한 남편이자 아빠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자식은 그렇게 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때 그 수박 좀 사주지란 생각도 함께 들었다.
아무튼 그 아빠는 내 머릿속에 남은 진한 감동이었다.
자신의 생의 남은 시간을 가족위해 쓰다 간 아빠이자 남편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