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련
시련의 시간들은 덕이와 준기를 더욱 단단하게 했다. 영은 무탈하게 잘 자라주었고,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인기 만점의 아이가 되었다. 강 씨 할아버지의 인솔하에 동네 어귀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이제는 영이 누군지 동네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관심이 많아지자, 영의 엄마가 다리를 저는데, 그 이유가 영을 낳다가 그렇게 됐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을 타고 돌아다녔다. 딱하다는 동정이 선을 넘기 시작했다. 동네 여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여러 가지 처방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애를 낳다가 생긴 병이니 애를 하나 더 낳으면 다시 정상이 될 수 있다는 희한한 논리의 말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기에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는 그 소문들이 크게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이 5살이 되던 해에 덕이는 돌아다니는 얘기들을 준기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영의 동생을 갖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준기는 미안하지만 그런 말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지금 건강을 더 챙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영 하나만 잘 키워도 된다고 말하며, 무리하지 말자고 말했다.
백군과 초희의 사이엔 아직 아이가 없었다. 처음엔 초희의 고집이었으나, 이상하게 노력을 해도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 초희는 시간이 갈수록 백군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 초희는 백군에게 “우리 이제 그만 포기하고 예쁜 아기 하나 입양하면 어때요?”라고 물었다. 백군은 “우리 아직 젊고 의지도 있는데 좀 더 기다려 봅시다. 그리고 난 괜찮으니 이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백군은 가끔 먼발치서 영이 동네 어귀에서 노는 모습을 훔쳐보며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내곤 했다. 백군은 회사에서 입지를 완전히 굳혀 회사의 중요한 인물로 성장했다. 중요한 의사결정과 핵심 인사에 관여하고 회사의 중역으로 나이에 맞지 않는 빠른 승진을 이뤄냈다. 초희도 순도와 불편했던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 보다 순도의 미래에 더 신경 쓰는 모양이었다.
또 한 번의 여름이 지날 무렵, 덕이는 준기에게 영이 외로우니 동생을 만들어 주자고 얘기했다. 준기는 지금 체력으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그렇지만 덕이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난 괜찮으니, 영에게 동생 만들어 줍시다.”라고 집요하게 얘기하고 졸라댔다. 준기는 덕이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덕이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마음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동네에서 돌아다니던 소문들이 원망스러웠다. “조금 더 생각해 봅시다.”라는 말로 준기는 시간을 벌었다.
준기의 회사는 건설 붐을 타고 잘 성장하고 있었다. 큰 경험을 했기에 준기의 운전석 옆에는 맥주나 술병이 없었다. 간혹 저녁에 회식을 하는 날이면 준기는 차를 두고 다니는 현명한 결정을 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그렇지만 좀처럼 소득이 늘지 않고 저축하기에도 월급은 빠듯했다. 준기는 가끔 생각했다. ‘나도 김 상사님처럼 운수업을 한 번 해보면 어떨까?’라고 준기는 사업에 마음이 온통 쏠려 있었고 덕이는 둘째를 갖기를 소원했다. 그렇게 평온한 일상을 사는 동안 덕이는 계를 들어 목돈을 만드는 일을 했다. 힘들게 세 머리를 들어서 새해가 되자 3백만 원을 손에 쥐게 됐다. 강 씨 할아버지는 집을 사라고 권했다. 덕이도 작더라도 집을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준기는 마음이 복잡했다. 덕이와 강 씨 할아버지 말처럼 집을 사고도 싶었고, 한편으론 삼륜차 몇 대를 사서 운수업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결국 집을 사자고 마음먹고 새로 짓고 있는 집을 가 계약하고 집으로 돌아온 저녁 준기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평소와 다르게 자는 덕이를 깨웠다. “미안한데, 집사는 걸 좀 미룹시다. 우리가 더 잘되려면 내가 김 상사님처럼 사업을 해야 할 것 같아” “3백만 원이면 삼륜차 3대 정도 운영할 수 있을 거야.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덕이는 준기의 눈 빛을 보고 간절함을 느꼈다. 그렇게 하자고 준기를 안아주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서로를 탐닉 하며 신혼 같은 밤을 보냈다. 결국 집 계약을 물리고, 봄이 될 무렵 준기는 삼륜차 세 대를 구입했다. 김상사는 경험을 좀 쌓고 사업을 시작하면 좋겠다고 조언했으나 이미 일을 시작됐다. 개업식을 하는 날 김 상사는 준기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다. 사업을 운영해 보지 않았으니, 기사 및 직원을 다루는 것이 매우 힘들 것이라는 것과 회계처리 등에서 사고가 자주 난다는 말 등 걱정과 응원을 섞어 얘기했다. 잔뜩 들뜬 준기는 처음으로 김 상사의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 잔소리로 들렸다. “네, 네” 대답은 했지만 건성이었다. 개업과 함께 준기와 덕이는 둘 사이에 둘째가 생긴 걸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기뻤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도 다니고 잘 준비하기로 두 사람은 다짐했다.
처음 부딪힌 어려움은 기사를 고용하는 일이었다. 잘 될 것만 같았던 일 들이 풀리지 않았다. 일을 주겠다던 회사들도 준기 회사의 대응이 늦자 기다려 주지 않았다. 준기는 초조했고, 김 상사의 조언을 새겨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준기는 염치 불고하고 또 김 상사를 찾았다. 김 상사는 마다하지 않고 준기의 어려움을 듣고 기사를 구하는 일을 도왔다. 운수업을 오래 해 온 터라 주변에 인맥이 많았다. 김 상사 덕분에 기사 둘을 구했다. 한 대는 준기가 집적 운행을 했고, 고용한 기사 둘이 각 각 한 대씩 맡아서, 운행을 하기로 했다. 준기는 다시 끊어진 일감을 찾으러 다녔으나. 쉽지 않았다. 백 군은 소식을 듣고 몰래 준기 회사에 용역을 주도록 조치를 취했다. 준기는 그렇게 큰 회사에서 자기에게 일감을 준 것에 대해 놀라기도 했고,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준기는 그 회사가 백군이 다니고 있는 회사인지, 또 그가 도왔는지 전혀 몰랐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갈 무렵, 크고 작은 일들이 소소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사장이 직접운전을 하고 다니니, 다른 기사들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큰 교통사고가 날 뻔하기도 하고, 배달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근무를 태만하게 하는 일등 답답한 일이 계속 생겼다.
사업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될 때쯤 큰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기사 하나가 차를 가지고 잠적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에 신고하고 담당했던 거래처의 물건을 회수하지 못해 손해 배상도 해야 했다. 준기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억울하고 매일 화가 치미는 것을 겨우 누르며, 차를 몰았다. 덕이는 배가 봉굿이 솟아 있었고, 준기의 상황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두 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서 차를 늘리자고 마을 먹은 순간 남아 있던 차의 운전기사가 사고를 냈다. 음주 운전이었다. 차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고, 기사도 많이 다쳤다. 준기 회사의 기사가 음주 운전으로 벌인 일이라 거래처의 손실과 사고로 인한 상대편의 피해를 모두 떠안아야 했다. 결국 남은 차 마저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1년도 못 가서 모든 것을 날렸다. 준기는 덕이를 볼 수가 없었다. 다시 직장을 구해야 했다. 며칠을 화병으로 누워 있다가 준기는 불러오는 덕이의 배를 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자신에게 흔쾌히 일감을 준 회사를 찾아가 운전기사 자리가 있는지 물었다.
-미련-
지난 일은
되돌릴 수 없어요.
후회도 의미 없죠.
그러나 다른 유혹으로 남아
마음을 멍들게 해요
미련은 그래요
마음이 가는 곳마다
그리움이란 모습으로
발목을 잡아
알 수 없는 세상으로
나를 이끈답니다
미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