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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없는 길 위에 선 시간

15부. 에필로그

by 고영준SimonJ

스쳐 간 바람처럼 그렇게 다시 못 올 시간이 흘렀다. 흔들렸던 머리카락이 휘청휘청 다시 돌아오듯 제자리로 돌아오는 무심한 것들의 반복은 흔적 없이 지나간 시간을 무뎌지게 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무엇을 찾아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해질 때쯤 내 흔적을 찾기 어려워지는 것은 왜일까? 한 발 너머의 나를 볼 수 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머리카락이 반백이 되고 나니, 멀리 달아난 것만 같았던 시간이 늘 옆에서 안타까이 나를 보고 있었음을 알았다. 때로는 뒤에서 앞서간 줄 만 알았던 시간이 서두는 나를 보고 있었고, 무뎌진 발걸음에 흐느적거리는 동안에도 재촉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시간은 그저 안타까운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시켰을 뿐이다.


이 순간, 어머니의 시간도 나의 시간도 나란히 간다. 언젠가 누군가의 시간이 영원으로 가더라도 이젠 함께 나란히 간 시간 속에 지나온 모든 시간까지 담아 기억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작은 조각 하나까지도!

하얀 바람이 분다. 언젠가처럼 차갑고, 머릿속 찌꺼기까지 훅 담아 달아날 바람이 옷깃을 잠그고 맑은 눈을 뒤돌아보며 지나간다. 이젠 잊지도, 찾지도 않을 것이다. 옆에 두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지켜서 다시는 흔적 없는 길 위에 서지 않을 것이다.

긴장의 심장이 뛰고, 희열의 박동을 뿜어내고, 다시 숨고 또 반복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숙명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바로 선 나로!!!


흔적 없는 길 위에 선 시간은 나의 흔적이었다.


많은 것을 쏟아 낼 것 만 같은 시작이었지만, 많이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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