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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경이로움

by 한빛나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온 순간, 나는 비로소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똑같은 모양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나의 시선과 감각은 모든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아침은 밝았고 밤은 어두웠지만, 아이가 온 뒤로는 그 빛과 어둠조차 다르게 느껴졌다.

“엄마가 되었다”라는 사실은 내 일생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
이제는 누구의 딸이자 아내로만 불리던 나의 이름 앞에 ‘엄마’라는 호칭이 붙었다.

그 짧은 두 글자가 내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처음’이라는 단어로 다가왔고, 나는 매일같이 그 처음을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였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울음을 터뜨리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울음은 낯설고 서툴렀지만, 내 심장을 가장 크게 두드린 음악 같았다.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그러나 단번에 나를 사로잡는 울림.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울컥 눈물이 났다.

‘살아 있다’는 사실, 내 품 안에 생명이 있다는 기적이 실감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의 울음은 나에게 경이로움이자 책임감이었다.
이 작은 생명이 이제부터 나를 의지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깨달음이 벅차게 밀려왔다.

두렵기도 했지만, 그 두려움마저 새로운 생명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것이었다.


며칠 후, 아이와 처음 눈을 맞춘 순간이 찾아왔다.
아직 초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눈이었지만, 그 시선은 나를 깊이 끌어당겼다.

아이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나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바닷속을 탐험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이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 나 왔어.”
“그래, 나야 엄마야... 너를 기다렸단다.”

눈빛 하나로 충분했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약속이 오가는 순간, 나는 새롭게 경이로운 언어를 배우는 느낌이었다.


처음 젖을 물리던 날은 낯설고 어색했다.
작은 입술이 내 몸을 찾고, 내 심장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두려움과 아픔이 뒤섞였지만,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연결이 있었다.

아이는 나를 통해 살아가고, 나는 아이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엄마가 된다는 건 단순히 아이를 품에 안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새로운 생명을 향해 열어젖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처음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때, 나는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고요히 오르내리는 작은 숨결, 세상 무엇보다 평온한 얼굴. 그 장면은 마치 시간을 멈추게 했다.

나는 한밤중에도 불을 꺼버릴 수 없었다. 혹시라도 그 숨결이 멈출까, 혹시라도 아이가 깰까, 혹시라도 내가 그 기적 같은 순간을 놓칠까 두려워서.

아이의 잠든 얼굴을 지켜보던 그 밤.
경이로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서 가장 평범하게 숨 쉬는 모습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많은 처음을 함께 하며

그 후로도 처음의 순간들은 끝없이 이어졌다.
처음으로 뒤집던 날, 처음으로 앉던 날, 처음으로 두 발을 내딛던 날. 작은 순간 하나하나가 모두 기적처럼 다가왔다.

특히 처음 “엄마”라는 말을 들었던 날, 나는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그 한 마디가 내 모든 수고를 보상해 주는 것 같았다.

밤마다 지쳐 울고, 낮마다 버거워하던 시간이 그 한 마디 앞에서 다 녹아내렸다.

아이의 성장 속에는 늘 나의 경이로움이 함께했다. 아이는 세상을 처음 배우고 있었고, 나는 아이를 통해 다시 배우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결국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여정이었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연약한지, 동시에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내 안의 모든 감각과 마음이 아이와 함께 다시 태어났다.

평범한 길을 걸어도 여행이 되었고, 사소한 장난감 하나에도 우주는 펼쳐졌다.
아이는 내게 매일 ‘처음의 경이로움’을 선물했고, 나는 그 선물 앞에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처음’은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한다.
낯설고 서툴고, 때로는 실패와 눈물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한 모든 처음은 두려움 너머에서 경이로움으로 빛났다.

그 경이로움이 있었기에 나는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다시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처음의 경이로움
그것은 내 아이가 준 가장 값진 선물이자, 내 삶을 다시 살아가게 한 힘이었다.


아이와 함께한 모든 순간은 ‘처음’이었고, 그 처음들은 나를 울리고 웃기며, 내 안의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깨워냈다.

나는 여전히 엄마라는 이름에 서툴고, 여전히 많은 순간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느낄 수 있다. 두려움 너머에는 언제나 경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경이로움이, 내 인생을 다시 쓰게 하고 있다.



[함께하는 작가님]

지혜여니, 따름, 김수다, 아델린, 새봄, 바람꽃, 다정한태쁘, 한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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