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조금 더 즐겁게, 조금 더 편안하게, 조금 더 잘 자라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책을 찾아 읽고, 강의를 듣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 모든 열심이 사실은 ‘아이를 위한 노력’이 아니라, 어쩌면 ‘불안한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아이가 태어났을 때, 친정엄마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엄마! 나는 아이한테 내가 못다 이룬 꿈, 음악가를 시킬 거야!”
엄마의 대답은 늘 같았다.
“키워봐라. 너 맘대로 되나… 자식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다.”
그 말이 그땐 그냥 지나가는 잔소리처럼 들렸는데, 지금 열한 살이 된 아이를 보며 조금씩 이해가 된다.
내가 욕심을 부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구나. 하지만 아이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예전엔 아이가 조금만 계획에서 벗어나도 불안했다. 그리고 아이도 계획에 맞추어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숙제를 미루거나, 방이 어질러져 있거나, 내 기준에서 조금만 맞지 않아도 그 모습을 바로잡아야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그건 아이를 위한 ‘지도가’ 아니라, 내 불안을 숨기기 위한 ‘방패’였던 것 같다.
하나, 둘 조금씩 내려놓아 보기로 했다. 조금 덜 가르치고, 조금 덜 개입하고, 대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이가 더 편안해졌고, 나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가 완벽하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기만 했는데도 우리 사이엔 웃음이 더 자주 머물기 시작했다.
조금 덜 완벽해지려는 연습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습관처럼 튀어나오던 말들을 삼키고, 해야 할 일 같던 것들에서 한 발 물러서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하루를 천천히 살아보니, 아이도 나도 조금씩 숨이 트였다. 어느 날은 사소한 농담에 함께 웃고, 어느 날은 느리게 걷는 아이의 걸음을 맞추며 그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곤 했다.
예전 같으면 불안했을 순간들에서도 이제는 괜찮다. 그저 오늘의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조금씩 내 안에 자리를 잡아간다. 그리고 그 말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 때마다 우리는 어쩐지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흔들릴 것이고, 때로는 예전의 조급함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그럴 때는 내려놓으려 또 애쓰면 되니까...
우리는 조금 느리고, 서툴지만, 오늘도 함께 자라고 있다.
[함께하는 작가님]
지혜여니, 따름, 김수다, 아델린, 새봄, 바람꽃, 다정한태쁘, 한빛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