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화 (點火)

파열의 서곡

by 김가희


애당초 정상을 삼켜 버릴 불씨가 기저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그것이 성취의 성탑을 집어삼킨 순간, 불길은 주저 없이 하늘 끝까지 번져 나갔다. 벽돌마다 새겨 놓았던 신념이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을 보며, 나는 허무인지 환희인지 모를 웃음을 토해 냈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는 시간의 족쇄에 매달려, 침범조차 허락하지 않는 장대한 성채를 쌓아 올려왔던 것이다.




권력이라는 불씨는 태어날 때부터 내 안에서 깊숙이 숨 쉬고 있었다. 원한 적도 없지만 늘 타인을 끌어당겼고, 그 흡인력은 평범한 우정의 온도를 쉽게 뒤흔들었다. 어린 시절, 나는 그 현실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힘이 있는 한 진실한 친구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은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여린 자아를 가졌던 나는, 내재된 힘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나는 평등을 신앙처럼 품었다. 우열이 싹틀 기미가 보이면 주저 없이 스스로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하지만 그렇게 짓눌린 관계는 결국 지속될 수 없었다. 내가 배웠어야 했던 것은 억압이 아니라 조절이었다. 세상에 보탬이 되도록 힘을 드러내는 방법—그 관계 맺음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나의 과제였던 것이다.


깨달음은 한 번에 오지 않았다. 나의 무의식은 각기 다른 얼굴을 지닌 영혼들을 동원해, 동시에 나를 포위했다. 억눌림에 길들여진 이, 나와 같은 결로 사랑하고 상처받는 이, 내 안에 억눌린 통솔자적 본능을 과시하는 이, 지배욕을 통제하지 못해 결국 타인에게 상처를 남기는 이―그들은 거울 조각처럼 빛을 굴절시키며 내 앞에 서 있었다.




성채의 첫 불씨는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점화되었다. 표면적 욕망은 사회적 승인과 맞닿아 있었고, 그것들은 돌과 강철로 요새를 쌓아 두었다. 그러나 그 아래, 작아져버린 진짜 욕망은 굴복하지 않았다. 안쪽에서부터 벽돌을 밀어 올리며, 벽을 허물기 위해 틈을 노렸다.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나의 영혼은 무의식을 통해 결핍 가득한 다른 영혼들을 성채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누며, 내 욕망의 층위를 헤집었다. 불꽃은 벽을 타고 번졌고, 성채 전체가 흔들렸다. 이 격앙된 투사는 파괴가 아니라 자각을 목적 삼은 ‘내적 공성전’이었다.



몸은 혼돈에 잠겼다. 눈물은 흘러내리고, 분노는 폭음처럼 터졌다. 애정은 입김처럼 번졌고, 늦게 따라온 자책은 가슴을 찔렀다. 감정들이 파도처럼 얽혀 휘몰아치는 현실 앞에서, 나는 어디에 방패를 세워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바로 그 틈, 성채의 지하에서 불씨가 붙었다. 내가 눈치챘을 땐 이미 벽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생각해 보면, 눌려 있던 욕망을 나는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의식이 즉시 덮개를 씌웠고, 스스로에게 ‘이것이 옳다’고 속삭였다. 그 속삭임이 합리화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내 영혼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를 선택했고, 감정이라는 감각으로 나를 뒤흔들었다—끝내 억눌린 욕망을 체험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욕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면 자아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린다. 그러나 그 방어는 역설적으로 무게가 되어 나를 짓누른다. 성취를 좇아 쌓아 올린 것들이 어느새 짐으로 변하고, 좌절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알고 있다'는 선언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곳. 변화는 인식이 아니라 체감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순간을 감각하고, 그 진실을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인간의 진정한 변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지식은 어둑한 야간등에 불과하다. 셀 수 없이 많은 문장이 ‘네 모습을 드러내라’ 속삭였지만, 몸은 미동조차 없었다. 탑에 균열이 나기 전까지, 모든 조언은 머릿속 서랍에서 먼지만 뿜어냈다. 몇 번의 실천이 나를 조금씩 바꾸긴 했으나, 근본까지 흔들어 놓진 못했다. 실천은 벽돌 몇 장쯤은 옮겨 놓았을지 몰라도, 토대를 뒤흔들진 못했다. 결국 탑은 불길과 함께 무너졌고, 그 시나리오는 어떤 책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인간의 움직임은 두 축으로 정리된다. 증대(growth) — 기존 토대를 유지한 채 능력과 지식을 덧칠하는 흐름. 전환(transformation) — 토대 자체가 해체되고, 전혀 다른 규칙으로 다시 짜이는 흐름. 증대는 의식적 노력—학습, 습관, 반복—으로 축적된다. 전환은 반대로, 체계가 한계에 부딪혀 방어막이 과부하로 꺼질 때, 예기치 못한 사건이 틈을 열며 일어난다.


전환의 임계점은 세 단계로 응축된다. 정서 포화 — 감정이 신경계의 임계선을 초과하는 순간. 의미의 공백 — 익숙한 언어와 가치가 정지되어 세계의 지도에 하얀 여백이 생기는 상태. 내발적 재편성 — 그 공백 속에서 새로운 규범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현상. 의지는 이 과정에서 성냥 하나쯤에 불과하다. 탑을 뒤엎는 힘은, 오직 예기치 못한 사건의 불꽃에서 시작된다.


탑이 무너진 자리에 처음으로 맨발의 힘이 솟구친다. 성취도 좌절도 아닌, 존재의 원천에서 터져 나온 순전한 불꽃. 그것은 예전의 성채를 복원하지 않는다. 무너진 돌 위에 새 길을 긋고, 낡은 경계 너머로 삶의 결을 다시 짜 넣는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발걸음을 흉내 낼 필요가 없다 — 전환은 이미 한 차례, 익숙한 무게를 벗은 몸으로 시작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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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내면에 흐릅니다.

이 글은 '가희: 그럼에도 희망을 이음' 연재 중 하나로,

감각을 지나 정돈되어 가는 생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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