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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고, 올레

3. 걷기 (4) 서귀포 걷기 : 올레 6, 7, 7-1 코스

by HONEY

서귀포 시내를 걷는 올레 6, 7, 7-1코스는 제주 올레 여행자 센터가 도착점이고 출발점이다. 센터 3층에 있는 올레 게스트 하우스를 두 번째 숙소로 정했다. 올레 스테이는 올레꾼들에게 최적의 장소였다. 아침의 따뜻한 죽, 저녁의 집밥 그리고 복귀 후 마시는 수제 맥주까지 그야말로 딱이었다. 전날 5코스에서 비를 쫄딱 맞아 옷과 신발이 온통 젖어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는데, ‘쉬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세요. 잘 걷고 계시는 거예요.’라는 어르신 자원 봉사자의 말에 처져 있던 어깨도 기분도 다시금 올라왔다.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베풂이란 그런 것이었다.


올레 여행자 센터 : 올레 완주증은 여기서 받는다. 게스트 하우스는 이 건물 3층에 있고 최근에는 길건너에 신관도 생겼다.


올레 스테이 내부(좌) 1인실 매트리스 하나 들어갈 크기 혼자 있기에 충분했다(중) 추가 비용을 내면 먹을 수 있는 아침 죽은 걷는 이에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우)

끝없이 포말을 일으키는 바다를 왼쪽으로 끼고 6코스를 걸었다. 걷다 보니 소천지에 이르렀다. 백두산 천지를 닮아서 소천지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날씨가 좋으면 한라산이 물에 비친다는 곳이었다. 나의 공덕이 부족했던지 아쉽게도 한라산 그림자는 볼 수가 없었다. 서귀포 시내에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이 보였다. 호기심이 있는 일부 관광객은 정방폭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역방향으로 걸어왔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소정방폭포를 만날 수 있다고 마주 오던 사람들에게 생전 하지 않던 오지랖을 부렸다.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서 그 좋은 광경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관광객으로 왔을 때는 그랬으니까. 정방폭포 단지에 있는 왈종 미술관은 하필이면 휴관일이라 그림 잘 그리는 선배와 같이 가보고 싶었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아쉬웠다.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는 소천지(좌) 정방폭포처럼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소정방폭포. 작지만 시원했다.(우)

7-1코스는 서귀포 도심을 지난다. 서귀포 버스 터미널 앞에서 출발, 고근산 정상을 거쳐 올레 센터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도시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 100밀리 이상의 비가 와야만 모습을 보여 준다는 엉또 폭포를 지났다. 물이 쏟아지지 않는 폭포는 그저 깎아지른 바위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근산 정상에 이르는 산길을 들어섰다. 고근산은 오르기 힘들다는 경험담이 많아 약간 겁을 먹고 있었는데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몇 번의 숨 고르기와 휴식 끝에 산등성이에 오를 수 있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걸으니 서귀포 앞바다의 섶섬, 문섬, 새섬과 범섬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간 걸어온 길을 가늠해 보았다. 짧은 소회를 뒤로하고 산 모퉁이를 돌아설 즈음, 나도 모르게 ‘헉’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마치 한라산이 나에게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서편에서 흘러오던 구름은 한라산의 산비탈을 타고 오르다가 산봉우리에 걸려 한참을 맴돌았다. 백록담 남벽은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말듯하며 폰을 들고 자신을 찍으려는 길손의 애를 태웠다. 산꼭대기에서 버티던 구름은 바람에 밀려 한라산의 동쪽 비탈로 흘러내려 마침내 서귀포 앞바다로 뛰어들었다. 한참 동안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내가 느낀 감흥을 전해주고 싶어, 짧은 동영상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냈다. 집을 벗어나야만 자상한 아빠가 되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제주도에서 논농사를 짓는다는 하논 분화구를 지났다. 분화구 아래의 느낌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또 달랐다.


고근산에서 정상에서 본 한라산. 힘들게 오른 보상으로 충분했다. (사진 좌) 하논 분화구의 논. (사진 우)

올레꾼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7코스는 올레 센터에서 출발한다. 황우지 선녀탕은 아쉽게도 낙석 위험 때문에 통제하고 있어서 가까이 가보지 못하였다. 사람들의 잦은 방문으로 인한 번잡함을 선녀가 싫어해서 돌을 굴려 놓은 것은 아닐까는 실없는 상상을 해 보았다. 황우지 해안부터 시작된 바당길은 왜 많은 이들이 7코스를 좋아하는지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외돌개, 법환포구, 서건도를 내 발로 걸으며 가까이에서 보았다. 평화를 외치던 강정마을도 지났다. 많은 시간이 흘렀으나 완전한 평화에는 이르지 못한 듯했다. 군데군데 남아 있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7코스는 풍광이 뛰어난 곳이 많다.

서귀포 칠십리 공원에서 본 천지연 폭포, 서건도, 외돌개(사진 좌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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