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게 뻗은 길 위에서
길은 원래부터 반듯한 것이 아니었다.
논과 논을 가로지르는 길은 물길을 따라 휘어졌고, 사람들의 발길이 가는 대로 모양이 만들어졌다. 농사짓는 이들이 더 자주 밟는 길은 넓게 다져졌고, 가끔 지나가는 길목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구불구불하고 제멋대로였지만, 불편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늘 그래왔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논둑과 도랑 사이에 빨간 깃발이 세워졌다.
"여기에 신작로가 놓일 것입니다."
이내 불도저가 들어왔다. 길을 가로막던 두렁과 웅덩이, 오래된 돌담과 작은 언덕은 모두 밀려나갔다. 사람의 발걸음이 아니라, 기계가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길은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정리되었다. 구불구불한 것들은 사라졌고, 사각형의 땅이 질서 있게 나뉘었다. 길이 뚜렷해지고, 논과 밭이 정리되었다. 한 칼로 베어낸 듯한 도로 위에서, 세상은 한층 단순하고 명확해 보였다.
그 시절, 우린 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무도 길이 반듯해야 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논두렁이 사라지면 물길은 어떻게 될지, 신작로가 지나가면 마을은 어떻게 변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그때는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중요했다. 논과 밭이 가지런해지고, 길이 넓어지고, 마을이 정리되는 것이 ‘발전’이라고 정의됐다.
불도저가 길을 닦듯, 우리의 사고도 깎여나갔다.
길이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방식도 깍듯하게 정리되었다. 마을의 풍경이 단순해지는 만큼, 우리의 생각도 명확한 선 안에서 움직였다. 무엇이든 빠르고 효율적인 것이 최선이었다.
국가가 제시하는 목표는 의심 없이 따라야 하는 것이었고, 개인의 삶보다는 공동체의 발전이 우선이었다. 국민교육헌장이 말하듯, 우리는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했고, 자조·근면·협동을 실천해야 했다.
도로가 넓어지고 차가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농산물을 더 빠르게 시장으로 실어 나를 수 있었다. 성과는 분명했다. 하지만, 바둑판같은 논밭과 함께, 우리의 사고도 그 틀 안에 갇혀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길이 넓어지자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었다. 예전보다 더 빠르게, 더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농촌과 도시의 거리는 가까워졌고, 더 많은 물건이 오갔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었다.
그러나 길가에서 마주치던 이웃과의 인사는 줄어들었다. 논둑을 따라 걷던 발걸음의 속도도 빨라졌다. 물길을 따라 휘어지던 작은 길들이 사라진 것처럼, 삶의 결도 한층 단순해졌다.
우리는 여유를 잃었다.
하지만, 단순히 잃은 것을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발전과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우리가 신작로를 놓았던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눈앞의 성과만 보고 밀어붙이는 시대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더 편리한 길을 만들면서도, 그 길 위에서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더 빠른 길을 추구하면서도,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지 신중해야 한다.
더 넓은 길을 만들면서도, 그 길 위에서 사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길을 곧게 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는,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할 문제다.
곧게 뻗은 길 위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굽이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