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마리의 고고한 야수
가끔, 책이나 유튜브에 저런 신화를 쓰는 사람들이 등장해서 인터뷰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와닿습니다. 대리운전, 식당 설거지를 전전하다가 어쩌다 생긴 300만 원으로 주식을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지난 4년 뒤, 저는 20억 자산가가 되었습니다. 라며 눈물 어린 과거와 함께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습니다. 그들이 거짓을 말한다고는 절대 생각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니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나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장 달콤하게 와닫는건 역시 ‘300만 원으로 시작’ 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당장 무일푼인 나지만, 어찌어찌 몇 달만 노력하면 나도 300만 원은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코인으로 거부가 되었든, 주식이든, 선물이든, 그건 딱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도 ‘희망’이라는 글씨로 다가오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성경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은 타고난 사람들입니다. 만에 한 명, 아니 수십만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통찰력과 간덩이, 그리고 결단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저 그런 코인이나 주식에 운 좋게 투자해서 ‘돈 딴 사람’이 아닙니다. 아귀굴에서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움을 하고 자기 주변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경쟁자들을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때까지 쓰러트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실력을 쌓아서라기보다는 ‘타고난’ 사람들이 비율적으로 훨씬 많더라는 겁니다. 투자라는 행위를 통해 돈오 했달까, 아니면 기혈이 뚫렸달까, 그런 거죠. 그 왜 있잖아요 무협지 보면 주화입마에 걸려야만 자신의 힘을 발휘한다던가, 전신의 혈도가 다른 사람과는 정 반대로 나 있어서 내공을 수련할 수 없지만 외공에 탁월한 재질이 있다던가 뭐 그런 거요. 그들은 타고난 '야수' 혹은 '괴수'입니다.
그러니까, 당신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궁금합니다. 나도 혹시나 그런 소질이 있을지 모르잖아? 많은 돈은 아니어도, 5만 원쯤은, 10만 원쯤은, 100만 원 정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그러실 겁니다. 적은 돈으로 모험적인 투자를 해보고 싶은 욕망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닙니다만, 그런 소액으로 투자하려고 막상 찾아보면, 뭐든 많이 시시합니다. 아무리 내렸다지만 100만 원으로는 삼전은 20개도 못 사고, sk하이닉스는 5개도 못 삽니다. 그리고 이런 우량주들은 도대체가 움직이질 않습니다. 하루종일 쳐다보고 있어 봐야 0. 몇 퍼센트, 많아봐야 2퍼센트 왔다 갔다 합니다. 100만 원에 2%.. 2만 원? 시시합니다. 이런 것으로는 도저히 20억을 만들 수 없습니다. 나는 100만 원을 다 잃을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겨우 이런 것으로는 나의 돈 벌고자 하는 욕망을 도저히 채울 수가 없습니다.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맵니다. 변동성이 크고, 한방이 있고, 결정적으로 개당 가격이 싸야 합니다.
결국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서울식품 이트론 이아이디 같은 주식을 100만 원어치 삽니다. 정말 든든합니다. 지금 서울식품(004410) 주가가 150원대니까, 100만 원이면 6000개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150원짜리 주식이니까 어중이떠중이가 모여 있을 것 같죠? 아닙니다. 당신의 5만 원, 100만 원을 뜯기 위해 하이에나와 피라니아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피비린내 나는 아귀굴입니다. 순식간에 손해를 봅니다. 운이 좋으면 몇만 원, 생각 없이 며칠 두면 순식간에 당신의 돈이 반토막이 될 겁니다. 아. 괜찮습니다. 이건 ‘잃어도 되는 돈’ 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위험한 투자에 발을 들였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세상에는 ‘잃어도 되는 돈’ 같은 건 없습니다. 5만 원도 소중하고 100만 원은 더 소중합니다. 돈을 잃은 것도 가슴 아픈 일인데, 당신은 가슴이 아픈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외면하는 중입니다. 잘 놀다 갑니다 같은 소리로 위무할 것이 아닙니다. 리스크를 이해하지 않고 이런 상황을 겪으면 일단 투자에 부정적인 감정이 앞섭니다. 다시는 보기 싫어질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집니다. 5만 원을 넣고 22000원이 된 것을 외면하는 건.. 그래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치킨 두 마리 안 먹었다 치고, 남은 22000원이 30만 원이 되길 기도하는 것도 뭐, 방법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100만 원이 47만 원이 되고 난 것을 가슴 아프다고, 꼴 보기 싫다고 돌아보지 않는 건 꽤 큰일입니다. 그리고 이 경험이 당신에게 주는 가장 큰 부작용은 실패의 무기력함입니다. 투자의 작지만 반복적인 긍정적인 경험 없이 도파민을 위해 씨게 배팅한 대가는 ‘내가 주식해 봤는데 재미없더라’ 같은 공허한 외침이 전부가 될 뿐입니다. 결국, 금액과 상관없이 나는 꽤나 큰 마음을 먹고 내 몸을 한번 던져 보았는데, 남는 건 실패뿐이라면, 그게 주식이든 코인이든, 누가 다시 도전하겠습니까?
제가 일단 투자 전에 시드머니를 모으라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꽤나 큰돈을 모아서, 투자했는데, 그 손해가 내 한 달 월급쯤 되면 당신은 잠도 안 올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복구를 하려는 노력을 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총자산의 10%가 없어진 것이기 때문에 무모한 투자에 뛰어들기는 굉장히 힘듭니다. 나머지 90%가 남아 있는데, 서울식품 같은데 넣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절대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시게 됩니다. 솔직히 -10%가 되기도 전에 어떤 액션을 취하 실 겁니다. 1주일 외식비, 1달 교통비, 2달 대출비가 왔다 갔다 할 텐데, 그걸 에라이~ 하고 몸을 던진다고요? 그 돈을 모으는데 2년 반이 걸렸는데 이아이디, 이트론, 서울식품에 넣어서 부자 될 거라고요?
어림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