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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타인 Head 4 20화

자세히, 오래 보기

소소함이 특별함이 되는 순간

by 타인head

오늘 아침, 가족과 함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근처 공원을 걸었다. 어제 잠깐 내린 비 탓인지 며칠간 껴있던 뿌연 공기가 씻겨 나간 듯 투명해졌고, 구름이 낀 어둑한 하늘은 오히려 산책하기에 어울리는 차분함을 주었다. 나는 일요일 아침이 좋다. 유난히 조용하고 모든 것이 느릿느릿 움직인다. 주말의 여유 속에서 사람들은 조금 더 잠을 택하고, 거리는 슬로우 모션처럼 잔잔하다.


남편과 딸은 서로 장난을 치며 앞서갔고, 나는 걸음을 늦추며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멀리 보이는 산의 중턱도 한 번 올려다보고, 길가의 풀들이 남긴 이슬과 흙냄새를 들이마시며 걸었다. 어두운 하늘 덕분에 작은 풀꽃들이 더 눈에 띄었다. 그중 한 송이는 막 꽃잎을 활짝 열고 피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꽃잎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쭈그리고 앉아서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나태주 시인의 '풀꽃 1' 시 구절이 조용히 떠올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말이 진짜 맞네.' 혼잣말을 했다.


시의 말처럼, ‘자세히’ 본다는 것은 내 눈을 낮추고 숨을 늦추고, 무심코 지나치던 표면 아래의 결을 찾아내는 일이다. 꽃잎 한 겹의 얇음, 잎맥에 맺힌 작은 물방울, 줄기 바로 옆에 비집고 나온 초록의 결. 그런 디테일들이 모여 그 존재를 온전히 드러낸다. 그리고 ‘오래’ 본다는 것은 내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다. 한 번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주는 흐름 속에서 작은 변화들을 이어 보며 비로소 온전한 형상이 이해되는 것이다.


우리 삶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스쳐 지나치는 사물이나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오래 바라볼 때, 그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게 된다. 혜민 스님의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 제목처럼, 우리 삶 속 특별함은 멈추고, 자세히 오래 바라보아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달릴 때는 힘껏 달리되, 멈출 때는 과감히 멈출 수 있는 용기. 그 균형 속에서 우리는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순간의 소소함을 특별함으로 바꿀 수 있다. 결국 삶을 깊게 만드는 것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멈춰서 바라본 작은 순간들의 발견일 것이다.


*작가의 부탁: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느낌, 생각, 질문 등, 간단한 소견을 댓글에 남겨주세요. 공감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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