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피곤하다. 할 일이 많아서 그런가, 체력이 줄어서 그런가. 피트니스 센터에는 안 가도 집에서는 운동을 하는데. 왠지 집중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잠도 잘 못 자는 듯싶기도 하다.
그래도 독서모임들에는 나름 열심히 참여를 하고 있다. 책을 읽고 단상을 적고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내 안의 생각이나 감정들이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독서모임에는 빠지지 않으려 한다.
요즘 문제가 하나 있다. 방금 하려던 말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거다. 아주 큰 문제다. 그러고 보니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다. 하지만 빈도가 점점 잦아지는 느낌. 글을 쓸 때도 종종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뭘 쓰려고 했더라. 무엇 때문에 타이핑을 하다 말고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잡아 커서의 위치를 옮겼더라. 이럴 땐 가만히 되짚어 본다. 그것이 별거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해 머리를 쓴다. 그렇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알아낼 수 없을 땐 일단 중단. 놓아준다. 아쉬워도 붙잡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지난 글에서 여행 중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반가운 영감님에 대해 짧게 언급했다. 9월 말, 나는(우리 셋은) 총 3개의 지역을 유람했다. 둘째 날 밤, 풀벌레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 조용한 한옥 펜션에서 샤워를 하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생각했다. 그러다 상상을 시작했고 이어갔다. 쭉쭉. 그러다 문득, 이건 꼭 적어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른다. 현실로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나도 모르게 공상에 몰두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씻고 나와서도 떠올린 생각들을 반복해서 살폈다. 머릿속에 뭉게뭉게 떠올랐던 이야기들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머리를 말리고 로션도 바르고 잘 준비를 다 한 뒤, 드디어 공책을 펼치고 펜을 들었다. 몸도 정신도 개운했다. 그 순간만큼은 태블릿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지. 열심히 손을 움직여 얼개들을 마구 써 내려갔다. 그러다 새롭게 떠오른 자세한 부분들도 적었다. 그것들이 긴 글로 이어지길 바라며.
내 생각은 꼭 헬륨 풍선 같다. 꽉 잡아두지 않으면 쉬이 날아가 버린다. 어떤 순간엔 미처 붙잡을 새도 없이 자취만 남아 있을 때도 있다. 아까 잠깐 뭐가 떠올랐었지, 하면서. 아쉬워하는 때가. 그 서운한 마음마저 공기처럼 사라질 때가. 그래서 오늘도 소중한 생각들이, 문장들이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메모를 한다. 이 순간에도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적어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