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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쓴 맛, 너 배변훈련 된 것 아니었어?

좌충우돌 애견매트 정착기

by 정벼리

우리 집은 아주 평범한 30평 아파트이다. 다만 연식이 좀 있는 구축이라 부엌이 좁고 거실이 넓은 편이다. 이 집에 이사오며 도배장판을 할 때에는 우리가 강아지를 키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강아지가 살기엔 바닥이 꽤 미끄럽다. 더군다나 호두는 말티푸라고 불리는 푸들과 말티즈의 믹스견이라, 소형견의 고질병인 슬개골 탈구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미끄러운 바닥은 슬개골 탈구를 부르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강아지 미끄럼 방지를 위한 대책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개 한 마리 키우는 것이 애 하나 키우는 거랑 똑같다는 말들을 많이 하던데, 애견 아이템도 육아템과 비슷하더라. 이 글을 읽는 초보(또는 예비) 강아지 보호자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내가 찾아보고 고민했던 방식을 잠시 읊어보려 한다.


첫 번째로, 애견용 바닥 매트(PVC 또는 TPU)를 사서 깔아 두는 방법이 있다. 가장 간편하고 대중적인 방식이지만 인테리어가 해쳐지고, 한 번씩 매트를 들어내고 번잡스럽게 청소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아이가 어릴 때 거실에 유아매트를 깔아 두었을 때의 장단점과 매우 유사하다. 가격은 품질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간혹 저렴한 PVC 매트에서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가소제가 검출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여 일단 좀 꺼려졌다.


두 번째 방법은 시공매트로, 우리 집 바닥에 딱 맞는 매트를 깔 수 있다. 기성품 매트를 여러 개 사서 깔아놓는 것보다 인테리어 효과가 월등하고 품질도 고급이지만 가격이 매우 사악하다. 이 또한 유아용 시공매트를 깔 때의 장단점과 비슷하다.


세 번째 방법은 기존 장판을 걷어내고(또는 강마루 위에) 애견용 미끄럼 방지 장판을 새로 까는 방식이다. 애견용 장판만 따로 생산하는 업체도 있고, 일반적인 장판 업체에도 3T 정도의 두꺼운 고급모델 라인에 미끄럼방지 상품들이 존재한다. 관리의 측면에서 가장 좋지만, 당연히 장판시공에 큰돈이 들어가고 이미 살고 있는 집의 경우 가구를 들어내야 하는 엄청난 작업이 필요하다.


네 번째 방법은, 우리가 택한 방법이기도 한데, 부착형 애견 카펫을 바닥에 까는 것이다. 30X30 ~ 60X60 사이즈의 카펫 재질 조각매트를 이어 붙이는 것인데 오염이 생기면 해당 조각만 뜯어 세탁 후 재부착 가능한 방식이었다. 바닥에 딱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청소를 위해 굳이 전부 들어낼 필요도 없었다. 가격은 3제곱미터에 2~3만 원 선이라 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알레르기를 가진 가족 구성원이 있는 경우는 카펫의 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채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처음에는 60X60 사이즈의 카펫을 20장 정도 구매하여 강아지가 주로 다닐만한 동선을 따라 길을 내듯 깔아주었다. 하지만 강아지가 우다다다 뛸 때에 어디 바닥 재질을 봐가며 달리길 기대할 수 있나. 호두는 카펫이 끝나는 지점에서 여지없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나는 거실 바닥을 전부 덮을 수 있을 만큼 카펫을 왕창 추가 구매해서 깔아주었다. 거실이 넓은 편이라 판매자가 추천한 평형별 통상 필요개수보다 더 많은 카펫이 필요했다. 꽤 큰 지출이었다.


한동안은 아주 평화로웠다. 호두가 달릴 때 발톱이 바닥에 부딪혀 나는 타닥타닥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고, 옅은 회갈색의 카펫은 기존 가구들과 이질감 없이 잘 어울렸다. 거실의 좌우 끝에 하나씩, 그리고 화장실 앞쪽으로 총 세 개의 배변판을 놓아주었는데 호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응아 실수 외에는 배변판을 잘 이용했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오줌싸개 호두, 완전히 속았어


호두가 거실생활을 시작한 지 보름 정도 되었을 무렵, 나는 믿지 못할 광격을 목격했다. 호두가 TV 앞 카펫 한가운데에 너무나 당당하게 오줌을 누는 것이었다. 아니, 이 녀석이 이게 무슨 짓이야?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하필이면 카펫의 조각과 조각 사이에 오줌을 누어 카펫 두 장을 모두 세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투덜거리며 카펫을 하나씩 조심스레 바닥에서 떼어내 오줌이 묻은 윗면끼리 서로 마주대어 겹쳐놓았을 때, 나는 아주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지금 오줌을 싼 부위가 아닌 다른 부분에도 노란 얼룩이 묻어 있던 것이다. 반사적으로 크게 남편을 불렀다.


"여보! 큰 일 났어!! 이리 와봐!!!"


남편과 나는 그 마른 얼룩은 또 다른 오줌 자국이라는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 카펫 윗면만 봐서는 그 어떤 얼룩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호두가 실수하진 않았는지 바닥을 수시로 살폈지만 축축한 카펫은 발견하지 못했었다. 알고 보니 카펫이 흡수력이 너무 좋은 나머지 오늘처럼 강아지가 오줌을 싸는 그 순간을 목격하거나, 조각 하나하나 뒤집어보지 않는 한 오줌자국을 쉽게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남편과 나는 눈물을 삼키며 거실에 깔린 카펫을 전부 하나씩 뜯어보았다. 뒤집어서 오줌 자국이 없으면 다시 붙이고, 오줌 자국이 있으면 세탁 더미에 얹었다. 바닥의 1/3 정도에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오줌 테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 삼켰던 눈물이 다시 쏟아질 것 같았다. 이 배신자, 아니, 배신견! 너 배변훈련 다 된 것 아니었어? 울타리 안에서는 아주 백발백중이었잖아*. 어쩌다 나오는 실수도 사소한 조준 실패였잖아. 어떻게 네가 이럴 수 있어.

* 강아지가 울타리에서 나온 뒤 안 하던 배변실수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간이 달라진 만큼 배변훈련은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각오로 재교육을 시켜야 한다. 아기 때뿐만 아니라 성견이 된 이후 이사를 갔을 때에도 배변훈련을 처음부터 다시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한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숙련된 강아지 보호자들은 배변훈련은 평생 가져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눈물을 훔치며 카펫 세탁을 반복했다. 상품 판매 페이지에는 몇 번이고 재사용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거짓말이 아니긴 했다. 몇 번이고 빨아서 다시 붙일 수 있다는 말이 영원히 빨고 빨아도 원래의 모양과 형태를 끝까지 유지한다는 말은 아니니까. 호두가 실수를 반복할수록 카펫 조각은 점점 넝마가 되어갔다. 채 두 달을 못 채우고 우리는 조각 카펫을 모두 뜯어냈다. 그리고 자동차로 두 시간을 달려 펫페어를 찾았다. 묵직하고, 가소제 이슈가 없는 PVC 애견매트를 두 개 사 왔다. 수십만 원이 다시 허공에 사라졌다.


처음에 가져와서 매트를 뚝뚝 깔았을 때에는 이렇게 모든 인테리어가 빠그라지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익숙함이 무서운 것이라고, 매트가 깔린 풍경이 눈에 익어버린 지금은 뭐 아무렇지도 않다. 그 뒤로 호두는 스파르타 배변훈련을 거쳐 이제는 바닥에 실수를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어쩌다 실수를 할 때에도 PVC 매트는 닦아내기가 편해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배변훈련이 끝났는데도 왜 가끔 실수를 하냐고? 제 뜻대로 해주지 않아 승질머리가 뻗치면 호두는 일부러 바닥에 쉬를 해버린다. 쉬야 실수를 하면 보호자들 복장이 터지는 것을 간파하고 행하는 나름의 보복행위인 것 같다. 표정이 딱 그렇다. 어휴, 똥강아지 승질머리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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