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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예방접종

호두의 병원 방문일지

by 정벼리

아기 강아지는 필수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호두가 집에 온 지 보름쯤 지난 어느 월요일 저녁, 우리는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어느 정도 규모 있는 동물병원에 호두를 데려갔다. 호두를 데려온 펫숍에서 다음 예방접종일로 표시해 준 날짜가 그날이었고, 인근 지역에서 저녁까지 진료를 보는 병원은 그 병원이 유일했다.


병원에서 강아지는 총 5차의 필수 예방접종을 맞아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일부 병원에서는 인플루엔자까지 6차 이상 접종을 권장하기도 한다.) 호두가 방문한 병원에서 권장하는 예방접종의 시기와 종류는 다음과 같았다.


1차 - (생후 6~8주) 종합백신, 코로나 장염 1차
2차 - (생후 8~10주) 종합백신, 코로나 장염 2차
3차 - (생후 10~12주) 종합백신, 켄넬코프 1차
4차 - (생후 12~14주) 종합백신, 켄넬코프 2차
5차 - (생후 14~16주) 종합백신, 광견병


호두는 예방접종을 2차까지 맞은 상태에서 우리 집에 왔다. 그래서 우리가 호두를 병원에 데려갔을 때에는 3차 접종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수의사 선생님은 3차 때 맞는 켄넬코프가 예방 접종 중에서도 꽤 아픈 주사라고 설명했다.


접종을 위해 간호사 선생님이 아이의 품에서 호두를 건네받았다. 호두는 병원이 뭐 하는 곳인지, 앞으로 본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꼬리를 흔들며 간호사 선생님 품에 안겼다. 하여튼 경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강아지였다.


수의사 선생님은 간호사 선생님에게 말했다.


"강아지 꽉 잡아 주세요."


수의사 선생님이 주사를 놓는 동시에 호두가 소리쳤다.


"꺄아아아아악!"


정말이다. 호두는 아주 큰 괴성을 내질렀다. 나와 아이는 크게 당황했다. 강아지가 이렇게 비명을 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탓이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주사 한 대를 더 놓았다. 호두는 또 비명을 질렀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나는 수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원래 이렇게 아파하는 게 정상이에요?"
"말씀드렸다시피 켄넬코프 주사가 워낙 아픈 주사이기도 하고요. 제가 보기엔 얘가 엄살이 좀 있긴 하네요. 하하하."


수의사 선생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호두를 다시 아이 품에 안겨 주었다. 호두는 아이 품을 파고들며 끼잉끼잉 울었다. 선생님은 이어 말했다.


"강아지를 처음 키우시죠?"
"네. 처음이에요."
"자녀분 어렸을 때 예방주사는 주로 낮에 맞추셨을 거예요. 이상반응 있으면 오후에 병원 가셔야 하니까요. 강아지도 똑같아요. 오늘은 저녁에 오셨지만, 다음번에는 낮에 오셔서 주사 맞고 부작용 있는지 관찰하시다 이상하면 다시 병원 오시는 것을 추천하고 싶어요."
"아... 그렇군요. 제가 퇴근하고 오느라 그 생각을 못했어요."
"직장 때문에 정 힘드시면 2주 뒤 일요일 오전에 오세요. 항체가 충분히 생긴 뒤 다음 접종을 하는 거라 2주 간격을 두는 건데 하루 정도는 먼저 맞아도 괜찮아요. 아니면 2주 하고도 며칠 더 보내신 뒤 토요일 오전에 오셔도 좋고요."


호두는 집에 돌아와서 계속 잠만 잤다. 평소 같으면 온 거실을 우당탕탕 뛰어다니고, 발걸음에 채일 정도로 온 가족 뒤꿈치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예사인 호두였다. 그런데 주사를 맞고는 얼마나 몸이 힘든지 제 쿠션에 몸을 파묻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2주 뒤 4차 예방접종을 맞으러 같은 동물병원을 찾은 호두는 병원 문 앞에서부터 발발 떨며 낑낑거렸다. 그곳에 들어가면 아픈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을 이젠 알아버린 것 같았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주사를 맞고 나오는 때까지 호두는 온몸을 떨고 울었다. 그리고 또 2주 뒤 5차를 맞으러 갈 때에는 병원에 가기 위해 자동차를 타러 주차장에 내려가자마자 몸을 비틀며 차 타기를 거부했다. 차를 타면 병원에 간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이고, 이 강아지를 어쩌면 좋니.


동물병원을 알아버린 호두


예방접종을 하는 몇 주 동안, 그저 안쓰럽고 불쌍해서 나는 호두를 한 번씩 안아주게 되었다. 한번 짠하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부터는 나도 모르게 집에서도 자연스럽게 살살 호두를 쓰다듬고 토닥이게 되었다. 보들보들한 털북숭이를 만질 때의 촉감이 점점 익숙해져 갔다.


아프고 힘들 때 내 품을 파고들고, 내 손길에 위안을 찾는 강아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보살피게 되니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아직 현실로 오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다가올 그런 미래를 서서히 예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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