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 강아지 목욕을 시켜보았다.
“엄마, 호두 너무 사랑스럽지 않아? 한번 안아보세요!”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이 안고 있던 호두를 나에게 쭉 내밀며 말했다. 이렇게 예쁜 강아지는 또 없을 거라고, 뽀뽀를 퍼부어줄 정도로 귀엽지 않냐고, 꼭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면 너무나 기분이 좋아진다고... 나는 그때마다 다급하게 소리쳤다.
“으악! 강아지 치워! 어휴, 냄새난다.”
펫숍에서 포슬포슬 귀여운 털을 뽐내던 호두는 온데간데없고, 우리 집에는 털이 군데군데 뭉쳐 꼬질꼬질한 강아지가 발발발 뛰어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콧잔등 위쪽으로는 매일 눈곱과 눈물이 들러붙어 있었다. 분명 데려올 땐 꽤나 예뻤는데. 처음에 그렇게 예뻤던 강아지도 끌어안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는데, 꼬질꼬질 냄새나는 강아지를 들이대는데 끌어안고 싶을 리가 만무했다.
강아지는 사람과 다르게 목욕 주기가 2~3주 정도로 길다. 매일 목욕시켜서는 안 되는 이유는 강아지 피부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너무 잦은 목욕은 강아지 피부의 피지막을 손상시키고 PH 밸런스를 깨뜨려 곰팡이병이 걸리거나 발진 등 피부트러블을 겪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적어도 보름 이상의 간격을 두고 목욕을 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씻지 않아도 냄새도 안 날 리가 있나. 씻을 때가 다가오면 강아지 특유의 몸냄새가 진해져 가는데, 그 냄새를 두고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려 '꼬순내'라고 표현하고,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무려 '개비린내'라고도 표현한다. 펫숍에서는 목욕주기가 되기 전에 몸냄새가 심해지면 강아지에게 뿌리라고 스프레이 탈취제를 챙겨주었다. (물론 사장님이 챙겨주시고 나는 멋모른채 값을 치렀다.)
강아지에게 탈취제를 뿌리면 잠시는 베이비파우더 향에 몸냄새가 가려졌지만, 그때뿐이었다. 더군다나 호두는 자신에게 탈취제가 뿌려지는 상황 자체를 매우 싫어했고, 종래에는 탈취제를 손에 들기만 해도 저 멀리 도망을 쳤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몇 번 뿌려보다가 탈취제 사용을 포기해 버렸다. 그렇지만 호두에게서 나는 냄새는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매일 달력을 보며 날짜를 헤아렸다. 저 똥강아지, 데려온 지 보름째 되는 날 아주 자비 없이 박박 씻겨버릴 테다.
드디어 호두가 목욕을 할 수 있는 날이 왔다. 나는 드디어 꼬질꼬질 강아지를 청결하게 만들 생각에 환호했고, 아이는 강아지 목욕시키기라는 즐겁고 새로운 놀이를 경험할 생각에 환호했다. 우리는 합심하여 목욕 준비물을 챙겼다. 슬리커, 강아지 샴푸, 널찍한 바가지, 강아지 물티슈, 커다란 수건 여러 장. 오늘을 위해 유튜브에서 강아지 목욕시키는 영상을 몇 개나 찾아봤는지 모른다. 우리를 바라보던 남편이 말했다.
"내가 할까?
"아니, 내가 할 거야!"
아이와 내가 동시에 소리쳤다. 아이는 강아지 첫 목욕이라는 짜릿한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나는 남편이 못 미더웠다. 내 손으로 박박 씻겨 털북숭이를 아주 청결하게,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도록 만들고 말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아이가 호두를 안고 왔다. 화장실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슬리커로 호두의 엉킨 털을 싹싹 빗었다. 과연 호두는 엄살쟁이라, 빗질이 조금만 불편해도 낑낑깽깽 유난을 떨었다. 아이는 호두에게 연신 사료를 한알씩 먹여가며 달랬다.
빗질을 마치고 우리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강아지 도주방지를 위하여 화장실 문을 닫았다. 나는 샤워기에 물을 틀고 물온도를 조절했다. 적당한 온도의 물을 널찍한 바가지에 찰랑찰랑 채웠고, 물속에 호두를 넣었다. 호두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강아지 몸에 손으로 물을 떠 끼얹었다. 유튜브에서는 아기 강아지가 놀라지 않도록 손으로 물을 적셔주라고 했었는데, 감질맛 났다. 강아지 털이 전부 충분히 적셔지려면 한 백 년쯤 걸릴 것 같았다. 몇 번 손으로 물을 뿌려주다가 나는 몸을 일으켜 샤워기에 물을 다시 틀었다.
"엄마, 유튜브에서 손으로 하라고 했잖아."
"어휴, 이렇게 어떻게 씻겨. 엄마가 물줄기 약하게 해서 뿌릴 테니까 너는 호두나 잘 잡고 있어."
나는 수압을 최대한 약하게 맞춘 샤워기를 호두 몸에 가져다 댔다. 생각보다 호두는 물을 잘 맞았다. 충분히 털이 적셔진 후에 물을 껐다. 이제 샴푸를 할 차례이다. 역시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샴푸를 먼저 소량의 물에 풀었다. 샴푸물을 호두에게 묻혀가며 거품을 냈다. 거품이 잘 안 났다. 몇 번 더 시도하다가 에잇, 샴푸물을 옆으로 치워버리고 다시 강아지 샴푸를 손에 쭉 짜서 그대로 털에 묻혀 문질렀다. 그제야 내 맘에 들게 하얗게 거품이 일어났다.
목 아래로는 쉬웠는데 문제는 얼굴이었다. 눈, 코, 귀에 비누거품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서 씻기라는데 너무 어려웠다. 등에 내놓은 거품을 손가락으로 찍어 살살 눈과 코 주변 털에 문질렀다. 맘 같아서는 호두야 눈 감아, 시키고 비누거품을 얼굴 전체에 박박 문지르고 싶었지만 강아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비누거품 찍어 바르기를 몇 번 반복했다. 처음 겪는 목욕에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목욕하는 느낌이 좋은 것인지 호두는 생각보다 매우 협조적이었다.
이제 헹굴 차례다. 우선 깨끗한 물을 받아 살살 눈 밑과 코 주변에 묻은 거품을 손으로 반복해서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 샤워기 수압을 약하게 하여 물을 틀었다.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호두 얼굴을 두고, 두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다. 호두 고개가 약간 위쪽을 향하도록 조정했다. 정수리 꼭대기에서부터 살살 물을 뿌려 비눗물이 얼굴이 아니라 머리 뒤쪽으로 떨어지도록 하여 머리를 헹궜다. 목 아래로는 헹구기도 쉬웠다. 아이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연신 깔깔 웃으며 호두를 잡고 있었고 나는 분주히 샤워기를 움직여가며 강아지 몸을 헹궜다.
이제 항문낭이라는 것을 짜줘야 하는데, 항문에 물티슈를 대고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4시 8시 방향에서 위쪽으로 살짝 힘을 주어 눌러보았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더 세게 하면 호두가 아플 것 같았다. 과감하게 포기했다. 유튜브에서도 강아지에 따라 배변 시 항문낭이 자연스럽게 배출되는 강아지도 있다며, 억지로 짜지 는 말라고 했었다.
마지막으로 깨끗한 물을 다시 한번 뿌려주고 나니 목욕이 끝났다. 나는 아이에게 준비한 수건을 한 장 건네달라고 했다. 아이가 등 뒤에 걸린 수건을 잡기 위해 호두에게서 손을 떼자마자 호두가 온몸을 탈탈탈탈 털었다. 으악, 호두 몸에서 털린 물로 나와 아이가 폭삭 젖었다. 나는 헛웃음을 웃었고, 아이는 자지러지며 웃어댔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드라이기로 털을 말려주는 일이 남았다. 호두는 추운지 아이 품에 안겨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드라이기를 물어버리려는 듯 드라이기 움직임을 따라 얼굴을 움직여가며 앙앙 이빨을 드러냈다. 잘 잡아, 잘 잡고 있어, 꽉 잡아, 꽉 잡고 있다고, 아이와 만담 같은 대화를 이어가며 호두의 털을 말렸다. 호두가 하도 부산을 떨어 100% 완벽히 말리지는 못했다.
호두를 다시 붙잡아 제멋대로 뭉친 털을 살살 다시 빗어준 것은 호두가 실컷 거실을 뽈뽈뽈뽈 뛰어다니며 한참을 논 이후였다. 나는 이미 지쳐서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아이와 남편이 마지막 마무리 빗질을 해주었다. 빗질이 끝나갈 때쯤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호두 냄새 맡아봐."
남편은 호두 몸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은 뒤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오! 이제 냄새 안 닌다."
나는 흡족하게 웃었다. 아, 살다 살다 강아지 목욕을 다 시켜보다니.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