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몇 시간 동안 집에 혼자 있겠다고?

갑자기 아이가 훌쩍 커버린 것만 같다.

by 정벼리

몇 주 전 토요일에는 늘 유지되던 나의 게으른 주말 루틴이 깨져버렸다. 이른 아침부터 휴대전화가 쉼 없이 울려댔다. 소음의 원천인 단톡방을 확인해 보니, 동기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온갖 감정이 밀려와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지만 마음은 뒤로 하고, 남편부터 찾았다. 오늘 가야 할 장례식장까지의 거리가 편도 4시간에 가까웠다. 지도앱을 켜서 교통상황을 살펴본 뒤, 우리는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별아, 엄마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대."
"응? 엄마 친구 아버지면 우리 할아버지랑 비슷한 나이이실 텐데 돌아가셨다고?"
"그러게. 엄마도 당황스럽고 마음이 안 좋다. 그래서 엄마 친구도 위로하고, 돌아가신 분께 편안히 쉬시라고 인사도 하러 갈 거야."
"응..."
"근데 가야 하는 곳이 XX시라는 곳인데, 우리 집에서 차로 4시간 정도가 걸려. 그래서 아침 먹고 다 같이 바로 출발해야 해."


아이는 침울해졌다. 오늘 함께 하기로 약속한 자전거 타기, 보드게임 같은 걸 생각한 듯했다. 나와 남편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가, 아이를 향해 원래 약속했던 일정은 내일 꼭 함께 해주겠다고 선수를 쳤다. 아이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불쑥 말했다.


"나 그냥 혼자 집에 있으면 안 돼?"
"뭐? 엄마 아빠 다녀오려면 하루 종일이 걸릴 거야. 저녁 먹을 때에나 돌아올 텐데 너 점심은 어떡하려고."
"그냥 뭐 배달시켜 주면 알아서 먹을게."
"너 혼자 종일 뭐 하고 있게."
"책도 읽고, 유튜브도 조금은 보고,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치고 하지 뭐. 주말인데 쉬고 싶어."


나는 당황했다. 누군가 내 인생에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을 넣어준다면, 아주 클래식한 음색으로 '띠요오옹'하는 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았다. 몇 시간 동안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아이의 선언보다 그 이유가 더 당황스러웠다. 주말이니까 쉬고 싶다니. 누구에게나 공감받을 정답 같은 말이지만, 너는 아직 어린아이인데, 애가 그런 말을 하다니 이상하잖아.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아이가 갑자기 훌쩍 커버린 것만 같은 때 말이다. 아이는 천천히 하루에 요만큼씩 꾸준히 자라지만, 자람이 매일 눈에 띄지는 않는다. 어느 날, 어떤 계기가 찾아왔을 때에야 그동안 부모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자람을 불쑥 선보인다.


결국 그날 아이는 제 바람대로 집에 혼자 남았다.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쳤고, 특별히 허락받아 게임도 조금 했다. 배달시켜 준 김밥과 어묵을 혼자 맛있게 먹고 싹싹 비워진 그릇 사진도 자랑스레 사진 찍어 보냈다. 혼자서도 주말답게 잘 쉬었다.


하지만 그 하루가 마냥 평화롭게 끝나진 않았다. 당연하다. 갑자기 훌쩍 커버린 것 같다고, 진짜 훌쩍 다 커버린 거라면 그건 또 서운하지. 쉴 만큼 쉬고, 놀만큼 놀고 나니, 심심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했나 보다. 엄마 언제 와, 엄마 어디야, 엄마 뭐 해, 엄마 심심해, 엄마 빨리 와... 오후 무렵부터 무한 연락이 시작되었다. 머리로는 아이를 이해하면서도, 나중에는 짜증이 좀 났다. 성질을 버럭 내고 말았다.


"야! 너 이럴 거면 다음부터 그냥 따라와!"
"히잉, 엄마, 미안해요. 근데 진짜 언제 와?"
"거의 다 왔다고! 좀 그냥 기다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