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정대만도 임플란트야?

도대체 양치질을 왜 그렇게 귀찮아하는 거니.

by 정벼리

아이가 어렸을 때 처음 유치가 썩어서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왔을 때, 치과의사인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하나 있다. 너무 충격적이라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아이 치아관리는 엄마가 얼마나 늦게까지 칫솔질을 해주는지에 달렸다.

그 말 끝에 친구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아침저녁으로 아이 칫솔질을 봐주고, 마지막엔 꼭 엄마가 칫솔을 들고 마무리를 해주라고 권했다.


그렇게 해주었냐고? 나는 못했다.


아침에는 애 아침밥 차려놓고, 한술 뜨는 것 보고 나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저녁 먹고는 설거지며 청소며 쌓인 집안일이 얼마나 많은데, 칫솔질까지 직접 해주고 있기엔 내가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 칫솔을 쥐고 닦을 수 있을만큼 큰 이후에는 말로만 이 닦아라, 깨끗이 닦았냐, 챙길 뿐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자기 이는 자기가 닦는 것이고, 자기 얼굴은 자기가 씻는 것이었다.




그나마 내가 아이 치아 관리를 위해 가장 공들인 것은 적어도 삼개월에 한 번씩 꼬박꼬박 치과 정기검진을 받게 했다는 것이다. 치아 건강은 타고나는 것이 크다던데, 남편이나 나나 (다행스럽게도 개복치 같이 약한 치아도 아니지만) 충치가 뭔지 모르는 타고난 건치는 아니다. 부모를 닮은 아이는 반년이나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충치 치료를 받을 일이 생겼다. 그때마다 나는 이빨을 깨끗이 닦지 않아서 그런 거라며, 아이의 공포심을 건드리고 양치질을 종용했다.


공포심 건드리기 요법은 다음과 같은 발전과정을 거쳤다.


"충치 치료한다고, 네 이빨이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니야. 이빨에 구멍내고 그냥 다른 재료로 메워두는 거야. 오늘 도려낸 만큼 별이 네 이빨은 세상에서 사라진 거라고. 사라진 이빨한테 안녕, 작별인사나 하렴."
"여기서 더 썩으면 그땐 신경치료야. 신경치료가 뭔지 알아? 신경 뿌리를 뽑아버리는 거라고. 너무 아픈 치료라, 이따만한 마취주사를 네 잇몸에 맞아야 해."
"신경치료한 이빨은 나중에 크면 결국은 더 상해서, 뽑고 임플란트를 할 수밖에 없대. 임플란트 하려면 잇몸에 드릴로 구멍 뚫어서 나사못을 박아야 한다는데, 그래도 이 잘 안 닦을 거야?"


칫솔질에 대한 공포 마케팅(?)을 시전 하면, 아이는 화장실 거울에 제 이를 비춰보면서 열심히 고사리 손을 움직여 칫솔질을 하곤 했다. 칫솔질이 끝나면 도도도도, 달려와 이를 보여주며 잘 닦였는지 봐달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짧게는 며칠에서 길어봐야 한 달가량 지속될 뿐이다. 금방 또 이 닦기에 게을러진다.




요새는 자꾸 들어서 익숙해진 건지, 예전에 비해 공포심 자극의 효과 자체도 무척 떨어진다. 한동안은 미지의 단어, '임플란트'를 들이대면 칫솔을 쥔 손이 한창 바빠지곤 했는데. 엊그제는 점심을 먹고 나서, 그러니까 이제 이를 닦으러 가야 할 타이밍에 갑자기 진지하게 묻더라.


"엄마, 슬램덩크 보면 정대만이 원래 앞니가 없었잖아. 근데 다시 농구하겠다고 왔을 때에는 이빨이 생겼다."
"맞아, 그랬지."
"이빨을 어떻게 다시 만들었지. 내가 생각해 봤는데, 정대만도 임플란트 한 걸까?"
"푸하하. 맞아, 임플란트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어휴, 진짜 아팠겠다."
"근데 말이야. 한 번만 눈 딱 감고 아픈 걸 참으면, 임플란트 이빨은 가짜 이빨이니까 충치는 안 생기지 않을까?"


진짜 너를 어쩌면 좋니. 나는 최대한 진지하고 무서운 표정을 지은 채, 엄숙하게 말했다.


"임플란트는 한 번 한다고 끝이 아니야. 임플란트로 박은 치아는 10년 정도 쓰면 수명을 다 해서, 임플란트를 새로 또 해야 한대. 할 때마다 엄청 엄청 아프대. 엄마 말 못 믿겠으면 S삼촌(치과의사 친구)한테 물어봐.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얼른 가서 이 닦아."


keyword
이전 02화엄마, 친구랑 놀아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