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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친구랑 놀아도 돼요?

사실은 그것만큼 재밌는 게 없지.

by 정벼리

학교 방과 후 수업은 분기별로 신청을 받는다. 한 분기 수업이 끝나면, 다음 분기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1~2주 정도 공백기가 있다. 평소 아이의 학원 등 오후 일정은 방과 후 수업을 고려하여 짜놓기 때문에, 그동안은 하교 후 두 시간가량 아무 일정이 없는 자유(?) 시간이 된다.


작년까지는 친정엄마나 남편이 집에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빈 시간이 생겨도 그 시간에 아이가 어디서 무엇을 할지 크게 고민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올해는 1분기 방과 후 수업이 끝나고 잠시의 공백이 찾아오자, 이것도 상당한 고민거리가 되었다.


집에 왔다가 학원에 가라고 하자니, 오고 가는 시간을 빼면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빈 집에 혼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라는 것 자체도 그냥 영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더운데 그냥 시원한 학교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다가 시간 맞춰 학원에 가라고 일렀다.


아이는 그때는 선선히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더니, 막상 당일에 하교 시간이 되자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도서관 안 가고,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아도 돼?"
"응? 이 시간에 놀이터에서 같이 놀 친구가 있어?"
"친구들도 방과 후 수업 없어서 학원가지 전까지 시간이 있대."


아하! 그러고 보니 방과 후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모두 같은 공백시간을 얻었구나.


"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근데 친구들도 각자 엄마에게 허락받은 거야?"
"지금 다들 엄마한테 전화해서 허락받고 있어요."
"그래. 그럼 너무 햇빛 아래에만 있지 말고, 그늘 찾아다니면서 놀아."
"네!"


아이는 신이 나서 전화를 끊었다.




저녁에 아이에게 오늘 친구들이랑 뭐 하고 놀았는지 물었다. 미끄럼틀은 삼천 번쯤 타고, 그네 타고 누가 누가 높이 올라가는지 시합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뛰어다니다 너무 더워질 때 즈음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서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함께 수다 떨며 먹었다 한다. 너무너무 재미있었고, 맨날 그렇게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 말에 나는 놀리듯 물었다.


“그럼 다음 분기부터는 방과 후 수업 가지 말고 그냥 놀던지.”
“안돼, 엄마.“
“왜? 그래도 방과 후 수업 듣는 게 재밌긴 해?”
“그것도 그렇지만, 오늘은 방과 후 수업 쉬는 주라 애들이 있는 거지, 평소에 놀이터엔 아무도 없어.“


아이고, 방과 후 수업이든 학원이든 가지 않으면 혼자 방치되는 아이의 오후가 새삼 안쓰러웠다. 그리고 또 넌지시 물었다.


“그렇게 재밌었는데, 다들 헤어질 때 서로 더 놀자는 얘기는 안 나왔어?“
“엄마, 우리가 뭐 애들인 줄 알아요?”
“늬들이 애들이 아니면 뭐야?”
“다들 각자 스케줄이 있잖아요. 시간 되면 학원 차가 오니까, 5분 전으로 알람 맞춰놓고 놀았지. 알람 울려서 다 같이 교문까지 가서 각자 학원 차 타고 헤어졌어.”


보지도 못한 그 장면이 어쩐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해서, 나는 깔깔 웃었다. 신나게 뛰어놀다가, 각자의 학원차에 승차하면서 서로 손을 흔드는 어린이들이라니. 너희 세대가 공유할 유년의 추억 중 하나겠구나. 본인이 다 큰 녀석인 듯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는 엄마가 왜 웃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예뻐서,라고 말하며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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