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아버지는 비겁하게도 병원에 숨어 있었다. 뒤늦게 쫓아와 선배이자 상사의 처를 설득해 자리를 뜨게 만든 것은 정여사의 남편이었다. 그는 이렇게까지 해야겠느냐며 점잖게 아내를 나무랐다. 유부남과 눈이 맞았을 때는 이 정도는 각오하지 않았겠느냐고, 만약 당신도 이런 짓하면 나는 더 심하게 할 거라고 정여사는 목소리를 높였었다.
병원에서 소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원장의 아내는 남편에게 당장에 두집살림을 정리하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며 맨몸으로 쫓겨날 각오를 하라고 조곤조곤 협박한 뒤 비행기에 올랐다.
봤지? 샌님 같은 자기 남편도 같은 남자라고 애먼 우리 탓하는 거. 발정난 수캐보다 더한 그 인간 같지야 않겠지만 자기도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너무 자식자식하지도 말고.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여기 있었으면 설마 이 지경까지 왔겠어? …그래도 이혼녀 딱지는 피해야겠지. 우리 리즈 앞날 생각해도 그렇고. 그래도, 정말… 싫다. 정여사는 출국하던 날 남긴 그녀의 말과 얼굴을 잊지 못했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불륜남 장원장의 정처는 출국하자마자 교통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흥분을 채 가라앉히지 못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던 것이 패착이었다. 원장은 짐짓 눈물을 흘려가며 미국으로 날아갔고, 특실로 마련한 장례식장에서는 내내 내 탓이오 남들 보란 듯이 대성통곡을 했다. 그러나 고인의 모친처럼 실신하여 드러눕는 일은 결코 없었다. 고인의 상주는 끼니를 거르기는커녕 육개장은 장례식장이 최고라며 열심히 챙겨먹었다. 아내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결코 못생겼다 할 수 없는 그의 남성적인 얼굴은 기름기로 번들번들했고, 보통을 넘는 키에 다부진 몸매는 더욱 옹골찼다.
원장의 사춘기 딸은 자리보전한 할머니의 병석과 비명횡사한 어머니의 빈소를 지키는 와중에 아버지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아버지 역시 전부터 서먹했고 이제는 무서울 지경으로 앵돌아버린 딸을 굳이 달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제 그의 관심은 상속에 쏠려 있었다.
처가에서 차려준 병원은 명의마저 원장의 것으로 돌려진 지 십 년이 넘었고, 초기비용을 회수한 지도 이미 여러 해가 지나 지역에서 잘나가는 병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원장의 능력이었다. 의사로서는 물론이고 경영자로서도 그는 탁월했다. 아무리 유흥과 색을 즐겼어도 그가 최우선순위로 삼아온 것은 어디까지나 병원 일이었다. 의료기기 업체와 제약회사 등의 접대와 향응을 받아도 그것만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일따위는 결코 없었다.
그는 그야말로 ‘개천에서 난 용’이었고 그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처가의 재력으로 시작하긴 했으나 설령 그렇지 못했다 해도 결국에는 어떻게든 성공했을 것이라고 그는 자신했다. 그것만큼은 그를 벌레 보듯 했던 그의 작고한 처조차 인정했던 바였다. 그것 때문에라도 그녀는 ‘장원장 사모님’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하지 못했다.
건강이 좋지 못했던 원장의 처부는 하나뿐인 자식을 앞세운 충격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의 뒤를 따라갔고, 창자가 끊어질 애통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상을 치르게 된 원장의 처모는 장례식 내내 병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손녀가 눈에 밟혀 숨을 놓을 수도 없었다.
겨우 일어난 노인은 딸이 살던 집만큼은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밖에서 낳은 아들과 그 생모를 그 집에 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외동딸의 자취가 남아 있는 집을 팔아버리는 것은 죽어도 못 본다는 장모의 피 맺힌 절규에는 탐욕스러운 원장도 차마 맞서지 못했다. 집을 넘기는 대신 딸의 유학비는 앞으로도 대주지 않는 것으로 양측은 협상을 마무리했다. 엄마를 닮아 까칠한 딸은 귀국하기를 끝내 거부했던 것이다.
원장의 딸은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할머니와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꼭 교수가 되고 말 거예요, 어느새 희영이라는 본명보다 리즈라는 영어이름이 더 익숙해진 그 아이는 붓고 짓무른 눈을 부릅뜨며 ‘서울이모’라 부르던 정여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껄끄러운 존재들이 제 발로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가자 장원장은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그는 ‘남의 말 사흘’이라는 속담과 돈과 명예의 힘을 신봉했다. 그는 대담하게도 옛집이 있던 골목의, 옛집보다 넓고 좋은 주택으로 이사를 가서는 불륜녀와 그녀에게서 얻은 아들을 들어앉혔다. 그에 앞서 원장은 혼인신고를 하고 지난번보다 더 큰 다이아 반지를 후처의 왼손 약지에 끼워주었다.
결혼식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올려주겠다는 원장의 패기만만한 제안에 요한모는 기겁을 했다. 원장의 죽은 전처에게 심하게 당하고 난 뒤에는 차라리 속이 후련했던 그녀였다. 아들에 이어 원장의 호적에 등재되는 일은 그날로써 실낱 같은 희망조차 완전히 버렸던 그녀였다.
스무 살도 넘게 나이 많은 호색한의 상간녀에서, 일약 ‘원장 사모님’이 된 요한모는 말없이 집에만 틀어박혀 아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는 데만 온힘을 기울였다.
아직은 그녀를 세상에 내놓을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원장은 어린 아내의 신중한 언행이 흡족했다. 살림규모가 커졌으므로 당연히 가정부나 파출부를 구해줄 생각이었는데 그를 거절하고 아들을 업은 채 빨래와 걸레질을 척척 해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차려준 식탁에 앉으면 시골의 돌아가신 노모가 오래된 소반에 차려주던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밥상이 절로 떠올랐다. 불혹을 훨씬 넘은 원장은 이제 슬슬 기름진 산해진미보다 담백한 한식이 속이 편해지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아들의 돌이 가까워오자 원장은 더 이상 어린 아내를 집에만 감춰두기 싫어졌다. 그는 아들의 돌잔치에서 젊고 아름다운 새아내를 정식으로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인정받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을 더 닮은 둘째아들을 떳떳하게 얻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요한모는 아들의 돌잔치조차 부담스러워했다. 여전히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피하려고만 했다.
원장은 고민 끝에 진원부를 통해 정여사에게 요한모를 부탁해왔다.
결혼 5년차에 얻은 삼대독자의 돌잔치를 치르고 정여사는 몸살이 났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그녀에게 남편은 머뭇머뭇 원장의 부탁을 전했다. 물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었다. 정여사는 당장에 남편이 원장의 병원에서 나와 따로 개원했으면 싶었다. 더 이상은 원장과 엮이지 않았으면 했다. 원장과 달리 처가 덕으로 병원을 차리고 싶지 않아했던 진원부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아내를 달래어오던 참이었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까지 되자 정여사의 참을성은 바닥이 났다. 결혼한 뒤 가장 큰 부부싸움이 벌어졌고 진원부는 안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여사는 친정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어떡하니. 김서방 성격 알고 있었잖아. 네가 계속 유산해도 그저 네 몸 걱정만 해주던 양반 중에 상양반이다. 이젠 네가 내조해줘야지. 그리고 우리 진원일 생각해야지. 네가 베풀면 다 네 자식한테 돌아온다… 였다.
정여사의 모친은 노처녀 소리를 들은 지 한참 지난 나이에 재취로 들어와 드센 의붓딸의 뒤틀린 마음을 녹인 따스한 햇살 같은 심성의 소유자였다. 서울 좋은 위치에 개원해주겠다는 장인자리의 제안을 거절하고 고향땅으로 내려가 월급쟁이 의사가 되겠다는 사윗감의 고집에 결혼을 파투내려고 했던 남편과 달리 전적으로 딸의 편이 되어준, 정여사에게는 생부처와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불교신자였던 그녀는 시집간 딸이 개신교도가 되자 낯선 땅에서 믿고 의지할 곳이 생겼으니 감사할 일이라며 두 손을 꼭 잡고 축하해주었다. 정여사는 그저 오냐오냐하는 아버지보다 평소에는 부드럽고 다정하나 필요할 땐 따끔한 충고를 해주는 새어머니를 더 신뢰했다. 그리고 정여사의 계모와 남편은 모자지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성격이 비슷한 데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그렇게 나오는데야 정여사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진원부는 아내의 투항에 그녀를 포옹하며 자신도 잘못했고 미안하다고 했다. 예수님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잖아요. 효자에 애처가로 소문났으면서도 기어코 그들을 따라 교회는 나가지 않던 진원부는 종종 경전의 말들을 인용하곤 했다. 정여사는 그런 남편이 어이없으면서도 귀엽다 생각했다.
어렵게 이루어진 두 여자의 재회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정여사는 친자매처럼 지냈던 이웃의 자리를 그녀의 비극적인 사고사로 꿰찬 이십대 초반의 아름다운 아기엄마를 노려보았다. 이미 정실자리에 올랐음에도 예전과 다름없이 수수한 옷차림도, 까무잡잡한 편인 자신과 달리 분칠하지 않아도 하얗고 말간 피부와 애엄마라 믿기 힘든 가녀린 몸매도 밉살스러웠다.
네가 화장 떡칠하고 야시시하게 입은 여자들만 보아오던 호색한을 그렇게 혹하게 만들었구나, 그렇게 수줍고 청순한 모습으로. 정여사는 그 말들을 속으로 삼켜야 했다.
저… 사모님, 고맙습니다. 저 보기 싫으실 텐데 도와주겠다고 해주셔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요한모는 떠듬떠듬 말했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남편 상사가 부탁한 일을 어떡해… 요. 자신보다 열 살 넘게 어린 불륜녀 따위에게 사모님이라 부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말을 놔버리기도 애매해서 정여사는 난감했다.
그나마 아이가 동갑이니 서로 누구엄마, 로 부르되 한참 연상인 정여사는 반말을 섞어쓰기로 했다. 요한모는 언니라 부르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그것만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죽은 언니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라고 정여사는 생각했다. 심약한 요한모는 여전히 사모님이라 호칭했고 정여사는 둘만 있을 때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원장은 그해 가을에 아들의 돌잔치를 성대하게 열었다.
새로 이사한 이층주택의 넓은 잔디마당에 새하얀 레이스 식탁보를 씌운 테이블을 마련하고 당시에는 드물었던 출장요리를 서울에서까지 불러와서 손님들을 대접했다. 값비싼 양주들까지 준비한 상차림이었다. 병원 일로 바쁜 원장과 아는 것 하나 없는 그의 어린 아내를 대신해 실질적인 준비를 맡은 이가 바로 정여사였다.
속으로 아니꼽고 죽은 언니에게 미안하긴 했으나 아기엄마에게는 결혼식과도 같은 행사임을 감안해 제대로 화장도 할 줄 모르는 요한모의 얼굴을 만져준 것도 그이였다. 그것도 친정어머니의 권유를 따른 것이었다. 서울하고도 강남부촌에서 자라며 열심히 외모를 가꾸어 온 정여사의 패션감각과 화장술은 D시의 어지간한 의상실이나 미용실보다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