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렇게 한껏 치장한 요한모의 미모는 좌중을 압도했다.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자들마저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볼 정도였다. 더구나 말도 제대로 못하고 내내 얼굴만 붉히던 그녀의 모습은 그날로써 원장이 그럴 만했다, 나아가 아들까지 덜컥 낳아주었으니 당연히 재혼해야지, 라는 의견이 다수를 점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정여사는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라는 말을 그때처럼 사무치게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정여사가 억지로 가까이 보게 된 요한모는 수줍고 정직하며 부끄러워할 줄 아는 여자였다. 자신에게도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대서 나중에는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런 여자가 원장을 유혹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죄가 없는 것은 아니었고 죽은 이웃사촌이 안타깝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정여사는 자신에게 충실한 남편이 고마웠고, 원장의 병약한 전처와 달리 남편에게 건강한 아들을 낳아준 자신이 새삼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요한의 돌잔치 이후 그 생모는 마침내 ‘장원장 새사모’로서 사회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원장은 이제 알 사람은 다 아는 만큼 각종 부부동반 행사에도 젊고 아름다운 그녀를 트로피처럼 옆에 끼고 나가고 싶어했다. 그는 동성들의 부러움과 이성들의 질시를 받는 것을 즐겼던 것이다.
그러나 호방하다 못해 뻔뻔한 남편과는 달리 요한모는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원래부터도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그녀는 바늘방석과 다름없는 ‘사모님’의 자리에 앉은 후로는 부담감이 심해져 더욱 사람들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원장이 그녀에게 원하는 것은 알뜰살뜰한 가정주부를 넘어서 교회를 비롯한 각종 사교모임에 충실하고 때로는 이끌 줄도 아는 귀부인적 역량이었다. 적어도 집에서 살림만 하고 아이만 낳아 기르는 것만으로는 원장에게는 충분치 않았다. 원장은 어린 아내에게 실망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요한모에게는 우울증 기미가 보였다. 하루종일 넓은 집을 쓸고 닦으며 구수한 된장찌개를 맛깔나게 끓여내던 그녀는 집안일에 흥미를 잃고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청승맞은 옛날가요를 틀어놓고 들릴 듯 말 듯 따라부르며.
혹시 둘째가 생긴 것인가 기대했던 원장은 다시금 실망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아내에게 소리지르며 화를 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면 젊은 아내는 대거리 한 번 없이 그저 눈물만 떨어뜨리며 어미를 따라 울먹이는 아들을 안아들고 어를 뿐이었다.
돌잔치 이후 왕래가 뜸해졌던 정여사는 소식을 전해듣고 요한모를 전도했다. 회개기도하고 교인들과도 어울리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남편이 좋은 생각이라며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크게 칭찬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이루어진 일이긴 했지만, 정여사는 어쨌거나 요한모를 교회로 이끌게 되었다.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귀의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정여사의 말에 요한모의 퀭한 눈동자가 활기를 띠었다. 정말, 정말 그럴 수 있나요? 나 같은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그 순간 정여사는 그녀를 반드시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적어도 요한모는 이미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세상 뻔뻔하게 다윗왕과 밧세바까지 변명거리로 삼던 원장에 비하면 그의 불행한 두 번째 아내는 하느님의 품에 들 자격이 차고 넘치지 않은가.
교회 활동에 힘입어 요한모는 활력을 찾았으나 이번에는 교회 일에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원장은 다시금 아내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일찌감치 장로 타이틀을 달았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웬만한 활동은 금전으로써 대체해왔던 원장으로서는 젊은 후처가 죽은 전처보다도 더욱 교회 행사에 열정적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마 전처는 딸아이의 교육이 더 우선이기라도 했건만 요한모는 남편은 물론이고 때로는 자식보다도 교회 일이 앞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보육원이나 양로원 등에 나가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에 요한모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한때 집안일에 열정을 쏟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그런 곳들에 나가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저 간판뿐이라 해도 장로의 체면으로 교회 사람들 앞에서는 아내를 타박하기는커녕 교인들의 칭찬에 아내를 자랑스러워하는 척하던 원장은 집에 가면 태도가 돌변했다. 요한모는 남편의 이중적인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다.
그녀의 남편은 스무 살 넘게 어린 여자를 강압하다시피 해서 아이까지 낳은 것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되레 당당했다. 이혼한 것도 아니고 엄연히 사별 후 재혼한 데다, 자식의 어미를 미혼모나 씨받이로 내버려두지 않고 호적에도 올려줬건만 무얼 더 회개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그렇게 기도하고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죄의식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아내가 답답했다.
요한모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원장과의 결혼생활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원래부터도 원장이 어렵고 무서웠던 그녀였다. 그의 요구로 교회 활동을 줄일 수밖에 없던 요한모는 집에서는 다시 우울 증세를 보였다. 이번에는 집안일은 물론이고 어린 아들조차 그녀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에 대해 원장은 더욱 노여워했고, 그럴수록 요한모는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다. 원장의 젊은 아내에 대한 짧은 총애는 그렇게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진원과 요한이 여섯 살을 앞둔 겨울에 요한모는 원장에게 쫓겨났다.
그녀가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알던 오빠와 눈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아내에게 싫증이 나 있었던 원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혼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게나마 결혼식을 치르고 세 번째 아내를 맞아들였다. 상대는 원장 밑에서 일했던 삼십대 중후반의 간호사였다. 펑퍼짐한 웨딩드레스로도 그녀의 부른 배는 가려지지 않았다.
원장의 행태야 놀라울 것이 없었으나 요한모의 소식은 정여사에게 충격을 주었다. 아이들과 교회를 통해 그래도 몇 년은 교류하며 그녀를 꽤 많이 알았다고 생각했건만, 원장과의 간통으로 그토록 괴로워하며 주님께 매달린 그녀가 심지어 유부녀의 몸으로 상간하였다는 것이 믿기 어려워서였다. 다만 상대가 고향의 알던 이였다고 하니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요한모가 시험에 들어 끝내 이겨내지 못했던 모양이라 짐작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정여사는 요한모를 동정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간음으로 태어나 간음으로 아이를 낳고 간음으로 그 자식마저 버린, 그야말로 타락한 여인이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모습으로 이젠 그녀를 잊게 된 것뿐이었다. 정여사는 ‘천한 피’라든가 ‘근본 없는 것들은 어쩔 수 없다’는 구시대적인 편견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친모와 떨어져 계모의 슬하에 들게 된 요한은 당연히 울며 친모를 찾았다. 어미를 닮아 계집애같이 예쁘게만 생긴 아들이 어미만 닮아 낯가리고 숫기없게만 구는 것이 원장은 전부터도 못마땅했다. 그나마 집안일을 돌봐주던 정 많은 나이 지긋한 파출부가 없었다면 어린 요한은 완전히 방치되어버렸을지도 몰랐다.
똑같이 불륜으로 시작한 관계였음에도 원장의 새아내는 요한모와 달리 남편과 똑같이 거리낄 것 없이 굴었다. 부원장의 안사람인 정여사에게도 얼굴색을 싹 바꾸고 윗사람 노릇을 하려 드는 것이 어이없고 꼴보기 싫어서, 정여사는 원장의 새 안주인과는 일절 교류하지 않으려 했다. 드디어 원장에게 질렸던지 마침내 진원부도 슬슬 개원을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다. 원장과의 질긴 연을 마침내 끊게 되는 날만을 정여사는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아이들이 문제였다.
요한모를 전도하고 난 후 교회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된 정여사는 아들들이 친구가 되는 것을 너그러이 허락했었다. 6개월 넘게 차이가 나는 데다, 진원은 숙성하고 요한은 그렇지 않아 둘은 마치 연년생 남매처럼 보였다. 아기 진원은 요한에게 간식거리와 장난감 등을 망설임 없이 넘겨주었고, 아기 요한도 진원만 보면 방싯방싯 웃었다. 두 아이가 엄마아빠 다음에 잘 돌아가지도 않는 혀를 굴려 말한 것은 서로의 이름이었다. 정여사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요한이 탐욕스러운 제 아비를 조금이라도 닮은 외모였다면 아이들을 붙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자라 같은 유치원을 다니게 된 진원과 요한은 쌍둥이처럼 붙어다녔다. 여전히 체격 차이가 나고 성격도 달랐음에도, 요한은 진원만 졸졸 따라다녔고 진원은 요한을 친동생처럼 챙겼다. 그러나 어른들이 하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따라하기 쉬운 아이들은 대부분은 별다른 악의 없이, 때로는 악의까지 그대로 복사하여 어린 요한을 괴롭히고 따돌렸다. 늘 웃는 얼굴에 말썽 한 번 피우는 일 없이 그때부터 이미 우등생이고 모범생이었던 꼬마 진원이 성을 내며 사납게 날뛰게 만드는 유일한 일이 그것이었다.
원장은 일을 핑계로 그의 삼취는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핑계로 유치원에는 얼굴 한 번 비추는 일이 없었기에 결국 그 뒤처리는 모두 정여사의 몫이었다. 그녀는 하루가 멀다하고 유치원에 불려가야 했다.
어린 요한이 불쌍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벌써부터 귀하디귀한 외동아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아 정여사는 요한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요한을 보면 그 생모가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예쁜 얼굴에 겁먹은 표정마저 모자가 똑같았다. 가느다란 뼈대도, 여리여리한 몸매도, 남성이 되고 난 훗날에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저 어린아이일 뿐인 요한은 마치 그 어머니의 분신과도 같아 보였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또한 바로 그 점이 요한부 장원장의 화를 돋우었다. 더구나 그 어미가 그랬듯 어린 요한도 나이 많은 아버지를 두려워하기만 했다. 그 아비의 마음에 드는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 자신의 판박이로 태어난 새로운 아들에게로 원장의 관심은 빠르게 옮겨갔고 요한은 천덕구니가 되었다.
꼬마 진원과 그 아버지인 정여사의 남편만이 전적으로 요한의 편이었다. 퇴근 후에는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쉬는날에는 아들과 놀이터에라도 다녀주는 다정한 아버지인 진원부는 굳이 요한까지 챙겨 함께 놀아주곤 했다. 그러다가 진원과 함께 재우는 일도 다반사였다.
남편과 아들이 그러는데야 정여사 혼자 반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원이 그 나이답지 않게 의젓했다면 요한은 사내아이답지 않게 얌전했기에 아이를 배척할 명분도 찾기 힘들었다. 진원 같은 아들을 하나 더 낳고 싶었지만 좀처럼 둘째가 생기지 않아 남편에게도 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었던 탓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