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들의 내마기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우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발을 내딛기로 했다.
기타 교실이라는 선생을 두는 교습방식을 정리하고, 스스로 배우고 공유하여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모임, '밤토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모였다.
이번에도 수다방, 명상방, 영어방 등 익숙한 공간에 간단한 홍보물을 올렸다. 새로운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새로운 파트인, 드럼과 칼림바가 합류했다. 기타 교실에 들어오지 못해 아쉬워했던 이들도 찾아왔다.
기타 교습을 받던 한 분은, 원래 건반을 연주하던 사람이었고, 음악에 조예가 깊어, 베이스를 배우고 싶어 했다.
또, 내가 믿고 있는 기타 친구가 음악 선생님으로 중급 레슨을 맡으며 합류했다.
그렇게 각자의 역할을 가진 팀이 되어갔다.
모두가 어느 정도 기타를 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왠지 옛말이 되어버린 것 같은… '부캐'를 꺼냈다. 이번엔 미디 선생이 되어볼 생각이었다.
나의 미디 선생님이 했던, "가르치면 는다."는 말, 그 공식을, 이번에도 증명해보고 싶었다.
누구나 아이폰이든, 패드든, 맥북이든 하나쯤은 갖고 있었고, 내가 배운 방식 그대로는 아니지만, 최대한 쉽게 노래 한 곡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샘플 음원을 활용한, 일명 '야매 음악 만들기'.
어설프긴 했지만, 하루 만에 곡이 완성되기도 했다.
대체로, 음악의 구성이나 흐름을 잘 이해하기 위해 노래를 더 많이 들어보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많이 주었는데, 조금만 다듬으면 괜찮아질 곡도 있었다.
이 모임은 미디수업이나 개인연습만을 주로 하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기타 반주를 올리면 그 위에 피아노를 얹고, 또 누군가는 멜로디를 입혀 함께 곡을 만들기도 하는, 창의적인 활동도 이어나갔다.
몇 달 모임을 운영해 보니, 대체로 3월, 6월, 9월 말 즈음에 위기가 온다는 걸 느꼈다.
처음 3개월은 대체로 잘 따라오지만, 6월까지 이어지는 그 지점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
사람들은 1년이라는 단위에 뭔가 완료감을 가지는 듯했다.
12월에 손을 놓는 사람들은, 차라리 새해를 맞이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안식월을 가지는 것 같았다.
나 역시, 1년이 지나면 성취감이 들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생기며 기존의 것을 잘 이끌어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밤토리도 길게 끌 생각이 없었다.
숫자가 의미 없어지는 순간이 와야 습관이 되는 것 같다.
초반엔 새로움으로 오픈빨을 즐기고,
중반쯤엔 버티기 모드로 조금의 변화와 동기를 만들었다.
목표는 각자가 정했다. 한 달간 서로를 지켜보기로 했다.
미션을 이행하면 상금, 실패하면 벌금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힘든 날에도 꾸역꾸역 해나갔다.
기타 교실 때처럼 매일 같은 곡을 연습해 올리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는 그저 악기를 다시 손에 쥐는 것, 그 자체를 목표로 삼기도 했다.
나는 조금 더 빡센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 한 곡 만들기를 시작했다. 이른바 30일 챌린지.
처음부터 잘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나간 2023년 상반기에 대한 나름의 채찍질이기도 했다. 이 챌린지에 100만 원을 걸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주 1회 카피곡 가능이라는 규칙도 넣었다.ㅎㅎ
욕심이나 불안도 없이, 깨끗하게 비워둔 마음으로 챌린지를 시작했다.
원하는 분위기를 찾기 위해 코드진행을 검색하고, 짜깁기하고, 만들어보기도 했다.
하루에 스케치 하나만 하는 데도 대여섯 시간이 걸릴 때가 많았다.
가사를 쓸 땐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관찰자가 되기도 했다. 일생, 그만큼 몰입한 적이 없었다.
결과는, 28곡 중 2곡. '밤헤엄'과 '거꾸로 달리는 남자'. 두 곡을 남길 수 있게 됐다.
나머지 곡들은, 어떤 곡인지도 잊어버렸다. 외장하드에 넣어두었다. 언젠가 열어보고 ‘왜 이곡을 그냥 넣어두기만 했지?’ 라며 과거의 나를 질책하는 대사를, 언젠가 해보고 싶다.
30일 챌린지가 끝나고,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밴드곡을 두 곡 준비했다.
선택한 곡은 '밤이 깊었네'와 '고백'.
누구의 추천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나의 취향과도 닿아있던 곡들이었다.
다만, 너무 어릴 적 듣던 노래라 그런지, 살짝 오글거리는 마음도 들었다.
기타 친구가 리드기타를 맡았고, 아무도 맡지 않던 베이스는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나의 비주얼이 무너지지는 않았던 시기라, 내 스타일과 맞는 베이스기타를 오래 찾아다녔다.
<에피폰 앨런우디 베이스>
묵직한 소리는 없고, 텅 빈 대나무처럼 울리는 느낌.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지만, 예뻤다. 사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니 충분한 것이 아니라, 그 어느 것도 이것 말고는 눈에 들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뭐… 계속 듣다 보니, 또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아직 취향은 아니지만, 바라만 봐도 흐뭇한 비주얼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공연에는 악기가 많다. 그중에 하나가 밴드당시에 썼던 미디컨트롤러인데, 공연에 잘 쓰면 정말 간지 나는 놈이다.
<Machine Mikro MK3>
개인 무대는 이 녀석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밤헤엄'을 혼자 연주해 보려고 시도했는데, 결과는 대참사.
듣기 괜찮은지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로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선보였다. 다음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기타 교실의 연말 공연 영상은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었지만, 밤토리의 공연 영상은, 선뜻 꺼내 보이기엔 아쉬운 장면이 많다.
성장한 만큼, 기대가 컸던 만큼, 더 아쉬웠던 것 같다. 시간도 많이 썼고, 마음도 많이 썼다. 그래서 좀 더 자존심을 부리는 것 같다.
이번 공연은 기존 살롱의 1층이 아닌, 새롭게 계약한 2층 공간에서 진행됐다.
사실 한 층 올라간 것뿐이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주인장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던 1층과는 달리, 2층은 원래 교회로 쓰이던 공간이라 방음도 이미 되어 있었고, 무대, 음향도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었다.
무대 조명이 따로 없고, 단상이 높지 않아 주인장은 여러모로 아쉬워했지만, 공연 이외에도 일을 꾸미기에 적합하고 적당히 넓어서 좋았다.
가장 좋은 장소인, 흡연자들의 공간으로 들어서면, 성남 일대와 푸른 자연광경이 창밖에서 빛났다.
이번 공연은 가족 단위 손님들이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공연장이 낯설었다. 스물 초반엔 어딜 가든 고막 찢어질듯한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공연장, 연기자욱한 지하의 퀴퀴한 냄새에도 건강 걱정을 안 하던 공연장이 너무 당연했다.
한껏 싱싱한 새싹 같은 공연자들의 미니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오염된 내 고막과 호흡이 그들에게 해가 될까 염려되었다. 그래서(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내 인생에 처음 있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공연, 식사도 함께하고, 뒤풀이공연도 함께했다.
기타, 미디, 밴드 뒤에 칼림바와의 콜라보. 시와 팝이 만나는 ‘시팝’ 무대와 이후에 등장할 새로운 모임 다크호스의 무대까지..
슬기로운 초딩 생활이라는 이름의 귀여운 초딩들이 뒤풀이 무대를 빛내주었다. (이 아이들은 이를 계기로 훗날, 학교 강당에서 풀밴드로 공연도 하게 된다.)
마지막은 머리에 리본 단 밤토리들이 율동을 곁들여 노래방 마이크로 마무리를 지었다.
60여 명의 손님이 다녀갔다고 했다.
참고로 내 지인은 없었다.
요즘 자주 느끼는데, 잘 돌아가는 모임일수록, 모임장이 일을 덜 한다는 거다.
처음엔 사람들이 못 미더워서, 그다음엔 내가 하는 게 맞다 생각해서, 그다음엔 미안해서 아무것도 맡기지 못했는데, 그렇게 혼자 다 하다 보니 어느새 지쳐 있었다.
지금은, 어떤 의견이 나오든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진행한다.
나는 흐름이 흘러가도록 뒷받침만 해주고 있다.(싶다)
아짐마들이 최고라고 느꼈던 적이 있다. 역시 아짐마는 아조씨랑 비교를 하는 게 옳다.
어떤 상황이든,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며 누군가를 까내리면 안 되지만, 이건 불가항력이다.
내 주둥이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밤토리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앞으로 어떤 일이든 아이가 있는 어머니들과 함께하고 싶다.
형들과 밴드를 할 땐, 늘 나 혼자 무수리였지만, 여기서는 모두가 서로의 무수리가 되어주었다.
척-하면 착!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다음에 올 행동을 미리 예측하고 손을 보태준다.
형들과 함께 할 때는 매번 자잘한 것들은 나 혼자 챙겨야 했다. 심지어 내가 뭘 신경 썼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어딜 놀러 가도 제대로 치울 줄 모르고 도울 줄 모른다. 한 놈도 빠지지 않고 싹 다 그렇다.
모임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란, 누군가가 의도하여 자기 입맛에 맞게 어떤 분위기로 흐르게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즐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
잠깐 딴 길로 새면....
그중에 우리 드러머님이 제대로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해주신다. 3년 내내 계속 고마운 분이다.
이때 새로 합류한 드러머는 밤토리 모집 당시 드럼을 막 시작한 사람이었다.
컴퓨터를 다루는 일을 본업으로 하며, 연극을 하던 경험도 있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음악은 잘 안 듣는다고 했지만, 밴드곡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으며 연습하던 연습벌레였다.
지금은 어느덧 3년 차.
시간만 조금 주면, 대부분의 곡은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이때 공연의 서문에 미리 적어놓고 읊었던 일기 같은 글이 있다.
교장 선생님도 아닌데, 괜히 훈화 말씀 같은 말을 꺼냈다. 5분만 달라고 해놓고, 아마 10분쯤 썼을지도 모르겠다.
생긴 것답지 않게 입이 커서 마이크 앞에 서면, 늘 말이 길어진다.
그동안의 성장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얼굴에 늘어난 주름만큼, 악기를 다루는 손끝도 조금 더 야무져졌다고 소개했다.
누군가는 매일 연습했고, 누군가는 버티는 법을 익혔다.
나는 한눈을 잘 파는 사람이라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꺼냈다.
뒷심이 부족하고, 대충 시작하고 자주 흐릿해지는 사람이었다.
몇 날 며칠을 묵묵히 꾸준했다. 그건 재능이었다.
그 꾸준함은 나를 '지기 싫어하는 사람'에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박수도 부탁드렸다.
격주로, 매주로, 두 달간, 먼 길 마다하지 않고 합주에 참석했던 사람들.
사정이 안 되어 직접 못 오는 사람들은 원격으로 합주를 하기도 하고 ㅎㅎ
그리고 살롱 공간을 흔쾌히 내어주고 어떤 일이든 지지해 준 주인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마지막으로는 관객에게 말했다.
"별은, 우리가 쳐다보지 않으면 그저 먼지일 뿐입니다. 바라봐주는 순간, 그제야 별은 빛난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와주신 모든 분들께 무대를 빛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오글거리는 멘트도 해버렸다.
이 무대가 누군가에겐 잊히는 풍경일 수도, 누군가에겐 오래 기억될 장면일 수도 있지만,
밤토리에게는, 이 겨울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해 줄, 충분히 넘치는 순간이었다.
그날 온 손님들 중에는, 우리가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로 인해 밤토리는 조금 더 확장되었다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이내 밤토리방을 폐쇄하게 됐다.
모두가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시점이었고, 그래서 그랬는지 더 이상 욕심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일을 꾸미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