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장바닥에서 만두도 팔아보았고 의류도매업, 스포츠용품 수입, 여행가이드, 스키와 보드 강사, 모델, 철인 3종 경기 코치, 교수 등의 일을 해보았다, 그런데 또 하나 내가 하고 싶은 직업 중 하나는 웨이터였다. 웨이터는 모델이 되는 것만큼 화려하다고 생각한다. 모델은 내가 좋은 옷을 입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에 만족을 느꼈지만, 웨이터는 내가 좋은 서비스로 손님들을 만족시킬 때 기분이 좋았다. 나는 미국 학교 근처에 있는 일식집에서 웨이터를 시작하게 되었다. 학교 근처라 고급 식당은 아니었지만, 주변 손님들에게 꽤 인기가 있던 식당이었다. 나는 하얀 셔츠에 검정 앞치마를 입고 손님들에게 항상 이야기했다 “HOW ARE YOU TODAY? EVERYTHING IS OK?"를 말하며 손님들을 대할 때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단골손님들도 많았고, 나를 보면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주인이 한국 사람이었는데 나를 좀 부담스러워했다. 주인과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지만, 손님들은 나를 사장님의 아들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이 주인의 기분을 나쁘게 했던 것 같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들었던 반면 주인아저씨는 아저씨 패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 당시 사장님은 상당히 불쾌했을 것 같다. 결국 웨이터 생활 6개월 만에 해고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웨이터의 생활은 참 해볼 만했고 지금도 기회가 되면 또 해보고 싶다.
웨이터 말고도 캘리포니아 대학교를 다니며 그 지역에서 가장 크고 올림픽도 개최한 레이크 타호라는 스키장에서 스키 강사를 할 기회가 생겼다. 학교 겨울 방학 시즌에는 스키장에서 스키를 가르치며 돈도 벌고 스키도 즐겼다. 몇 년 성실하게 일하자 LA에 있는 큰 관광회사들이 나를 스키 관광 가이드로서 큰일을 주게 되었다. 여행가이드나 스키강사들은 팁을 받고 생활하였기 때문에 나는 한 달 시즌 일을 하고, 일 년 학비의 절반 정도를 번 적도 있다. 스키 강사와 여행가이드는 내 등록금 납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여행 가이드 일은 3년 동안 했다. 처음에는 미국대학에 다니면서 스키 강사만 했는데 여행사 사장님의 신용을 얻어 여행가이드와 스키 강사 일을 병행하여 돈을 좀 더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스키를 타러 가는 장거리 버스에서 나는 손님들을 모시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 근처인 레이크 타호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손님들에게 해주며 장시간 여행의 피곤함을 달래주었다.
나는 그 당시 학생이었고 열심히 일해서 여행사 사장님들이 나를 더 신임하고 좋은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현지 가이드들의 밉상이 되기가 십상이었다. 결국 몇 년 후 나는 한국여행사에서 팁 받으면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캐나다 휘슬러에서 지금까지 겨울 스키 시즌에는 월급을 받으며 일하게 되었다.
철인 3종이라는 스포츠는 내가 직업, 취미, 건강뿐 아니라 명문대를 갈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볼 때 스포츠가 나에게 이렇게 많은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나는 철인 3종의 최고 대학인 캘리포니아 대학교에도 입학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가 철인 3종 경기를 하게 된 계기는 브라질에서 테니스를 치다가 허리를 다친 이후부터 다. 테니스나 골프는 한쪽으로만 스윙을 하므로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가는 운동이다. 20대 젊은 나이에 허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여 물리치료를 하던 도중 의사가 수영을 해보라고 권유해서 수영을 시작했다. 하루는 내가 다니던 수영장에서 아콰트론이라는 수영과 달리기를 이어서 하는 단거리 경기가 있었다. 내가 아는 브라질 친구 아달베르토(Adalberto)의 권유로 시합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본의 아니게 한 바퀴를 덜 돌아서 3등 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운동으로 매달을 받은 것이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철인 3종 경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미국 유학 올 때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디에고 캠퍼스를 선택한 이유는 철인 3종 경기의 메카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보니 수영장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고, 유명한 코치가 우리 대학에서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세계의 철인 3종 경기 선수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이 이곳 샌디에고 이다.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꿈이다. 이 대학은 철인 3종 선수들에게는 하버드대학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다.
나는 대학교 대표선수로 철인 3종 경기 대항전에 나간 적이 있다. 학교에서 캠핑카도 지원해 주고 여행경비 또한 보태 주었다. 막상 시합장에 가자 세계 곳곳의 대학 선수들이 모여 치열한 경쟁을 시작할 준비를 하였다. 우리 팀은 대학 리그 2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20대로 다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면 세계적인 모델이 되고 싶다. 또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해서 올림픽 출전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그때 당시 나는 공부를 마치고 좋은 직장을 얻겠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인생 최고의 기회를 잃은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내가 가장 꿈꿔 왔던 일을 했더라면…. 나는 나의 잠재력을 묵살해 버리고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하고 있다.
돌아보면 그 당시 좀 더 열심히 연습을 하여 국제적인 선수가 되지 못한 점이 좀 아쉽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철인 3종 경기 종목이 활성화되기 전부터 미국대학 선수로 각종 경기에 출전했기에 한국에서 앞서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학교 공부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철인 3종은 내 인생의 두 번째 목표였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 남들이 선망하는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인생 최고의 성공이라고 생각했기에 학업에만 몰두했다. 운동은 하고 싶었지만 뒷전이었다. 내가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트레이닝에 전념했을 것이다. 나는 40대에 하고 싶은 것을 거의 다 해보았지만, 내가 선수생활에 전념하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내가 만약 공부하고 직장만 바라보며 살았다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다양한 인간관계, 취미와 관련된 사업들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학교 성적보다 나의 취미생활인 철인 3종 경기를 통하여 직업도 갖게 되었고, 사회 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운동하면서 만나는 친구들은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훨씬 신의를 다지기가 쉽다. 서로 같은 종목의 운동을 하면 많은 시간을 같이 나누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