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자연의선물, 추억속의 음식
22화
학독의 추억
4도 3촌. 김치 담그다 떠오른 엄마
by
샤이니
Dec 3. 2024
올여름
이상기후로 농작물 피해가 많다고 아우성인데 우리 밭도 예외는 아니었다.
배추모종 한판(100 포기)을 사다 심었다. 더운 날씨에 하룻밤 자고 나면 10개가 시들어 있고,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시원찮은 게
많이 보여 모종을 반판 더 사다 심었다.
우리 집 일만이 아니었다. 세 번씩 모종을 심고 나중에는 모종이 없어서 돈을 주고도 못 샀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더위를 견디고 살아 있나 했더니 이젠 배추벌레가
속에서
나오는
새잎들
을 뜯어먹어 배추가 자라지 못하고 죽어 간다.
주변에서 약 안 하면 못 먹는다며 약을 하라지만 우린 신선한 무농약 야채를 먹겠다며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고 몇 년을 버텨 왔는데 의지가 무너지면 안 된다.
새벽같이 일어나 벌레를 일일이 손으로 잡아주는 방법을 택했다.
(해가 뜨면 배추벌레가 사라진다)
겨우 살려 놨더니 다음은 배추 뿌리가 물러져 썩는 무름병이 왔다. 땅 속이 너무 더워서라며... 비닐 씌워준 걸 다 벗겨 바람이 통하게 해 주란다.
결국 2~30 포기는 무름병으로 뽑아 버려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키워
낸 우리 배추가
그래도 동네에서 제일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름 잘 커줘서 김장 전에 솎아낸 배추를 뽑아 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막내로 자라서인지 나이를
먹었어도
혼자 김치 담그는 건 두렵다는
동생 내외를 불렀다
절인 배추를 한참 양념에 버무리고 있는데 동생이 한입 먹으며 맛있다를 연발하더니 찬밥에 먹으면 진짜 맛있겠다 하는데
순간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출처 @핀터레스트
우리
어릴 때(그
시절엔 믹서기가 없었다.) 엄마는 학독에 고추를 갈아서 김치를 담그셨고 그럴 때마다 우리 자매들은 잽싸게 부엌으로 가서 찬밥과 숟가락을 챙겨 들고 김치 버무리는 학독 옆에 둘러서서 숟가락에 올려주는 김치 한 조각을 볼이 터져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엄마가 일찍 아프셔서 막내인 동생은 결혼한 이후에 엄마가 반찬을 한 번도 해주신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한다.
언니들은 엄마가 많이 해줬잖아! 하는데...
가끔은 만들어 놓은 반찬을 싸주기도 했지만 속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게 언니로서 미안하고 속이 상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 헌신한다.
그중 한 분이신 우리 엄마도 온갖
열정
을 쏟아가며 우리에게 열심이셨다.
결혼 2년 만에 강원도 홍천 시동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곳으로 이사를 갔다.
5일장이 서고 버스터미널에 정육점 하나, 중국집 하나, 철물점? 만물상 같은 곳 하나가 상가 전부였다.
정육점엔 쇠고기를 팔지 않았다.
수요가 없으니 쇠고기는 도축장에서 가져오질 않고 돼지고기 만 가져와서 판매한다는 말에 엄마는 손주들을 먹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라도 광주에서 아침에 출발하면 차를 다섯 번 갈아타고 강원도 우리 집까지 12시간 만에 도착하신다.
그때는
비포장 도로에 터널도 거의 없고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버스 타고 다닐 때였다.
벌써 40년 전 일이다. 힘듦에도 우리 집을 한 달에 한 번씩 빼먹지 않고 출근 도장을 찍으셨다.
옛날엔 아이스박스도 아이스팩도 없었다.
스테인리스 김치통에 꽁꽁 얼린 쇠고기를 넣어 가져오시면 저녁 도착시간에 썰어 먹기 좋게 녹아 있었다. 손주들 먹일 생각에 하루종일 차를 타고 오신 것도 잊으신 듯하다.
곧바로 고기를 구워 손주들 입에 넣어 주시며 "세상에 저렇게 잘 먹는걸 " 돈주고도 못 사 먹는 이런 곳에 산다며, 한숨을 내쉬고
그제야
다리를 펴고 앉으신다.
지금은 내가 엄마보다 훨씬 많은 나이가 되었지만 나도 엄마가 그랬듯이 우리 손주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열심히 만들어 주게 된다.
먹는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가정교육은 따로 할 필요 없이 부모가 사는 모습을 보며 자식들은 배운다 했다.
"보고 배운 대로 한다"는 말처럼 좋은 모습 많이 보여주고 가신 엄마, 우리 엄마
고맙고 감사합니다
!
!!
keyword
배추모종
엄마
김치
Brunch Book
자연의선물, 추억속의 음식
18
전라도 나주 애호박 찌개.
19
끝물 고춧잎 삭혀 김치 담그기
20
냉동죽순나물. 냉동고 비우기.
21
깍두기 맛 잊어버렸어요. 1년 만이어서요
22
학독의 추억
자연의선물, 추억속의 음식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22화)
21
댓글
1
댓글
1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샤이니
직업
작가지망생
샤이니 (따스한 선희) 도시생활 4일 시골에서 3일을 지내며 관계의 중요성과 따뜻함을 나누려 합니다.
구독자
273
제안하기
구독
이전 21화
깍두기 맛 잊어버렸어요. 1년 만이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