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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전설 속으로

4도 3촌. 45년 만이다

by 샤이니


일 년 농사 김장을 끝 마쳤다.


결혼에 시어머님이 김장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며 가르쳐주신 게 45년 전이었다.


한 시대를 앞서가신 시아버님이 하신 말씀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

얘네들 세상은 김치공장에서 김치를 사 먹고 살 텐데 뭘 가르치냐 하시며

아마도 손목에 TV를 시계처럼 차고 다닐

세상을 살 거다 하셨다.


임신과 유산을 연거퍼 두 번을 겪고 귀하게 얻은 세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6개월째여서 가만히 숨만 쉬고 있는 자체도 힘들고 행여 또 잘못될까 봐 조심스러울

때였는데 아버님 말씀이 구세주처럼 들렸다. 하지만 김장 주도권은 어머니 몫이었고, 집안일은 어머니 소관이기에 아버님 말씀은 잔소리로 끝나버렸다.

그땐 상상도 못 했던 일이기에 나이 들면 저렇게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나 보다 생각했는데, 지금 우리들 세대는 자연스레 그 속에서 예전에도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공장에서 만들어 나온 김치를 사 먹고, 손에 들고 다니며 전화도 하고 Tv도 볼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던 아버님을 몰라 뵈었다.




묵은 김치로 만드는 돼지고기김치찌개, 고등어김치조림, 김치전등을 좋아하는 가족들 덕분에(사실은 김치 담그는 게 힘들어) 김장철에 한번 담가 일 년을 먹는다. 정작 본인은 바로 담궈 먹는 생김치를 좋아하지만 나를 위해서 힘든일은 망서려진다.


매년 가족들에게 올해로 김장은 마지막이라 외치며 김장 준비를 하면,

"그 소리 들은 지 십 년도 넘었거든요" 내년에도 두고 봐요 하며 쓴소리를 한다.


절인 배추를 사서 하면 그나마 편할 텐데 텃밭농사를 시작한 남편 때문에 모종을 사서 심고 수확한 배추로 몇 년째 절이고 씻고 담그니 일이 너무 많다





힘들어하면서도

친구들과 품앗이로 집집마다 돌아가며 하면 좋은데 난 혼자해야 하는 성격 탓에 우리 아이들이 매년 고생을 한다.

물론 손녀들까지도 유치원생 때부터 김치 버무리기를 해왔다.

이젠 어른들 못지않게 한몫을 해낸다.

할아버진 "유태인처럼 고기 잡는 법부터 알려줘야" 한다며 배추 다듬고 절이는 법,

양념 비율까지 전수하라는데 과연 김치 담가 먹을까? 지금도 다들 사 먹는 데 애들 세대엔 과연 김치를 먹긴 할까?


하지만 부탁한다. 우리 애들에게 젊은 세대들에게. 김치공장의 맛도 좋지만 우리 고유의 김치맛을, 나만의 김치맛을 살려서 담가 먹어주길 바라본다. 엄마 손맛도 기억해 주며~





올해는 양도 너무 많고 힘도 들어 가까이 사는 동생을 불러 같이 했다. 사진을 보니 김치공장 느낌이다.


끝나고 올해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내년에는 정말로 김장 안 할 거다.

며칠씩 양념을 준비하면서 힘들면 눕기를 하루에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니 속으로 겁이 났다. 이러다 쓰러지면 어쩌지?

나도 힘들겠지만 가족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다.

내가 변해야 한다.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자.

내년부터는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사 먹는 걸로.

나도 힘들어 못 도와주니 그러자며 맞장구 쳐주던 남편은 못내 서운한지 "당신 김치맛이 전설 속으로 살아지겠군" 한다.


걱정 마요, 김장은 힘들어 못하겠지만 한두 포기씩은 담가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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