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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사람 사이. 진급 발표

by 샤이니


유난히 10월 마지막과 11월을

기억하는 습관이 생겼다


따뜻한 남쪽나라 전라도 땅에 살다가 이사 간 강원도 산골은 너무나도 추웠다.

겨울엔 영하 27도라는 처음 보는 숫자와 체감 온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였다.


방안에 전기난로를 켜놓고 잠을 자도 콘센트 구멍은 고드름이 생기고 천장에는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있다가 얼굴 위로 찬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면 소스라쳐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돌도 안 지난 아들은 모자를 씌우고 장갑에 양말까지 완전무장으로 잠을 재웠어도 아침에 일어나 보면 볼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처음엔 이유를 몰랐다.

방 안에서 얼굴이 언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낙엽도 떨어져 나 뒹굴고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할 때쯤이면, 남편 직장에선 진급 심사 여부를 통보해 준다.

발표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숨죽이며 기다려야 했는가!



1년 차 탈락,

처음으로 겪어본 탈락이라는 단어. 우리는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기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린 아들, 딸 손을 잡고 집을 나섰는데 가다보니 가끔 오르던 산으로 가고 있었다. "엄마 아빠 힘들어요." 하면 등에 업혀하고선 하염없이 정상을 향해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애들이 무슨 죄람?



2년 차 탈락,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기에 우리에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 자신만만했는데 또 탈락 통보가 왔다. 우린 또 집을 나섰다. 강원도 한계령, 미시령 고갯길을 넘어도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온 세상이 쓸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3년 차 합격.

3년 만에 진급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얼마나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인가!

세상이 달라 보였다.



그렇게 몇 년 반복되니 산 정상이나 가로수까지 절정을 이루는 오색 단풍들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는데 , 이번엔 우리를 축하라도 해주는 양 너무도 화려하게 물들어 있었다.

기분에 따라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나 싶은 게 "인간이 참 간사한 동물이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퇴직한 지도 벌써 20년이 지난 세월.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으니 변할 때도 됐을 텐데 여전히 가을은 쓸쓸함과 허전함이 진행형이다.






쓸쓸함과 허전함을 달래고자 딸과 함께(원인 제공자는 모임 중)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덕수궁 돌담길


야경을 보는 게 얼마만인가?

난 그동안 뭐에 쫓겨 사느라 이 좋은걸 못 보고 살았나 싶다.

버스킹 공연을 보면서 노래도 따라 불러보고.

앞에서 사진 찍는 모습이 너무 예뻐 나도 따라 찍어 봤다.

쓸쓸함은 어디 간 거야? 너~무 좋다.


이젠 여유로운 마음으로 늦가을의 정취도 느끼며 행복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짝꿍과 여행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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