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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헬 Oct 26. 2024

울지마, 아저씨는 도곡동 집 4채 날렸어.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힘들지 않은 날은 없기에

당연한 일이라고 스스로 다독거리며 잘 버텨왔다.  

   

그런데….

오늘따라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무조건 걸어갔을 텐데 걸어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회사에는 매일 가야 한다.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왜인지 모르게 택시를 타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눈물이 많아졌다.

[물론 남들 앞에서는 절대 안 운다.]     


숨죽이고 조용히 훌쩍거렸는데

좁은 택시 안에서 울음소리를 완벽하게 숨길 수는 없었다.      


택시 기사님이 울음소리를 들으셨는지

“뭐 그리 슬픈 일이 있길래 울어요?”라고 물었다.

[아침부터 부정적인 기운을 전달해 드린 것 같아 죄송스럽다.]     


“꺽..꺽..사업하는데..꺽..힘들어서요.”

내 대답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업…. 피 말리고 힘들지요….”

택시기사님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전 사업을 크게 했었는데 IMF 때 부도가 나서 도곡동 집 4채를 날렸어요.”    

 

일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 말을 듣고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당시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빚이 쌓여서 빨간 딱지가 붙었어요. 주변에서는 온통 돈 달라는 이야기뿐이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죠. 애들도 학교 다닐 때였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서….”     


택시 기사님은 말을 하다가 이내 멈추었다.

말할지 말지 고민하는 듯했다.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서 애들 데리고 다 같이 죽으려고 했어요.”  

   

두 아이의 가장.

어쩌면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책임을 혼자 짊어졌을 한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내 눈에 더 이상 택시 기사가 아니었다. 

내가 가는 길을 먼저 걸어본 남자가 되어 있었다.     


“다 왔습니다.”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요금을 계산하자 

그가 몸을 돌려 내 눈을 마주 보았다.   

  

“강해져야 해요.”

그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오랜만에 타인과 눈빛만으로도 공감한 순간이었다.

“엉..으엉.. 감사합니다..”

[결국 이상한 소리를 내며 엉엉 울어버렸다.]     


난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택시에서 내렸다. 

눈물, 콧물을 쏟으며 택시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남들 앞에서 안 운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 말 빠르게 취소하겠습니다.]    

 

택시는 유유히 다른 길을 가는 손님을 태우러 떠났다.

난 멀어져가는 택시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가는 길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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