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라헬 Oct 26. 2024

하버드 나온 애들하고 경쟁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대표님, 하버드, 서울대, 카이스트 나온 애들하고 경쟁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남자의 말을 끝으로 회의실에 정적이 흐른다.

반대편에 앉은 남자는 이내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실제로 정부지원금을 탈 때 그런 팀들과 경쟁 할 수도 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하버드, 서울대, 카이스트 안 나왔다.     


내 앞에 앉은 남자는 정부지원금을 탈 때 도움을 줄 컨설턴트다.

다들 한다길래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보려고 미팅했다.

[‘정부지원금’: 국가 및 지방 자치 단체에서 지원하는 보조금이나 융자금.]     


쉽게 말해서 회사에 돈이 없으니까 

도와주십쇼! 이건 저희 사업계획서입니다!

저희는 사회 복지에 관심이 있는 회사입니다!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은 많은데 돈이 없습니다! 

저는 매일 라면만 먹습니다! 잠은 죽어서 자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어필해서 자금을 지원받는 건데….

[실제로 이렇게 말하면 바로 탈락이다. 서류 심사부터 시작해서 면접까지 체계적인 단계로 진행된다.]     


경쟁이 치열해서 아무나 받는 건 아니다.

서류 심사, 면접 심사 등을 거쳐

합격한 극소수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봐라.

이제 막 시작한 회사가 무슨 프로젝트 성과가 있고

돈은 또 얼마나 벌겠는가….     


모든 컨설턴트는 말한다.

스타트업 초기 자금 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펙’이다.     


이 회사에 어떤 스펙을 가진 팀원들이 들어와 있는가.

대표는 어떤 스펙을 가졌는가.

특히 한국은 회사 구성원들의 ‘스펙’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표님, 학창 시절에 공부 안 하고 뭐 했어요?’

‘대표님, 스펙이 너무 약해요.’     

회사를 설립하고 매일 이런 말을 듣는다.

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저 웃는다.     


가끔, 아주 가끔….

‘대표님, 학창 시절에 공부 안 하고 뭐 했어요?’ 같은 날카로운 말들에     


‘껄껄! 제가 이거 하게 될 줄 알았나요. 공부 안 하고 학교생활만 즐겁게 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에 교육과정 위주의 공부를 싫어해서 다음날 수학 시험인데 사회 심리학책을 읽는 애였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강남 8학군 학부모치고는 학업성적에 크게 관심이 없으셨어요. 제가 헤실거리면서 학교 다니기를 바라는 부모님이셨답니다! 덕분에 비교과 활동은 교내 상위권이었습니다. 우등상, 글짓기상 등 상장이 엄청 많아요! 아, 참!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매년 학급회장단을 했습니다! 비교과가 얼마나 좋았으면 대학교 입시 때, 비교과는 탑인데 교과는 왜 이러냐는 말을 많이 들었답니다. 공부 안 하고 교내 활동하러 학교 다녔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죠? 하지만 전 행복한 학생이었답니다!’     


라고 해맑게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내 모든 것이 

대학 이름 하나에 판단되는 사회에서는 

말을 아끼는 것이 좋다.

   
 또 객관적으로 정부지원금을 받고 싶은 

‘한국 스타트업 대표’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들으면 틀린 말도 아니다.     


나 역시 상위권 대학을 나온 이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3수, 4수까지 하며 SKY에 입학한 친구들이 허다한 

강남 바닥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

그들이 쏟아부은 노력과 고통의 시간을 모를 수가 없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진짜 고생했다. 얘들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국내의 많은 대표가 상위권 대학을 나왔지만

모든 대표가 상위권 대학을 나온 것은 아니기에     

나를 믿고 우리 회사의 이념을 되새기며

오늘도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게요! 도와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