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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헬 Oct 26. 2024

불 나도 노트북은 챙겨야지

‘에에에에엥.’     


저녁 8시 20분경, 갑자기 사이렌이 울린다.

불길한 소음에 노트북에 올라가 있던 손이 경직되었다.     


사이렌이 울리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노트북 챙겨야지.’ 였다.     


회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미어캣처럼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시간이 흘러도 사이렌 소리가 멈추지 않자 

사람들은 일제히 같은 행동을 했다.     


다들 미친 듯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도 떨리는 손으로 짐을 챙겼다.     


서랍에 있는 모든 서류들을 꺼내 가방에 집어넣고 

노트북을 손에 들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회사를 나서는데

내 앞에서 순서를 지켜 문을 나서는 다른 미어캣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대로 미어캣이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그날은 다들 미어캣 맞았는걸요.]     


다들 가슴에 노트북을 꼭 껴안고 있었다.

마음이 안 좋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들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곳은 많은 회사가 모여 있는 공용 오피스다.

이제 막 시작한 이름 모르는 회사부터 

꽤 유명한 회사까지 한 공간에 모여 있다.

[요즘에는 이런 공용오피스 형태가 많다.]     


눈이 빛나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 열정이 재해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는 일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회사 밖에 나오자 해가 져 있었다.


고층 빌딩을 올려다보며 연기를 찾았지만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건물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나도 그 옆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시간이 흐르고 건물을 관리하시는 분들이 나왔다.

‘괜찮습니다! 센서 오작동입니다!’     


그 순간 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다른 회사의 대표님들과 팀원분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고 회사로 들어갔다. 

[진짜 감사합니다. 오늘도 눈물 젖은 라면을 먹을 뻔 했…. 아니, 라면도 못 먹을 뻔했어요.] 

    

불이 났을지도 모르는 긴급한 상황에도 다들 노트북을 챙겼다.

그 행동만 봐도 다들 이 일을 대하는 자세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공유하는 이 공간에 들어와 보지 않은 사람들은 

불났을 때 노트북을 챙기는 행동이 미련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공간을 공유하는 미어캣들은 알고 있다.     


‘너도 간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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