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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채집하지 못한 날들

15. 눈 스케치북

by 조유상

9월 7일에 처음 만나 11월 9일, 두 달 만에 초 스피드로 한 결혼식. 그해엔 눈이 참 푸근히 많이도 왔다.

가까운 광천을 다녀오다가도 언덕배기에 차를 세우고 눈을 바라보곤 했다. 나무가 줄지어 선 희디흰 눈밭에 살큼 발을 디디고 찍은 사진도 남아 있다. 그가 물었다. "왜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줄 알아?" "응?" "우리가 결혼해서." 초지일관, 시시때때로 아무 데나 우리 결혼 명분을 들이대던 시절, 집 앞 홍동천에도 뒷산에도 펑펑 눈이불이 덮였고 고요했다.


우리의 사랑놀이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아침 먹고 각자 직장으로 갈 때도 쪽, 와서도 쪽쪽. 부엌에서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도 하며 그는 무시로 '사랑해'를 공중에 날리곤 했다. 그는 스무 살에 시작한 방통대를 여차저차해 못 끝냈었는데 기어이 졸업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필 결혼하고 나서야 하게 되었나 보다. 좁은 방 안에서 내 무릎을 베고 공부를 하는 그를 보며 안 해도 되는 공부를 뭐 하려 하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엄마는 대학원 졸, 아빠는 고졸이면 좋겠냔다. '나는 아무 상관없는데, 그러니까 자기랑 결혼한 거고.' 그래도 자신은 아니란다. 그래, 본인이 아쉬우면 하는 거지. 함께 놀 생각에 공부가 머릿속에 들어가기나 했으려나? 그래도 꿀 떨어지는 신혼에 벼락공부하고 시험 봐서 20여 년 만에 방통대를 갱신히 졸업한 게 어디냐, 용하다 신랑.


그는 결혼하고 거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팔베개를 해주었다. 팔이 아플까 봐 잠이 들면 살며시 그의 팔을 빼내곤 했지만 자기 전에 잊어버리는 법은 없었다. 늦은 결혼만큼 곱절로 다정이가 찾아왔는가 보다.


시골집 방문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모서리 아귀가 딱 들어맞지도 않았고 방음은 물론 없는 것보다 나았겠지만 눈 오는 소리만큼밖엔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반대편 문으로 나가야만 하는 바깥 화장실, 아니 변소는 자다 깨서 가기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참을 만큼 참았다 터지기 직전 그 문을 열고 순발력으로 튀어나가는 거였다. 어느 틈에 깬 그가 다녀오고 나면 그 소리에 깬 나도 뒤이어 달려갔다 오곤 했다. 하루는 먼저 바깥 변소에서 볼일을 보고 온 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밖에 나가봐 봐. 눈이 엄청 많이 왔어! 그래? 신랑 말에 벌떡 용기 내어 몸을 일으켜 살그머니 한옥 방문 여닫이를 열고 마루에서 내려섰다. 마당이 훤했다. 반가운 손님처럼 눈부신 흰 옷 차려입은 눈이 구석구석을 밝히고 있는 게 아닌가. 하아... 하얀 입김과 가벼운 탄성이 함께 터져 나왔다. 꿈속 같은 길을 살금살금 걸어 변소를 다녀오는데 아까 갈 때는 미처 못 봤던 글자가 안마당 눈 위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 게 아닌가. 우뚝 멈춰 서서 내려다보니 툇돌 밑 마당에 새겨진 글자는 커다란 '사랑해!'였다. 추위도 잊어버리고 잠시 멍하니 그 희디흰 사랑을 바라보며 눈과 가슴 깊이 여며 담았다.


잠시 후 방에 호다닥 뛰어 들어간 후에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다정히 볼을 비비고 꼭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은 상상에 맡김!)


첫애 낳으며 별이 왔다리 갔다리하는 중에 조산원 원장님이 가르쳐준 호흡법대로 거친 숨을 내쉴 때였다. 원장님은 나더러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는 거였다. 순간 시차 없이 떠오른 장면은 바로 그 밤, 하얀 눈 스케치북에 커다랗게 그가 손가락으로 써놓았을 그 글씨그림이었다.


행복한 추억이 고통을 상쇄한다는 건, 사실이었다.



#신혼 #눈오는 밤 #희디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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