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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채집하지 못한 날들

24. 이런 상상...

by 조유상

가끔 상상해 본다.


국민지원금과 함께 일 년에 무조건 50평씩, 아니 10평이라도 땅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재벌들이 가진 땅 골프장이나 건물 짓는 거로만 들어가지 않게, 너무 많아 주체 못 하는 이들의 땅을 나라에서 공공임대해 주기로 한다면? 그들에게는 뭔가 공공사업을 하는데 따른 대가를 지불하면서. 도시 외곽이나 근처에 이런 자투리 땅은 팍팍한 삶 속에 오아시스가 되지 않으려나? 지금도 물론 자비를 들여 연회비를 내며 하는 텃밭이 생긴 지 이미 십 수년쯤 되었다는 건 잘 알고 있다만, 이걸 공공분배로 한다면...?


누군가 묻는다. 당신에게 1억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나는 묻고 싶다. 당신에게 당장 땅이 10평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우리가 죽어 화장 않고 묻힐 땅은 겨우 1평이면 뒤집어쓴다. 그러니 열 평이면...


사람들은 거기에 꽃밭을 가꾸어도 되고 텃밭을 만들 수도 있고 텃밭 정원을 꾸밀 수도 있다. 자기만의 자그마한 텃밭 이름도 정하고 귀여운 나무 팻말을 꼽아 본다. 그림도 그려 보고. 아무것도 심지 않는다면 강아지풀이나 개망초가 무성하리라. 그 무성한 풀꽃 사이 의자 하나를 놓고 풀꽃 친구가 되어 풀멍을 때릴 수도 있지 않을까? 모기 뜯길까 걱정이라고? 뭐, 가끔 엉뚱한 보이스피싱도 당하고 누군가에게 삥도 뜯기는데 고 작은 모기에게 헌혈 한 번쯤 했다고 죽나? 이런 배짱으로 그냥 주어진 땅에 깔개를 깔고 누워 푸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라도 해 본다면...? 삼단 접이식 의자라도 하나 사 놓고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다 저녁노을을 맞이한다면 어떨까. 심심하면 책이라도 들고 가 엎치락뒤치락 읽다가 출출해지면 가지고 간 간식을 나눠 먹거나 감자 두 알, 고구마 두어 개 불에 구워 입에 시꺼멓게 묻히며 구워 먹기도 하고... 이런 뜬금없는 상상이 흘러간다. 고추도 몇 주 심고 쌈채도 심고 여름엔 옥수수도 울타리에 스무댓 개 심을 수 있다. 해바라기를 심어 해를 따라가는 환한 얼굴을 이따금 마주할 수도 있겠다.



농사짓는 집에 태어나 징글징글하게 농사를 경험했던 사람은 다 시골에서 도망간다. 어떻게 일 좀 안 해볼까 하며 시골 탈출 꿈을 꾸는 수많은 이들, 최재천 교수도 어디선가 그 말을 한 적 있는 거 같다(다른 이였나? 헷갈린다만.) 농사일 피해 잔머리 굴려한 게 공부라고. 공부라고 쉽겠는가마는 땡볕에 나가 황톳빛으로 그을려가며 쪼글치고 앉아 뽀대 안 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 이미 창피해하는 이들 투성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자본주의식 광고에 세뇌되어 있어 손톱에 때 끼고 손가락 관절 굵어지고 시커멓고 거무튀튀한 얼굴을 하는 농부를 멋있어하지 않는다. 사회부적응자, 루저들이 다른 선택권 없을 때 갈 수 있는 탄광촌 같은 은유가 기본으로 깔려 있으니, 아쉽고 안타깝다. 말로는 생명을 키우는 귀한 직업인 듯 포장하며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얼굴 뒤에 숨겨진 본모습이 훤히 보인다. 정말 생명을 귀히 여기는 존중의 표현인지 입에 발린 가면 쓴 표현인지가.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얻어걸린 농사라 하더라도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걸까? 이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서민으로 이런 열 평의 땅이 말없이 주어진다면? 이 작은 땅 위에서 평화를 만끽하며 작은 자연을 만나 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화되어 가려나 궁금하다.


부지런한 사람이 아닌 내가 참 바지런히 살았나 보다. 결혼 이듬해 겨울 초입에 큰아이를 낳고 농사짓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었다. 11월 말에 태어난 큰 아들이 3살 되던 해 봄, 팔괘리 우리 마을 훨씬 안쪽에 텃밭이 나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약 3백 평 정도 되었을까, 오목한 산자락 밑에 있어 그늘이 반이었다. 갑질하는 교수들 꼴 보기 싫었던 나는 땀 흘리며 사는 삶을 스스로 선택했으니 신날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산후우울증에서 벗어날 즈음 동네 양조장 사모님이 하는 단전호흡 운동을 가기 시작했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대충 눈곱만 떼고 옷을 주워 입고 나가랴 치면 남편이 나를 붙잡았다. '자기야 가지 마, 안 가면 안 돼? 자기랑 같이 좀 더 누워 있고 싶은데... '그런 다정한 유혹을 한 번 꾹꾹 눌러 안아주고 볼 비비며 뿌리치고 자전거로 나선다. 바람을 가르고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강당 등에서 하던 단전호흡을 한 시간 동안하고 부리나케 텃밭으로 달려가 밭 한 번 훑어보고 그날의 양식인 야채를 뜯어 집으로 달려간다. 부리나케 밥을 앉치고 반찬을 만들어 남편과 아이와 같이 아침을 먹고 나서 그를 출근시키고 나면 잠시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밭으로 출근했다. 겨우 한돌 반 밖에 안 된 아이가 비척비척 오리궁둥이 걸음으로 밭고랑 사이를 넘다 넘어지면 엄마를 부르며 앙앙 울어댔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밭일을 하다 등허리에 업어주다 하며 오전 밭일을 마치고 나면 잰걸음으로 집에 와 점심상을 차린다. 그가 집에 와서 밥을 먹으니까 그게 일상이었다. 점심을 먹고 그가 가고 나면 아이를 잠시 재우고 기저귀를 빨고 집안 치우고 청소와 빨래를 마저 한다. 혹시라도 그가 퇴근하기 전에 짬이 나면 다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거나 걸려 밭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재밌고 신바람 나는 일이 또 있었던가?


내가 심은 쌈채 하나 감자나 고구마, 들깨나 콩이 보석보다 귀하고 이뻤다. 무와 배추를 키우고 쪽파를 심어 그걸 하나하나 다듬어 준비하는 김장은 거룩한 일이었다. 이런 거룩하고 소중한 일을 텃밭에서 일궈내고 오가는 이들과 씨앗을 나누며 한 송이 꽃에도 함박웃음 피워 올리는 기쁨 건져 올릴 수 있다면...?


나는 내가 느꼈던 이 소중한 기쁨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단 10평의 텃밭이라도 땅을 갖게 된다면...

그 열 평을 나는 희망텃밭이라고 부르고 싶다. 많은 이들이 씨앗을 심고, 하나로 합장한 떡잎이 흙덩이를 가르고 올라와 잎을 벌리고 눈부신 햇살을 머금고 커가는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다면, 칙칙한 어둠에서 마음도 덩달아 햇살로 나아가지 않으려나...?


여러분들이 와글와글 댓글 달아주신다면 저는 신문고에라도 제안을 해 보고 싶습니다만... 어떠신가요? 이런 상상?




#이런 상상 #누구라도 함께 한다면 #Imagi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만약 내게 땅 열 평이 생긴다면

#로또보다 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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