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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나빛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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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단 Nov 05. 2024

누나와 여동생

 “누나! ”


 까만 자동차가 구멍가게 앞에 서자 그 안에선 은아 누나와 은아 누나네 아줌마가 내렸다. 나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오는 은아 누나처럼 나도 평상에서 팔짝 뛰어내려 누나에게로 내달렸다.


 “아이고, 은아 왔어? ”


 “네, 아줌마! 안녕하세요! ”


 “왔어요, 은아 엄마? ”


 “네에, 안녕들 하셨어요? ”


 어른들끼리의 대화가 시작되고 은아 누나는 금방 눈길을 돌려 반갑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


 “심심해서 놀러 왔어. 누나 병원 간 거 아니었어? ”


 “벌써 갔다 왔지! 그래서 말인데… ”


 “언니 안녕! ”


 언제 왔는지 내 손을 덥석 잡아챈 현지가 은아 누나의 말을 끊었다. 누나를 은근하게 노려보는 현지의 눈에서 조그마한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현지도 있었네! 안녕~ ”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그마한 여동생을 보는 누나의 눈에선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언젠가 여동생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던 만큼 누나는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아이가 있으면 언제나 헤실거리며 풀어지곤 했다.


 “있잖아, 우리 집에 놀러 올래? ”


 “안돼! ”


 “응? ”


 현지는 내가 수락이라도 할 세라 다급하게 은아 누나를 막아섰다. 현지에게 붙잡힌 내 왼손에 점점 피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빠는 나랑 놀기로 했어! 그래서 안돼! ”


 “그래? 그러면 나도 현지랑 같이 놀면 안 돼? 너랑 같이 놀고 싶은데! ”


 “음… ”


 현지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같이 놀게 해 줄게. ”


 “진짜? 고마워! 그럼 우리 민하도 데리고 우리 집에서 같이 놀자! 우리 집에는 인형의 집도 있고 미용실 놀이 장난감도 있어! ”


 “진짜..? ”


 “그럼! 예전부터 너랑 우리 집에서 같이 놀고 싶었는데 잘됐다! ”


 “으응… 알겠어. ”


 휘황찬란한 장난감 때문인지 현란한 은아 누나의 말솜씨 때문인지 어느샌가 말려들어간 현지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은아 누나네 행이 결정되었지만 현지의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 귀여워서 웃음만 났다.


 “근데 너희 손에 들고 있는 거 뭐야? ”


 은아 누나가 양손에 나눠 들린 호빵 조각들을 보며 은근히 궁금해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이거? 호빵! ”


 “호빵? 이게 호빵이야? ”


 “언니 호빵 몰라? 이거 엄청 맛있는데! ”


 “그래? ”


 은아 누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호빵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뭔가 결심한 듯 침을 꼴깍 삼키고 아줌마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엄마, 저도 호빵 사주세요! ”


 “… 안돼. 집 가서 밥 먹고 약 먹어야지. ”


 “ 왜요? 민하랑 현지도 다 먹는데! ”


 생각지 못했던 아줌마의 단호한 거절에 은아 누나는 금방 울상이 되었다. 지치지도 않는 두 모녀의 실랑이에 참다못한 정육점집 아줌마가 한마디 거들었다.


 “아이고, 은아 엄마요! 내가 은아 하나 사줄란다. 아들이 다 먹고 있는데 혼자 못 먹으면 얼마나 서럽겠노? ”


 “아니요, 괜찮아요. 위장도 조그만 게 식탐은 많아선 항상 탈이 나거든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


 “아이고… 맞나? 그러면 어쩔 수 없제… ”


 긴 언쟁 끝에 승리를 쟁취한 아줌마는 허리를 숙여 은아 누나에게 뭐라 뭐라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은아 누나는 아줌마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그래도 여전히 부루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현지 어머니, 현지 저희 집에서 놀게 하다가 점심 먹이고 저녁 먹기 전에 돌려보내도 될까요? 은아가 현지 초대하고 싶다고 그래서… ”


 “그럼 고맙지~. 안 그래도 저거 심심하다 겁나게 찡찡대싸서 피곤했는데 그리 해 도. ”


 “네에. 자, 얘들아. 같이 차 타고 갈까? “


 “네! ”


 우리는 앞장서 걸으시는 은아 누나네 아줌마를 따라 자동차에 올랐다. 은아 누나가 차에 타고, 그다음엔 내가 올라 탄 다음 키 때문에 문 앞에서 낑낑거리는 현지를 아줌마를 도와 차에 올려주었다. 운전석엔 누나네 집에서 놀다가 돌아올 때마다 잠깐씩 마주쳤던 은아 누나네 아저씨가 앉아 계셨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


 “그래, 안녕~. 우리 민하 못 본 새에 많이 컸네! ”


 “헤헤, 감사합니다! ”


 “옆에 애기는 민하 동생이니? ”


 “아니야 아빠! 얘는 상훈이 동생이야! ”


 “그래? 난 또, 너무 예뻐서 민하 동생인 줄 알았지 뭐냐! 하하하. ”


 아저씨의 호탕한 칭찬에 현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인사를 하고 요지부동으로 앉아있는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을 보니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아저씨가 자동차에 시동을 걸자 부르릉 거리는 호랑이의 울음 같은 소리가 났다. 누나네 집 초인종만큼은 아니었지만 이것도 꽤나 무서운 소리가 났다. 현지는 무섭지도 않은지 발을 동동거리며 차의 앞유리 너머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긴장한 티를 숨기고 천연덕스럽게 차 내부를 둘러보았다. 앞 뒷자리 사이에는 네모난 상자에 뽑아 쓰는 휴지가 들어있었고 유리창문 아래에는 기다란 막대기가 붙어 있었다. 이게 뭐에 쓰는 막대기인지 궁금했지만 괜히 망가트릴까 손대지 못하고 있었는데 누나가 웃으면서 시범을 보여 주었다.


 “이건 말이지, 이렇게!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창문이 내려가는 거야! ”


 누나가 한 것처럼 손잡이를 잡고 힘껏 돌리니 내 쪽의 창문도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손잡이를 돌려 창문을 내리고 있자니 마치 내가 책 속에서 본 위대한 과학자 에디슨이라도 된 것 마냥 흥분이 되었다. 한창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자동차 운전석 앞의 어떤 버튼을 누르더니 자동차가 아래로 슈웅하며 내려갔다.  처음 느껴본 느낌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자, 출발한다! ”


 아저씨의 출발 신호와 함께 자동차가 부르릉 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지고 놀며 활짝 열린 창으로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움직이는 자동차를 타는 건 처음이었는데 이렇게나 신나는 일 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은아 누나네 집으로 향했다.



-



 “하여간, 제 딸은 끔찍이도 아껴. ”


 “아이고, 성님 또 그런다! ”


 “아무리 애 몸이 안 좋다고 해도 그렇지, 호빵 기계 훑어보는 거 상훈 엄마도 봤잖아? 우리 가게 물건 더러운 거 보듯이 구는 거 정말 기분 더러워. ”


 “성님이 좀 참으소. 서울깍쟁이 아가씨 아이가? 그리고 나도 아가 저만치 아프면 나도 잠깐 멈칫은 하겠다. 아 병 하나 좀 고쳐 보겠다고 서울에서 이까지 내려와가 애비는 한 시간씩 걸려서 출퇴근한다 안 하나? 조금이라도 더 나빠질까 얼마나 노심초사 하겠노. 성님이 은아 엄마 불쌍하게 봐가 좀 봐줘라~. “


 “에휴, 또 그렇게까지 말하니… 그래 내가 참아야지 뭐… ”


 “이야~. 성님 억수로 사람 좋데이~. ”


 “에이그… 좋은 사람 만든 게 누군데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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