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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나빛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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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단 Oct 15. 2024

어린이 도서관

 주택가 가장자리에 위치한 마을회관에는 조그맣게 어린이 도서관이 딸려 있었다. 어린이 도서관에는 재미있는 책이 가득했지만, 조금만 가만히 앉아있어도 온몸이 근질근질한 아이들이 사용하기엔 너무 조용하고 금기사항도 많아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았다.


“민하 왔어? “


 귀엽고 알록달록한 동물들이 그려진 유리문을 밀고 어린이 도서관에 들어서자 상냥한 목소리가 나를 맞아 주었다. 고개를 들어 도서 반납대를 쳐다보니 긴 생머리를 질끈 묶고 나를 바라보며 웃는 사서 선생님이 보였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무슨 책 읽을 거야? 어제 읽던 건 다 읽었어?”


 “아직 조금 남았어요! “


 “그래? 선생님이 우리 민하 보라고.. 짜잔! “


 사서 선생님이 반납대 뒤편에서 공룡이 그려진 반짝반짝한 새 책을 꺼내 보여 주었다. 표지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장 센 공룡인 티라노사우르스 사진이 크게 붙어 있었다.


 “우와, 공룡사전이다!”


 “음음! 선생님이 민하 주려고 가져왔지요~ 읽던 거 다 읽으면 이거 가져가서 읽어. 선생님이 반납대 위에 놔둘게!”


 “아니요!”


 “응? “


 “이거 먼저 읽을 거예요!”


 울부짖는 공룡사진을 보니 어제 읽던 책 따위는 어느샌가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공룡 책만이 심장을 뛰게 했다.


 ”하하, 그래! 그러면 읽고 집에 갈 때 가져다줘~. 민하 제일 먼저 보여주려고 아직 인식표도 안 붙였으니까. “


 “네!”


 선생님께 책을 건네받고 신나는 마음으로 도서관 한구석 푹신한 매트로 달려갔다. 이 도서관에는 공룡에 대한 책이 별로 없었는데, 엄청난 행운이었다.


 “앗…!”


 도서관에서는 뛰면 안 되는데… 다시 신나는 마음으로 도서관 한구석 푹신한 매트로 사뿐사뿐 조심히 걸어갔다.


 무지갯빛 알록달록한 매트에 풀썩 주저앉아 표지를 넘기니 책의 구성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타났다. 공룡 사진, 공룡의 종류, 살았던 시대부터 주로 먹었던 먹이까지… 상세한 설명에 표지만 봐도 세게 뛰던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린이 도서관이라 자세하거나 조금이라도 어려운 책을 찾기 힘들었는데 일부러 나만을 위해 공룡 사전을 가져와 주신 사서 선생님이 너무 감사했다. 다급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룡인 티라노사우르스가 있는 쪽수를 찾기 위해 목차를 뒤졌다.


 티라노 사우르스, 36쪽


 36쪽을 펴자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멋진 티라노사우르스의 모습이 내 눈을 압도했다. 차오르는 흥분감에 재빠르게 티라노사우르스에 관한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티라노사우르스에 대해 자세하게 적혀있는 책을 읽으니 마치 공룡박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영특하기도 하지…’


 흐뭇한 표정으로 자기 몸통만한 책을 들고 구석에 콕 박혀 공룡의 세계에 빠진 아이를 바라보았다. 하루에 한 두 명 찾아올까 말까 하는 마을회관 구석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 이른 아침부터 출석도장을 찍고 조용히 생각을 키워나가는 6살짜리 어린아이가 여간 기특할 수가 없었다. 민하는 사람들과의 교류 없는 내 무료한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가는데도 민하는 요지부동으로 한 자리에 오도카니 앉아 책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어제 서점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 눈에 띈 공룡 사전을 보고 민하를 떠올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 책을 보자마자 공룡이라면 껌뻑 죽는 6살짜리 남자아이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급하게 책을 결제하고 조금 지나서야 민하 나이에 어려운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타는 집중력과 똑똑한 두뇌로 책을 읽어나가는 아이를 보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민하는 또래 아이들보다 특히 더 영특한 구석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금방 질려할 산수책을 눈을 반짝이며 읽어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도서 분류표를 단숨에 외워버리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서고에서 읽고 싶은 책을 찾아냈고 다양한 책을 많이 접해 어휘력까지 월등히 높았다. 이 나이에 벌써 한글을 모두 떼고 스스로 책을 읽는다는 사실 만으로도 정말 놀라운 일인데 아이를 보면 볼수록 감탄할 일들만 늘어났다.


하지만 민하를 볼 때마다 항상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머리칼은 길어서 어깨에 닿을 듯했고 항상 너덜너덜하게 해진 옷을 입고 다녔다. 뭐, 아이들 옷이야 언제 넝마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민하는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는 천방지축 망아지 같은 또래 남자아이들 같은 성격이 아니었으며 같은 옷을 며칠이고 연속으로 입는 일이 많아 마음이 쓰였다.


 허나 이렇게 불평불만할 수 있을 만한 상황에도 민하는 단 한 가지도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분야에는 무지하다고나 할까? 항상 웃는 얼굴로 예의 있게 인사하고 꺄르륵 잘 웃는 민하를 보면 내 기분이 나쁜 날에도 어느샌가 사르르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리도 똑똑한 데다 눈은 항상 똘망똘망하니 총기가 가득 차 있었고 하얗고 보드라운 아이의 뺨은 하얀 식빵처럼 폭신해서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이러니 저 아이를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



 “… 하야! 민하야!”


 지상 최강 공룡들의 잔치에 푹 빠져 지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사서 선생님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나를 불렀다.


 “네?”


 “공룡책 재미있었나 보네~. 몇 번을 불러도 못 듣고!”


 “헤헤… 안 들렸어요.”


 “하핫. 국민학교 끝날 시간인데, 안 갈 거야? 오늘은 은아 누나랑 놀기로 약속 안 했어?”


 “아, 맞다! 약속했어요! ”


 시계를 보니 벌써 짧은바늘이 2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말로 벌써 국민학교가 끝날 시간이 된 것이다. 은아 누나랑 놀기로 했는데… 늦었다!


 “큰일 났다. 늦었어요! 저 이제 가볼게요 선생님! “


 “그래. 얼른 가봐. 길 미끄러울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고! ”


 “네! 내일 또 올게요!”


 사서 선생님과의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주택단지 안쪽으로 달렸다. 알록달록한 대문과 담장들이 줄지어선 가운데 저 멀리 이 동네에서 가장 멋진 대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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